이남우 회장, "한국은 기업거버넌스의 '갈라파고스'"

이재용 회장 무죄 판결에 외신은 "놀라운 일, 법체계 의심"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하려면 법과 제도 먼저 고쳐야"

2024-02-08     박가영 기자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ESG경제=박가영 기자] "기업 거버넌스와 관련해 한국을 바라보는 해외 시선은 한마디로 '시장경제의 어법이 통하지 않는 나라, 딴 세상을 사는 갈라파고스'라고 요약할 수 있다. 법과 제도의 개혁을 통해 이런 인식을 바꿔놓지 않으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요원하다고 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당합병,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에 1심 무죄를 받으면서 해당 판결이 국내 기업지배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자본시장 관련 법과 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논평했다.

이 회장은 최근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에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하며 그 실효성을 높일 방안을 공개서한 형식으로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이 회장은 "잘못된 제도가 기업 오너와 지배주주들의 일탈을 사실상 조장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며 "이제 기업거버넌스 관련 법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 언론의 보도를 눈여겨 봐야 한다며 이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자본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일 수 있다고 했다. 뉴욕타임즈는 이번 판결을 보도하며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불러왔다”고 밝혔다. CNN, 뉴욕타임즈 등도 "놀라운 판결", "법 체계에 대한 의문" 등의 표현을 썼다. 

이 회장은 이같이 외신 보도들을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며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든 한국의 경제와 기업, 자본시장에 관한 법과 제도가 다른 선진국들과는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 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선 "우리나라 자본시장법과 법원은 주식시장에서 당사자나 이해관계자들이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말과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허위성이나 고의 여부를 너무 까다롭게 인정해왔다"고 비판했다.

해외에서는 주식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발언이나 행위에 매우 민감하게 대처한다. 일례로 일론 머스크는 지난 2018년 자신의 트위터에 주당 420달러에 테슬라 상장 폐지를 고려 중이라는 트윗을 올렸다가 무려 2000만 달러(약 222억 원)의 벌금을 물고 이사회 의장직에서 사임 및 3년간 의장직 금지 처분을 받아야 했다.

이남우 회장은 회계부정에 있어서도 국내 법제가 상당히 관대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판에서 회계에 관한 중요 자료가 대규모로 은닉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위법으로 수집된 증거라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은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한국은 민사소송에 있어 디스커버리(당사자가 관련 증거를 모두 공개해야 하는 의무) 제도가 없어 불법을 가리려는 소송 당사자들은 증거 취득을 위해 형사사건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 회장은 이 때문에 "회사가 대부분의 증거를 갖고 있는 기업 관련 사건에서 일반 주주가 대표소송이나 집단소송을 진행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기업 소송에 있어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의 부재 

그는 또 이번 판결을 보면 업무상 배임에 대해 재판부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의무를 명시적으로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이사들의 잘못된 결정으로 주주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국내 법제도 상으로는 어떤 책임도 묻기 힘든 상황"이라며 “이사회가 전체 주주에 대해 충실의무를 지는 것을 당연시하는 외국인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한국 기업의 거버넌스를 신뢰하고 투자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정치권은 상법을 조속히 개정해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멤버들이 (회사 뿐 아니라) 주주에 대해 충실의무나 보호의무를 지도록 명문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확실히, 그리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해소하고자 한다면, 이렇게 다른 나라와 말이 다른 법과 제도부터 빠르게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