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주총 시즌, 주목받는 소액주주 움직임
플랫폼 기반으로 주주제안 잇따르며 소액 주주 목소리 커져 경영권 분쟁에 소액 주주 의결권이 중요한 변수로 부상 얼라인 파트너스 등 행동주의 펀드 움직임도 주목
[ESG경제=박가영 기자]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소액주주들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연대하며 주주제안·이사회 결정에 대한 가처분 신청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액트·헤이홀더 등의 플랫폼을 통해 연대하며 지분율을 높여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얼라인 파트너스 등 행동주의 펀드들도 비사이드코리아 같은 행동주의 플랫폼에서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끌어모으고 있다.
상법에 따르면 의결권 없는 주식을 제외하고 발행주식총수의 3% 이상을 소유하거나 1%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는 주주제안을 낼 수 있다. 주주들끼리 지분을 모아 비율을 채우는 것도 가능하다. 주주총회일 6주 전 서면 등으로 행사해야 한다.
지난해 이어 소액주주운동 활기
최근 소액주주연대 플랫폼 ‘액트’를 통해 상정된 주주제안은 14건 이상이다. ▲이화전기·이아이디·이트론 등 이화그룹 3사 ▲DB하이텍 ▲삼목에스폼 ▲디에스케이 ▲알파홀딩스 ▲캐스텍코리아 ▲휴마시스 ▲대양금속 ▲오로라 ▲DMS ▲DI동일 ▲아난티 등이 있다.
액트는 과거 이화그룹이 김영준 회장의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상장폐지가 될 뻔했었던 ‘이화그룹 계열 3사 사태’에서 큰 역할을 한 바 있다.
지난해 주총에서 소액주주가 표 대결에서 승리한 경우는 드물었으나, 소액주주운동은 동력을 잃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재작년 11건, 작년 18건이었던 소액주주연대 주주제안은 올해 최소 20건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소액주주연대의 주주제안이 가결된 비율은 2021년 1.5%, 2022년 0%, 지난해 17.1%였다.
소액주주연대를 통해 제출된 주주제안은 주로 주주환원책에 관한 것으로, 자기주식 취득 및 소각과 정관 변경에 대한 내용이 가장 많았다. 해당 내용들이 각 7건으로 가장 많았고, 사외이사 선임(6건), 현금배당(5건), 감사 선임(4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전문적으로 진화한 소액주주운동, 법적 대응도 불사
DI동일 소액주주연대는 사측이 주주제안을 채택하지 않자 법적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2월 1일 내용증명을 보내 주주제안권을 행사한 바있다. 이들은 2월 28일 회사가 주총 소집 결의 이사회에서 주주연대의 안건을 상정하지 않자 가처분으로 맞섰다.
DI동일 주주연대는 법원에 제출한 의안상정 가처분 신청서에서 "소액주주 지분율이 최대주주보다 2배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최대주주는 소액주주들보다 훨씬 적은 지분으로 회사를 지배하고 있다"며 "최근 대한민국 증시의 저평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DI동일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적 회사"라고 강조했다.
20년 이상 무배당 정책을 유지한 기업 아난티의 경우 지난 1월 청주지방법원에 사측을 상대로 주주명부 열람 등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들은 아직 주주명부를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1200명의 소액주주들이 이에 동참하고 있다.
안상희 대신경제연구소 센터장은 "최근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주주환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자 주주연대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소액주주연대플랫폼 헤이홀더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6일 기준 유비쿼스 13.92%, 아바코 12.83%, 에치에프알 11.484%, 삼보판지 9.38%, THE E&M 8.9%의 소액주식이 모였다. 지분가치로는 셀트리온이 약 2608억 원(0.679%)로 가장 많았고 삼성물산이 660억 원(약 0.218%)로 뒤를 이었다. 셀트리온의 최대주주는 셀트리온 홀딩스로 21.85%를 보유하고 있으며, 서정진 회장이 3.7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액트와 헤이홀더의 소액주주연대들이 힘을 모을 경우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액주주들에게 손 내미는 행동주의 펀드·대주주들
주주행동주의 플랫폼 비사이드코리아에서도 소액주주들의 동참을 요구하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움직임이 거세다.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기업들도 소액주주연대에 손을 내밀고 있다.
고려아연의 배당·정관 변경에 반대 의사를 밝힌 영풍은 비사이드코리아를 통해 고려아연 주주들에게 의결권 위임을 호소했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의 제50회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총 부의의안 중 주주권익의 심각한 침해, 훼손이 우려되는 일부 의안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고려아연이 무분별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자사주 교환 등으로 기업가치 및 일반주주의 이익을 침해해왔다"며 그 결과 주주들은 주가하락, 지분가치 희석, 배당금 감소 3중고를 겪고 있다”고 소액주주들에게 의결권 위임을 요청했다.
다올투자증권 최대주주 이병철 회장 측과 경영권 분쟁 중인 2대주주 김기수씨도 비사이드에서 "2대주주로서 주주가치 제고와 책임 경영을 위해 회사 정상화 전까지 최대주주와 함께 배당을 받지 않겠다"며 "무리한 경영으로 촉발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책임경영에 2대주주도 함께하겠다"고 소액주주들에게 의결권 위임을 호소했다.
얼라인 파트너스는 비사이드에 국내 은행주 캠페인을 개시하며 “7개 은행지주 평균 주주환원율은 33.7%로, 작년 5.2%p 인상에 이어 올해도 4.2%p 인상하고, IR보고서상 주당 지표 강조 등 당사 요구사항도 충실히 반영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위험가중 자산 성장률은 평균 6.1%로 우리나라 명목 경제성장률 (약4% 수준)을 크게 초과하여, 자본배치 관점에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히며 목표 CET1(보통주자본비율, 총자본에서 보통주로 조달되는 자본의 비율)을 초과하는 자본의 주주환원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요구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이들은 6일 주주총회가 3월 28일로 정해진 JB금융지주에 5명의 이사후보를 추천하며 소액 주주들의 의결권 위임을 요청한 상태다.
주주행동 플랫폼 시대, 주주권 행사 혁신 불러와
법무법인 세종은 “과거에는 네이버 종목 토론방이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주로 행해졌던 주주들의 토론이 현재는 주주 인증 기반의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며 “이러한 주주행동 플랫폼의 등장은 소액주주들의 참석율 상승을 견인하여 경영 안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종 측은 “최근 5년 간 소액주주 연대활동의 주요 타깃은 대주주의 의결권이 3% 제한을 받아 가결률이 높은 감사(위원) 선임의 건이다”라며 “특히 감사는 주주총회결의 취소의 소를 제기할 권한이 있고(제376조 제1항), 회사와 재임 중인 이사 간에 소송이 제기된 경우 회사를 대표할 권리가 있는데(제394조 제1항), 이 역시 상당히 효과적인 공격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주주행동 플랫폼들이 자본시장법 상 '상장회사의 주식을 5% 이상 (공동)보유하는 자는 보유 목적이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인지를 공시하여야 한다’라는 ‘5%’룰을 잘 지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직 갈 길 먼 국내 행동주의
다만 국내의 주주제안은 아직 ESG전반이 아닌 주주환원책과 이사선임 등의 의제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전개된 기업의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주주권 행사와 맥락을 같이 하는 사례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친환경 행동주의가 승리한 경우는 ‘21년 친환경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엔진넘버원이 추천한 이사들 중 3명이 엑슨모빌의 이사로 선임된 건이 대표적이다.
엔진넘버원은 당시 엑슨모빌의 주식을 불과 0.02%를 보유하고 있었다. 엔진넘버원 “엑슨 모빌은 기후위기 대응경영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고 요구하자,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등 기관투자자들과 ISS 등 의결권 자문사들이 힘을 실어주면서 주주총회 표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