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ESG 평가·공시 지표에 "인구위기 대응 실적 반영해야"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세미나, 인구위기와 ESG 논의 발표자들, "인구감소 한국 지속가능성 최대 위협 요소" "KSSB 공시기준에도 기업의 저출산 인구 대응 반영해야"

2024-03-12     김연지 기자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12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인구위기대응 K-ESG, 기업이 주목해야 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ESG경제=김연지 기자] 기업의 인구위기 대응 실적을 ESG평가지표에 추가해 새로운 ‘K-ESG’ 지표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합계출산율 0.78명의 초저출산국가 한국의 출산율 제고를 위해서는 기업이 적극적인 행위자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구성원과 지역사회의 저출생 문제 해결에 성과를 올릴 경우 ESG평가 지표를 잘 받도록 하고, 이들 기업에 정부나 기관투자자들이 우대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아트홀에서 12일 열린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사장 정운찬, 원장 이인실, 이하 한미연)의 ‘2024년 제1차 인구 2.1 세미나’에서 임동근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연구위원과 한유경 한국ESG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저출산 해결, 기업의 동기와 수단 모두 충분

임동근 한미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기업들은 ‘경쟁력 제고’와 ‘노동력 확보’라는 측면에서 저출산 해결의 동기를 충분히 갖고 있다"며 "기업은 저출산 해소의 효과적인 수단들도 많이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낮은 출산율은 한국 기업의 미래 성장 동력을 가로막는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한미연은 2050년 ‘실제 생산가능인구’가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산업계 인력 수요보다 훨씬 부족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핵심적인 경제활동 인구라고 규정한 25~54세의 비율도 점차 줄어들 전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2019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2047년부터 전체인구 중 핵심인구(25~54세)의 비중이 OECD 국가 중 가장 낮아진다. 

기업은 저출산 해결의 동기가 충분한 동시에 해결 수단 역시 충분하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지난해 20~30대 18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결혼출산에 대한 2030세대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저출산 해결에 필요한 정부의 노력으로 ▲일자리 확대 및 고용 문제 해결(12.9%) ▲일/가정 양립을 위한 지원 강화(12.6%) ▲경력단절 방지 및 재취업 지원(11.5%) 등을 꼽았다. 주거안정성 강화(18.2%)를 제외하면 모두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필요로 한다. 

같은 조사에서 저출산 문제 해결에 필요한 효과적인 기업 지원으로는 ▲자유로운 육아휴직 사용 보장(25.1%) ▲근무시간 유연화(23.6%) ▲근무장소 유연화(17.8%) ▲사내 양육돌봄 서비스 시설 확대(17.4%) ▲임신출산을 위한 휴가 적극지원(15.5%) 등이 꼽혔다. 

임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인구 피라미드가 붕괴되면서 핵심노동인구 비중이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으로 추락하고 있다"며 "나이 든 인력 고용은 결국 기업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 연구위원은 "정부의 징벌적인 정책보다는 기업이 납득하고 수긍할 만한 인센티브로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며 "기업 생존을 위한 ESG 경영에 이제는 인구위기 대응을 반영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인구대응, ESG지표로 유인해야

문제는 기업의 적극적인 저출산 대응 프로그램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한유경 한국ESG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인구위기 대응 ESG 우수기업 평가모델을 구축”하고 “선도적인 사례를 확산시켜 다른 기업들도 저출산 대응에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에 동참할 수 있는 요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책임연구위원이 제시한 인구대응 ESG 평가모델은 ▲출산/양육 지원 ▲일과 가정의 양립지원 ▲출산 장려 기업문화 조성 ▲지역사회 기여 등 4가지 대분류로 구성된다. 해당 평가는 17개의 기초평가 지표와 41개의 심화 평가 지표가 포함된다. 기초평가에서는 기업 내 인구대응 정책의 유무와 같은 정량평가가 주를 이루고, 심화평가에서는 정책 실행에 대한 구체적인 정성 평가를 실행한다.   

예컨대 기초평가에서 ‘여성 임직원 출산휴가 제도 운영 여부’를 평가한다면, 심화평가에서는 ‘여성 임직원 출산휴가 평균 이용기간 및 이용률’과 ‘여성임직원 출산휴가 이용 후 복귀율’등의 실질적인 제도 운영 상황을 평가하는 식이다. 

한 책임연구위원은 “국내 평가기관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우선적으로 반영하는데, ESG는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만큼 인구위기라는 국내 특수한 상황에 대한 지표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면서 “기업들이 기존 ESG 평가들도 힘에 부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인구위기 대응 ESG 평가점수가 높을 때는) 적극적인 세제 혜택이나 인센티브 제공 등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인구위기 대응 정책도 적절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의 대응을 ESG 평가에도 포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비판도 나왔다. 세미나의 패널로 참석한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기업한테 미루면 안된다. 국가가 할 것을 다하고 기업이 할 일을 주장해야 한다"며 "K-ESG 평가모델에는 지방 소멸 대응을 위한 기업의 정책과 같은 평가지표도 있는데 이는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SG 공시 의무화 항목에도 인구대응 반영해야

ESG평가보다 상대적으로 실효성이 높은 ESG공시 의무화 지표에 인구위기 대응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패널로 참석한 김광기 ESG경제 대표는 “(인구위기대응 K-ESG)평가모델이 잘 짜여졌다고 생각한다”면서도 “ESG 평가가 정부 정책과 자본시장 투자자들에 주는 영향력이 크지 않은 만큼(...) 평가 결과보다 관심이 큰 ESG 공시지표에 인구대응을 노력과 성과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기업들은 ESG평가등급 보다 ESG공시에 훨씬 민감하다"며 "공시 항목과 세부 지표에 인구 대응 관련 실적을 의무적으로 넣도록 하면 기업의 움직임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윤제 법무법인 세종 ESG연구소장 역시 “한국의 ESG 공시 제도를 만드는 데 있어 초안에는 법률과 규정에 따르겠다는 구절이 많이 있다”며 “저출산과 관련된 사항들을 공시할 수 있도록 법률화하여 공시 제도에 (인구위기대응에 대한 기업의 정책과 노력이)들어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