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학계, 화석연료 기업 처벌 법리 개발 움직임

가디언, 기상이변과 관련 기아·질병으로 매년 500만명 사망 화석연료 기업에 기후변화 관련 사망 책임 물어 형사 기소 시도 소비자단체, 화석연료 기업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고 제안

2024-03-26     이신형 기자
로이터=연합

[ESG경제신문=이신형기자]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를 내뿜는 화석연료 기업에 기후변화 관련 사망에 대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리 개발이 미국 법학계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가디언이 21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으로 매년 500만명이 사망하고 기후변화 영향에 따른 기아와 질병으로 40만명이 사망한다. 산불와 홍수도 사망자를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소비자 권익 보호 단체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이 지난해 화석연료 기업을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이런 급진적인 주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으나, 이제 연구자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사망의 책임을 물어 화석연료 기업을 기소할 수 있도록 하는 법리 이론 개발에 나서고 있다.

퍼블릭 시티즌의 아론 레군버그 수석 정책 고문은 "이런 생각이 (미국의) 전‧현직 연방 검사와 주 검사를 포함한 법조계 구성원들의 관심과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퍼블릭 시티즌은 현재 하버드대학과 펜실베니아대학, 시카고대학, 뉴욕대학을 포함한 주요 로스쿨에서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홍보 행사를 열고 있다.

크리스토퍼 랍 펜실베니아주 의원은 최근 펜실베니아대학에서 열린 행사에서 ”이런 (기후) 악당을 몰아내는 노력을 강하게 지지한다“고 말했다. 퍼블릭 시티즌 관계자들은 다른 공직자들도 비공식적으로 이런 활동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화석연료 기업을 기소해야 한다는 제안은 조만간 하버브 로 리뷰(Havard Law Review)에 게재될 예정이다. 이런 주장은 부분적으로 화석연료 업계가 화석연료 사용의 위험성에 대한 정보를 대중에게 숨겼다는 증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런 폭로가 나오면서 대형 석유기업들이 제조물 책임법과 소비자 보호법을 위반하고 조적직인 범죄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이들 기업을 상대로 40건의 민사 소송이 제기됐다.

하지만 퍼블릭 시티즌의 연구원들은 화석연료 기업을 형사재판에 넘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버드 로 리뷰에 게재될 제안의 공동 작성자인 퍼블릭 시티즌의 데이빗 아르쿠시 기후 프로그램 책임자는 ”형사법은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말하는 방법“이라며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행위 중 일부를 범죄로 인정하고 추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은 현행법으로도 화석연료 기업의 기후변화 유발 행위를 형사처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석유기업이 직면한 민사 소송과 관련된 음모와 공갈에 대한 형사적 대응 수단이 있고 미래의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행위에 따른 과실치상(Reckless Endangerment)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화석연료 기업이 유발한 가장 심각한 피해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살인이라고 주장한다. 퍼블릭 시티즌은 석유기업이 화석연료가 지구 온난화를 유발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후변화 대응을 지연시켰기 때문에 과실치사로 처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르쿠시 퍼블릭 시티즌 기후 프로그램 책임자는 ”전국의 수십명의 형법 교수들과 논의했고, 전직 법무부 검사들과 얘기를 나눴지만 우리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에너지 기업이 과거에도 환경 범죄를 저지른 후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 검찰은 2018년 발생한 파라다이스 산불의 책임을 물어 유틸리티 기업 PG&G를 기소했고 연방 검찰도 11명이 사망하고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을 일으킨 혐의로 석유기업 BP를 기소했다. 양사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고 수십억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전직 법무부 검사 출신인 신디 조 인디아나대학 로스쿨 교수는 가디언에 ‘기후살인(climate homocide)’으로 석유기업을 기소해야 한다는 퍼블릭 시티즌의 주장을 처음 접했을 때는 회의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한번 읽어본 후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범죄 입증은 난제

신디 조 교수는 기후범죄로 석유기업을 기소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고 믿지만, 검찰이 범죄행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막강한 기업을 상로 법정 다툼을 벌이려면 검찰이 매우 전문화된 수사팀과 엄청난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과 경제 범죄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방대한 양의 자료를 이해할 수 있는 수사팀을 꾸려야 하는데 그런 팀을 만드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과실치사로 기소할 경우 법원이 석유기업의 고의성을 입증하도록 요구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많은 배심원들이 고의성 입증을 요구한다는 점이 또 다른 난제가 될 것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석유기업과 기후관련 사망 사이의 인과 관계를 입증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허리케인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우 기후변화가 허리케인의 파괴력을 증가시키는 요인이었다고 해도 법원은 피해자의 건강 상태나 질병 등 피해자가 직면한 위험을 악화시키는 다른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거대 석유기업에 대한 민사소송을 지지해 온 기후무결성센터(Centre for Climate Integrity)의 리차드 와일스 소장은 가디언에 ”석유 메이저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노력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법률가들이 석유기업이 그들이 저지른 거대 해악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혁신적인 법적 전략을 계속해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대형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한 법률팀을 이끌었던 샤론 유뱅크스는 퍼블릭 시티즌의 활동에 지지를 보내며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 때도 회의론에 직면했었다“며 ”하지만 우리는 승리했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같은 생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