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공세 못 참겠다”...유럽, 중국산 전기차·태양광 패널 수입 규제 움직임
저렴한 중국산 전기차와 태양광 패널 유럽 시장 잠식 올해 중국 전기차 유럽 시장 25% 장악 전망 FT "중국산 태양광 패널 너무 싸서 유럽서 칸막이로 쓰일 정도" 유럽, 관세 부과와 보조금 지급 등으로 대응 움직임
[ESG경제=이진원 기자] 중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대표적인 친환경 제품인 전기자동차와 태양광 패널이 유럽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장악해 나가자 유럽이 이들 제품의 유입을 제한하기 위한 대응책 시행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이들 제품의 유럽 시장 점유율을 높여나가자 유럽 내에서 시장을 통째로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나타난 변화다.
상품 종류만 다를 뿐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저가 공세로 쿠팡 등 국내 전자상거래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빼앗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전개되자 유럽이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가격 경쟁력 앞세워 유럽 시장 잠식하는 중국산 전기차
전기자동차의 경우 유럽교통환경연맹(T&E)은 올해 저렴한 중국산 전기차 모델이 유럽연합(EU) 내 전기차 판매의 4분의 1, 즉 약 25%나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23년 EU에서 판매된 전기차의 약 19.5%가 중국에서 제조된 차량이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중국산 전기차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유럽 자동차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EU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중국의 값싼 전기차가 유럽 현지에서 생산되는 차량의 시장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경고를 쏟아내자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지난달 초 중국산 수입 전기차에 대한 세관 등록을 시작하며 대응에 나섰다.
이는 나중에 EU가 조사를 통해 중국산 전기차가 불공정한 보조금을 받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경우 그 시점부터 전기차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 보조금은 중국이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으로 만든 원동력이자 많은 신생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게 만든 힘이기도 하다.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들은 저가형 모델을 앞세워 해외 시장으로도 진출하고 있어 유럽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 자동차 회사들에 잠재적인 도전자가 되고 있다.
EC가 유럽 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진행 중인 본 조사는 올해 11월까지 마무리될 예정이지만, EU는 7월에 잠정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도 있다.
EC는 “중국 전기차에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으며 지난해 10월 조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이후 중국산 전기차 수입이 전년 대비 14% 증가한 가운데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 중국산 전기차 수입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계속되면 EU 생산업체들이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관세 부과가 중국산 전기차의 유럽 장악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T&E의 차량·이모빌리티 공급망 담당 수석 디렉터인 줄리아 폴리스카노바는 “관세가 부과되면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유럽에서 전기차 생산을 현지화해야 할 것이므로, 이는 유럽 내 일자리 창출과 기술 도입에 긍정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중국 업체들이 유럽에서 공장을 건설하게 되면 관세가 기존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를 오랫동안 보호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유럽 전기차 업체들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관세 부과만으로 저가의 중국산 전기차 공세를 장기간 막아낼 수는 없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 제조되는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 전지가 유럽산 제품보다 20% 이상 저렴하고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가 기술 및 공급망에서 앞서고 있어 중국산 전기차 제품은 유럽산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에서 월등히 앞서 있다.
전기차보다 더 심각한 유럽의 태양광 패널 시장
태양광 패널 업계의 사정은 전기차 업계 이상으로 심각하다. 파이낸셜 타임스(FT)가 2일 “중국산 태양광 패널이 너무 싸서 유럽에서 칸막이로 쓰이고 있다”는 보도를 내보냈을 정도로 중국산 태양광 패널은 유럽 제조사들이 경쟁하기 힘들 만큼 낮은 가격에 유럽에서 팔리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럽의 현지 태양광 제조업체들은 값싼 중국산 태양광 패널 수입품과 경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사실상 승산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EC는 전기차와 달리 중국산 태양광 패널에 무역 제한 조치를 시행하는 데 주저해왔으나 최근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비롯한 불공정행위 평가에 착수하며 대응에 나서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데이터에 따르면 EU 회원국은 2023년에 2022년보다 40% 더 많은 태양광 용량을 설치했지만, 대부분의 부품은 중국에서 수입했다. 일부 회원국에서는 무려 95%의 자재를 중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런데도 EC는 그동안 재생 에너지 역량을 확대하기 위해선 중국산 수입품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중국산 태양광 패널 수입을 막지 않아 왔다.
카드리 심슨 EC 에너지 집행위원은 지난달 초 브뤼셀에서 열린 에너지 장관 회의를 앞두고 “우리에겐 태양광 패널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경을 닫을 수 없다”면서 “우리는 우리 산업을 지원해야 하지만 매우 야심 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제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말은 중국산 저가 제품이 유럽 제조사들에 주는 피해보다 시민들에게 저렴한 제품을 살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보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이에 앞서 2월 초 메이 리드 맥기네스 EU 집행위원 역시 유럽 의회 연설에서 ‘수입 급증’으로 인해 태양광 장비 가격이 40% 이상 인하되었음을 인정하면서 이런 상황이 EU 제조업체에게는 "분명한 도전"이지만 시민과 설치자에게는 도움이 된다며 중국산 태양광 패널에 대한 수입 금지 가능성을 배제했다.
하지만 변화의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EC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비롯한 불공정행위 평가에 착수한 것이다.
EC는 2일 FT에 “중국산 태양광 패널과 관련해 더 이상 현 상태를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불공정행위 혐의에 대한 모든 증거를 평가하고, 유럽 태양광 패널 제조사의 EU 자금 지원 접근성을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FT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오는 15일 해당 계획안에 대해 EU 에너지 담당 장관들과 산업계가 공동 서명할 예정이다.
다만 EC가 유럽 기업들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은 이전부터 업계에서 요구해 왔으나 이것이 결국은 유럽 내 생산이 중국 경쟁사보다 결코 저렴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격이라 장기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유럽 태양광 제조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인 유럽태양광 제조협의회(ESMC)의 요한 린달 사무총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매우 공격적인 산업 정책과 부문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면서 “중국은 서방보다 산업 지원과 보조금에 거의 3~4배 더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다”며, 보조금 지급 액수가 상당하지 않을 경우 결국 중국산 태양광 제품과 경쟁이 힘들다고 주장했다.
‘사이언스 비즈니스’가 인용한 미국에 본사를 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2019년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7%를 산업 지원 및 보조금에 지출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프랑스의 0.5%나 독일의 0.4%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비율이다.
중국은 특히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와 같은 전략적 부문에 보조금 지급을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