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Ti, 스코프3 감축에 '탄소 크레딧' 허용 움직임...가열되는 논란 향방은?

인증 유연화로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 등 기대 커져 기업 기후목표 수립 확대 및 감축 프로젝트 다양화 기대 탄소크레딧 신뢰성 확보 관건, 급격한 시장 확대 우려 시각도 스코프3 목표에 탄소 크레딧 사용 허용 여부 더 지켜봐야

2024-04-22     김현경 기자
브라질의 한 삼림. (자료사진=연합뉴스)

[ESG경제신문=김현경 기자] 세계적으로 자발적 탄소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전망과 기대가 확산하고 있다.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가 기업의 넷제로 목표와 전략 인증 과정에서 스코프 3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용도에 한해 탄소 크레딧 같은 환경 속성 인증서(EAC) 사용을 허용한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다.

그러나 자발적 탄소시장에 대한 신뢰가 아직 확보되지 않았고 SBTi의 계획도 확정된 것이 아닌 만큼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 9일 SBTi는 스코프3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용도에 한해 탄소 크레딧 외에도 지속가능한 항공 연료 인증서, 그린수소 인증서, 그린철강 인증서 등과 같은 환경 속성 인증서(EAC) 사용을 허용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결정이 SBTi의 내부 지지를 얻은 결정이 아니라는 반발이 나오는 가운데, 일부 위원들은 이를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자 SBTi는 12일 아직 결정된 게 아니라고 한발 물러서며 진화에 나섰다.

SBTi는 EAC 사용 기준을 포함한 인증 기준 변경안에 대한 초안을 오는 7월 공개할 것이라 밝혔다. 이를 두고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SBTi가 스코프3 배출량 감축에 대한 탄소 크레딧 사용을 허용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기업 스코프3 감축 난항… 현실적 수단 제공

자발적 탄소시장은 기업 등이 자연자본 활용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탄소 감축 프로젝트를 이행하고 제3의 기관의 승인을 얻어 획득한 탄소 크레딧을 거래하는 시장이다. 

그린비즈의 18일 보도에 따르면 현행 SBTi 기준은 오직 대기 중 탄소포집으로 생성된 탄소 크레딧의 제한적 이용만을 허용하며, 기업의 넷제로 및 단기 목표 달성을 위한 탄소 크레딧 사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SBTi가 스코프3 배출량 감축에 대한 유연성 제고를 시사함에 따라 기업의 기후 목표 수립이 활성화하고 자발적 탄소시장의 규모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스코프3 감축 목표 달성은 기업의 기후 목표 수립의 가장 큰 난제로 꼽힌다. SBTi가 지난 3월 내놓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SBTi의 기준에 따른 넷제로 목표를 수립할 때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총 239개 기업 중 54%가 스코프3 배출량 감축을 꼽은 바 있다.

이에 따라 스코프3 배출량 감축에 있어 탄소 크레딧을 활용해 배출량을 상쇄할 수 있다면 더 많은 기업들이 SBTi 기준에 기반한 탄소 감축 목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ESG 평가기관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의 탄소시장 부문 책임자 가이 터너(Guy Turner)는 “더 많은 기업들이 넷제로를 선언하는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며 “기업의 스코프3 배출량 목표 이행에 대한 현실적인 수단을 제공한다”고 그린비즈에 밝혔다. 

개정 기준이 결정된다면 탄소 크레딧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자발적 탄소시장의 확대가 예상된다. MSCI가 지난해 11월 발간한 탄소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SBTi 승인에 따른 스코프1,2 배출량 감축 경로에 있는 기업들이 스코프3 배출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탄소 크레딧을 사용한다면, 이는 현재 640메가톤(MtCO2e)의 추가적인 탄소 크레딧 수요를 창출하며,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190억달러의 추가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추산했다. 

아울러 그린비즈는 SBTi의 기준 개정으로 더 다양한 종류의 탄소 프로젝트들이 개발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SBTi가 탄소 크레딧을 포함한 환경 속성 인증서(EACs) 활용을 허용하게 된다면 탄소 감축을 위한 연료 효율 개선, 저배출 쿡스토브 등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허용되는 프로젝트의 종류에 대해 추후 SBTi의 EAC 정의가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두고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탄소 크레딧 신뢰 회복 급선무... "급격한 시장 확대는 힘들어"

한편, 자발적 탄소시장의 신뢰가 아직 확보되지 않아 SBTi의 기준 개정을 통해 이 시장이 급격히 확대될 거라는 기대는 아직 섣부르다는 전망도 나온다.

블룸버그의 21일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헤지펀드 앙뒤랑(Andurand)의 기후 리서치 부문 책임 마크 루이스(Mark Lewis)는 기업의 배출량 감축 인증을 위해 탄소 크레딧에 의존하기엔 아직 많은 위험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SBTi의 결정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와 이 결정이 어떻게 실행될지에 대해선 두고봐야 한다”며 “진행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도 부연했다.

블룸버그는 “탄소 크레딧 사용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기준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기후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에 대한 규제당국뿐만 아니라 로펌, 환경단체의 철저한 감시를 이끌어낼 것”이라 보도했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표준화된 인증 기준이 없어 탄소 크레딧에 대한 신뢰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베라(Verra)와 골든스탠다드(GS) 등이 대표적인 인증 기관이었으나, 베라가 인증한 탄소 크레딧의 90% 이상이 기후변화 억제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영국 가디언지의 보도 이후 자발적 탄소시장에 대한 불신이 정점에 달했다.

이에 자발적 탄소시장의 신뢰와 투명성을 높이려는 국제사회의 노력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 정부와 유엔개발계획(UNDP) 등의 후원을 받는 ‘자발적 탄소시장 무결성 이니셔티브(VCMI)’가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거래되는 탄소 크레딧 발급과 사용에 관한 표준을 수립하고 있는 한편, 탄소 크레딧 신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탄소 크레딧 보험’ 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