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90억달러 탈탄소 전환 비용 어떻게 마련하나

FT, 세계 각국 전환 비용 마련 큰 숙제로 골머리 횡재세‧관광세‧항공해상운송세 등 도입 움직임 화석연료 보조금 전환비용으로 돌려야 주장도 돈은 있는데 재원 배분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와

2024-05-07     이신형 기자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낸 미국 네바다주 메드 호수. 게티 이미지=AFP=연합

[ESG경제신문=이신형기자]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로 억제한다는 파리기후협약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탈탄소 전환을 위한 막대한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일 각국 정부가 새로운 세목 신설을 검토하는 등 탈탄소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국제재생에너지협회(IREA)는 파리협약의 목표 달성을 위해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연평균 1000GW 규모의 재생에너지 발전 능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기후정책이니셔티브(Climate Policy Initiative)는 파리협약 목표 달성을 위해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연간 9조달러(1경2200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현재 탈탄소 전환을 위한 지출은 연간 1조3000억달러(약 1770조6000억원) 규모다.

지난 4월 나온 다른 보고서는 유럽이 2030년까지 1990년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55% 감축한다는 기후목표를 달성하려면 8000억유로(약 1172조7000억원)가 필요하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2조5000억유로(약 3664조8000억원)가 투입돼야 한다고 추정했다.

지난 3월 미국 기후특사 자리에서 물러난 존 케리 전 미국 대통령 후보는 "탈탄소 전환에 필요한 재원 마련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관심은 이제 기후금융으로 향하고 있다. 케리 전 특사는 “이런 전환이 필요한 곳에서 실제로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신속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열린 제28회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200개에 가까운 나라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능력을 3배 확충하고 에너지 효율은 2배로 개선한다는 내용의 재생에너지서약에 서명함에 따라 탈탄소 전환에 필요한 재원 마련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세계 각국 다양한 세목 신설 검토

미국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과 복지지출 확대 등에 10년간 3700억달러를 투입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제정했다.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대기업의 법인세 최저 세율을 15%로 인상하고 자사주 매입에 대한 과세 등을 통한 추가적인 세수 확보에 나섰다.

FT에 따르면 선진국 정치권에서는 녹색경제로의 전환에서 민간 자본의 역할이 두드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납세자들도 일부 비용 분담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적으로 탈탄소 전환에 필요한 재원의 70%를 민간에서 조달해야 하고 공공부문도 재원의 30%를 부담해야 한다고 추정했다. 공공부문은 전력망과 같은 전환에 필요한 인프라 투자뿐 아니라 방파제와 홍수 방지 시설을 마련하는 등 기후변화 적응에 필요한 투자에도 나서야 한다.

기후 컨설팅사 E3G의 케이트 레비크 지속가능금융 담당 부국장은 “정부는 세금부터 탄소 배출권과 같은 수단에 이르는 ”(재원 마련을 위한) 광범위한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노동당은 탈탄소 전환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석유기업에 대한 횡재세 부과를 제안했다.

그린피스와 스탬프 아웃 파버티(Stamp Out Poverty) 등 환경단체와 비영리단체가 지난 4월 내놓은 보고서는 선진국 석유기업에 대한 과세를 통해 2030년까지 7200억달러의 탈탄소 전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와이 등은 기후변화 대응 관광세 신설 추진

미국 하와이주는 관광세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조쉬 그린 주지사는 기후변화에 대응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호텔 체크인 시 25달러의 관광세 부과를 제안했다. 하와이에서는 지난해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산불로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시는 관광세 세수 중 1억유로를 주립 학교에 히트펌프와 태양광 모듈을 설치하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COP28에서 프랑스와 케냐 등은 해운과 항공세 등 혁신적인 재원 마련 방안을 검토할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이 TF팀은 현재 검토 중인 다양한 세목 신설을 통해 연간 2조2000억달러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밝혔다.

파리기후협약 체결을 주도한 프랑스 경제학자 로렌스 투비아나가 이 TF팀을 이끌고 있다. 그는 이런 증세 수단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 도출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TF는 2025년 COP30이 열릴때까지 탈탄소 전환 재원 마련을 위한 정책 수단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보조금을 탈탄소 전환에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COP28에서 화석연료 보조금의 단계적 폐지를 주장하는 이니셔티브를 출범시킨 롭 제텐 네덜란드 부총리는 ”이 돈(보조금)을 기후변화 대응에 사용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석연료 보조금 중단 이니셔티브에 서명한 나라는 벨기에와 핀란드, 캐나다, 덴마크, 스페인, 코스타리카 등이다.

탄소세나 탄소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한 나라가 이를 통해 거둬들인 세금이나 수익을 탈탄소 전환에 집중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탄소가격제를 통해 마련된 재원이 일반적인 정부 지출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현재 탄소세나 탄소배출권거래제를 포함한 탄소가격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약 40개국이다.

아일랜드는 지난 2021년 탄소세를 2030년까지 톤당 100유로로 점진적으로 인상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재원의 용도는 기후 관련 투자와 연료비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빈곤층에 히트펌프 설치와 주택의 단열 성능 개선 지원 등으로 제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원 배분의 문제

선진국의 경우 탈탄소 전환에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자금이 있으나,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록키 마운틴 인스티튜트(Rocky Mountain Institute, RMI)의 킹스밀 본드 에너지 전략가는 선진국에는 탈탄소 전환에 사용할 자금이 풍부하지만 효과적인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재원 문제는 해결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RMI가 올해 초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7년간 재생에너지 투자는 2배로 늘고 화석연료 투자는 절반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줄어드는 화석연료 투자는 재생에너지 투자로 이전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본드 에너지 전략가는 재원 배분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부가 민간 자금이 (탈탄소 전환 용도로) 사용될 수 있도록 (적절한) 규제와 가격 정책을 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정부가 큰 돈을 쓸 필요는 없고 시간과 노력만 투입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연합의 에너지 안보 확보를 위한 리파워EU 정책을 예로 들며 EU가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 목표를 새로 정하고 민간의 관심을 높이기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기록적인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솔라 파워 유럽(Solar Power Europe)에 따르면 지난해 EU의 재생에너지 발전능력은 56GW 늘어났다. 2022년의 40GW보다 16GW나 늘어나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