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 에너지 정책에 달렸다

삼성전자, 해외 시설은 '27년까지 100% 재생에너지...한국 시설은 '50년까지 목표 맥킨지, "한국 재생에너지 확보 어려워 최첨단 반도체 시설 투자 유치 못할 위험 처해" 보고서, "한국 정부가 산업 정책과 에너지 정책 통합 추진해야 경쟁력 확보 가능"

2024-05-14     김연지 기자
사진=픽사베이

[ESG경제신문=김연지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산업이 반도체 생산과정에서의 전력 소비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고 탄소배출량을 감축하는 ‘녹색 반도체’ 경쟁에서 대만과 일본에 뒤처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가진 선진 기술 기반에 재생에너지를 통합해 ‘녹색 제조 강국'으로 성장해야 반도체 무역전쟁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산하 ‘탄소중립 산업정책연구소(Net Zero Industrial Policy Lab, NZIPL)’는 12일(현지시각) 이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공개했다.  ‘신냉전 시대, 한국에 주어진 기회와 리스크: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공급망 분석’이라는 제목의 이번 보고서는 주요국들이 기후변화 대응을 내세운 보호주의적 산업 정책을 도입하는 움직임이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한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정부는 최근 2030년까지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산 반도체의 점유율을 10% 이상으로 끌어 올린다는 목표를 세우고▲반도체와 2차전지, 전기차를 비롯한 국가전략기술에 시설 투자하면 15~25%의 세금을 돌려주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도입하고 ▲용인에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등 적극적인 반도체 산업 지원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러한 한국의 목표가 “상당한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녹색 반도체 경쟁에서 뒤처진 한국…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의 미래는?

산업 특성상 제조 과정에서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고, 그로인해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반도체 업계는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녹색 반도체’를 생산해야 한다는 국제적 압력에 직면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녹색 반도체 경쟁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뒤처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은 미국과 대만 경쟁사들에 비해 친환경 전력 사용량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삼성은 제조 시설 내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약속하고 해외 제조시설은 2027년까지 달성을 목표로 한 반면, 국내 시설은 205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한국 제조시설에서 소비하는 전력은 109TWh(테라와트시)를 넘어갈 것으로 예상되며, 연간 탄소 배출량은 3200만 톤을 가뿐히 넘길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2030년까지는 전 세계 사업 운영의 33%를 재생 에너지로 전환할 계획으로 이미 중국 충칭과 욱시 공장에서는 100%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한국 내 사업장에서는 재생에너지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칩 제조 장비 업체인 네덜란드 ASML은 100% 재생 에너지 사용을 목표로 삼성과 SK하이닉스 모두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지만 "신뢰할 수 있는 재생 에너지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의 경쟁기업인 대만 파운드리 기업 TSMC는 2050년 재생에너지 100% 달성 목표를 2040년으로 10년 앞당겼으며, 2020년 덴마크 풍력 기업 오스테드와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지난해엔 대만 기업 ‘ARK 에너지’와 2만 기가와트시(GWh)에 달하는 태양광 전력을 20년 장기 계약을 체결해 공급받기로 했다. 규슈에 위치한 TSMC 구마모토 공장은 이미 100% 재생에너지로 가동된다.

보고서는 “반도체 경쟁국에서 자국 기업에 유리한 탄소국경세를 적용한다면 한국 기업에 대한 규제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며 한국의 탄소집약적 반도체 수출은 보다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새로운 반도체 생산시설의 입지 결정에 재생에너지 접근성이 주요 요인이라는 내용의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McKinsey)에서 발행한 보고서를 인용해, “재생에너지 확보가 어려워 한국이 최첨단 반도체 시설투자를 유치하지 못할 위험에 처해있다"라고도 경고했다. 

경쟁력 확보하고 싶다면 산업정책과 에너지정책 통일해야

이를 바탕으로 보고서는 탄소중립이라는 글로벌 흐름에서 산업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를 대규모로 확대해 경제 전반의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 ▲재생에너지 발전소와 산업 클러스터를 함께 배치하는 등 산업 정책과 재생에너지 정책을 통합적으로 추진 ▲재생에너지 해외 투자 확대를 통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윤석열 정부가 현재 에너지 정책을 유지하는 이상 2030년까지 재생 에너지 비중을 21.6% 로 늘린다는 자체 기후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다가오는 11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서 정부 정책이 크게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의 재생 에너지의 평균 전력 원가가 주요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높은 비용은 주로 토지 취득, 승인 절차 등 한국의 정책과 제도로 인해 발생하며 이것이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더 큰 장애물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현재 용인에 조성되고 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해 보고서는 “산업 클러스터와 재생 에너지 발전소를 함께 위치시켜 산업 정책과 재생에너지 정책을 통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원자력 발전소는 허가 속도가 느리고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있어 정부의 산업 및 기후 목표 달성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반도체 클러스터와 재생에너지 발전소 공동 설립을 위해 정부가 ▲태양광 및 풍력 등 등 복합단지 건설을 위한  허가 발급 ▲태양광 발전을 규제하는 도로와의 거리 제한 철폐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탄소중립 산업정책연구소의 공동 책임자이자 보고서 주 저자인 팀 사하이 박사는 “한국은 정부의 성공적인 산업 정책을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가장 잘 알려진 사례이지만 오늘날 급변하는 여러 환경에서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며 “한국 정부는 여러 정치적, 지정학적 변화에 단호하게 대응해 왔음에도 에너지 전환에 대한 정치적 지원은 취약한 상태로 산업과 에너지 전환을 통합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