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최태원 이혼 '1.4조원' 판결에 충격...거버넌스에 미칠 파장은
경영권 분쟁 가능성에 SK㈜ 주가 9.3% 급등 최 회장측, 주식담보대출로 자금 마련 나설 듯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 경영 혼란 '불씨'로 잠복
[ESG경제신문=홍수인 기자] '세기의 이혼'으로 불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에서 법원이 30일 노 관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SK그룹의 거버넌스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2심에서 ‘주식도 분할 대상’이라는 판단이 나오면서 30일 SK㈜ 주가는 전일 대비 9.26% 뛰어오른 15만81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날 장 초반 강보합세를 오가던 주가는 서울고법의 판단이 알려지면서 급등 흐름을 탔다. 향후 경영권 분쟁을 기대한 투자자들이 대거 매수에 나서면서다.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 김옥곤 이동현)는 30일 두 사람의 이혼 소송 항소심 선고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액 1조3808억원,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1심이 인정한 재산분할액 665억원, 위자료 1억원보다 약 20배 늘어난 금액이다. 국내의 이혼소송 관련 재산분할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재판부, SK㈜ 주식도 부부 공동재산으로 판단
항소심 재판부는 SK㈜ 주식도 부부 공동재산으로 판단했다. 이에 두 사람의 합계 재산 4조115억원을 최 회장 65%, 노 관장 35% 비율로 현금 분할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혼인 기간, 재산 생성 시점, 형성 과정 등에 비춰볼 때 SK 주식에 대한 피고(노 관장) 측의 기여가 인정되므로 부부 공동재산에 해당하며 분할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1991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 회장의 부친에게 상당한 자금을 건넸다고 판단했다. 또 고 최종현 SK 회장이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등 무형의 기여가 있었다고 봤다. 이런 몫을 노 관장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게 판결 요지다.
재계와 증시에서는 법원이 노 관장의 경영 기여를 인정하며 최 회장의 SK㈜ 주식도 분할 대상으로 판단함에 따라 향후 기업 거버넌스에도 영향을 미칠 중대 사안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SK그룹도 공식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최 회장 측 변호인단은 입장을 내고 "재판의 과정과 결론이 지나치게 편파적인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밝힌다"며 "상고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반드시 바로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측 대법원 상고 예정...거버넌스 영향 당장 없을 듯
최 회장 측이 대법원 상고를 예고한 만큼 당장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향후 SK그룹의 거버넌스에는 영향이 미칠 잠재적 불안 요인으로 불씨를 키워나갈 것으로 재계는 분석한다.
최 회장은 3월 말 기준으로 SK㈜ 지분 17.73%(1297만 5472주)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지주회사인 SK㈜를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SK㈜는 SK텔레콤(30.57%), SK이노베이션(36.22%), SK스퀘어(30.55%), SKC(40.6%)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전에는 SK그룹의 지배구조가 '최 회장→SK C&C→SK㈜→사업회사'의 구조였으나, 2015년 SK C&C와 SK㈜의 합병이 이뤄지면서 '최 회장→SK㈜→사업 자회사'로 단순화됐다. 당시 최 회장의 SK㈜ 지분은 3%대에 불과했지만, 비상장 회사였던 SK C&C와 합병을 통해 SK㈜ 지분을 17.7%로 끌어올려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최 회장 측 SK㈜ 지분이 25.57%. 재계 안팎에서는 거버넌스 개편의 회오리가 일 경우 경영권 방어에 취약할 수 있는 애매한 지분율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재판부가 재산분할 액수를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한 만큼 최 회장의 지분을 쪼개야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는 피했지만, 1조원이 넘는 금액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고민도 커진 상태다.
최 회장은 3월 말 기준으로 SK㈜ 지분 외에도 SK케미칼(6만7971주·3.21%), SK디스커버리(2만1816주·0.12%), SK텔레콤(303주·0.0%), SK스퀘어(196주·0.0%)도 보유하고 있다. 비상장사인 SK실트론의 지분 29.4%도 보유 중이다.
현재로는 보유 지분을 담보로 대출받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전날 종가 기준으로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 가치는 약 1조8700억원이다. 일각에서는 SK실트론 지분 매각 등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증시 전문가들은 과거 '소버린 사태'로 거버넌스 위기를 경험한 최 회장이 지분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하는 카드는 끝까지 쓰지 않으려 애쓸 것으로 진단한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현재 최 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은 통상 안정적으로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다고 보는 35%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며 "SK그룹 지배력에 위기고, 최 회장 개인에게도 위기"라고 진단했다.
반면 손종원 한국ESG평가원 대표는 "대법원 판단이 나오기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최 회장이 당장 재산 분할 자금을 마련하는 등 대응은 없을 것"이라며 "일부 주식투자자들이 기대하는 경영권 분쟁도 일어나지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