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 ESG공시 이중중대성 평가 91%...ESRS 선제적 대응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기업 분석, ’22년 26.5%→'23년 91.2%로 급증 국내 ESG공시 도입 최대한 늦추자는 주장 나오지만 대기업은 발빠른 대응

2024-07-03     이신형 기자
대한상공회의소는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상장사협의회 등과 공동으로 25일 세종대로 대한상의회관에서 ‘국내 ESG 공시제도에 대한 경제계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대한상의

[ESG경제신문=이신형기자] 국내 대기업 중 유럽연합(EU)의 ESG 공시기준인 ESRS 기준이 요구하는 이중중대성 평가를 실시한 기업이 최근 급증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를 놓고 국내 대기업들이 ESRS 공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법제연구원의 최유경 연구위원은 1일 한국법제연구원과 대한변호사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4회 ESG 제도화 포럼‘에서 “2021년에는 이중중대성 평가를 실시한 대기업이 없었던 반면, 2022년에는 26.5%를 기록했고 2023년에는 91.2%로 급격히 증가”했다고 밝혔다.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지난 4월 30일 국내 ESG 공시기준 초안을 공개한 후 경제단체들은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ESG 공시 의무화 시기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들은 KSSB 기준보다 훨씬 다양한 정보를 공시하도록 요구하는 EU의 ESG 공시에도 대비하는 등 ESG 공시를 일찌감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최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ESRS 기준 등 이중 중대성 적용을 요구하는 해외 ESG 공시기준 의무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재무중대성은 ESG 요소의 재무적 영향을 중시한다. 재무중대성을 채택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과 이에 기반한 KSSB 기준은 중요한 정보를 ISSB는 중대한 정보를 “어떤 정보에 대해 기업이 공시를 생략하거나, 잘못 진술할 경우, 또는 불문명하게 진술할 경우 재무제표를 이용해 투자 판단을 하는 투자자들의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정보”로 정의한다.

반면에 ESRS 기준은 재무중대성뿐 아니라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중대성까지 포함한 이중중대성을 채택하고 있다.

공시주제에서도 ESRS기준은 기후 공시 중심인 ISSB나 KSSB 보다 훨씬 다양하다. ISSB나 KSSB가 추가적으로 만들 자연자본이나 인적자원에 대한 공시가 이미 ESRS 기준에 포함돼 있고 환경 영역에서도 기후변화 대응뿐 아니라 오염이나 수자원 및 해양자원, 생물다양성, 자원 사용 및 순환 경제에 대해서도 공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최 연구위원은 "국내 기업도 ESRS를 포함한 지속가능성 의무공시 기준 도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기업들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늘리는 이중중대성 개념을 보다 자발적으로 수요하되, 국내 공시기준 제정은 국제적 제도화 움직임에 맞춰 효율적인 지속가능성 정보 공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ESG 공시에 대한 기업의 비용 부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특히 중소중견 기업의 경우 중장기적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SG 공시 늦추는 게 최선인지 생각해봐야"

국내 대기업들이 ESG 공시 의무화 추세에 이미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상원 KPMG 상무는 지난 2월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와 한국회계기준원, 한국환경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산업계 기후 리더십 공동 심포지엄’에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ISSB와 ESRS 기준에 맞춰 ESG 공시 대응 체계를 신속하게 구축하고 있다며 “올해 이후 국내에서도 시범적인 형태의 공시 이행 확산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문 상무에 따르면 KPMG가 ESG 공시 도입을 선도하는 8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ESG 공시 대응 현황을 조사한 결과 8개 기업이 모두 ISSB 기준 공시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고 7개 기업은 ESRS 기준도 자회사의 ESG 공시 등을 위해 대응 체계를 마련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별 대응 사례를 보면 ESG 공시에 선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KB금융그룹은 “24년부터” ISSB와 ESRS, 미국 SEC의 기후공시기준에 모두 대응하는 공시 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ESRS 기준이 요구하는 지표를 포함한 공시 지표를 구축하고 있으며 내부적인 공시 관리 체계 구축 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대외 공시는 단계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공시에 필요한 데이터 수입은 이미 지난해 완료했다. ESG 공시 체계 구축은 CFO가 주도하고 있다.

IT업종의 네이버와 KT는 올해 기존 대비 ESG 데이터 관리 범위를 대폭 확장하고 ISSB 기반 시범 공시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ESG 공시 대응을 위한 IT 시스템 개발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 회사 유럽 법인은 EU ESRS 공시 대응 TF를 설립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ESG 공시 도입 시기와 관련, 도입 시기도 글로벌 정합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국가의 경우 공시 시기는 '25~'27년 정도로 확정"되고 있다며 "2026년이나 늦어도 2027년부터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화우의 김정남 그룹장도 지난달 25일 열린 ‘국내 ESG 공시제도 경제계 토론회’에서 “‘26년이나 ’27년, ‘28년에 의무화해도 괜찮다는 기업도 많다”며 ESG 공시를 도입하는 나라가 “대부분 ’26~‘28년”부터 시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EU의 ESG 공시 등에 국내 대기업이 미리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마냥 늦어지는 게 최선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U 기업들은 2024년부터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ESRS기준에 따라 ESG 공시에 나서야 한다. 삼정KPMG의 김진귀 전무는 자사 뉴스레터 기고문에서 임직원 250명, 매출 4000만유로(약 565억원), 총자산 2000만유로 초과 중 2개만 해당해도 적용 대상이 되기 때문에 EU에 진출한 다수의 한국 기업도 공시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2028년부터는 EU에서 실질적인 기업활동을 하는 한국의 최상위 모기업들도 적용 범위에 포함된다“며 ”ESRS 기준이 현지에 진출한 외국 기업뿐 아니라 해외에 있는 모기업에 대해서도 공시의무를 부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결기준으로 EU 내 매출이 1억5000만유로 이상이면서 EU 내 매출 4000만유로 이상의 지점이나 현지 법인이 있으면 해외 모기업도 적용대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