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탄소가격제 수용 의미는?
여러 탄소가격제 수단 중 탄소세 염두 아직은 선언적 의미...합의 도달 시기 예측 어려워
[ESG경제=이신형기자] 주요 20개국(G20)이 지난 10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처음으로 탄소가격제를 기후변화 대응 수단으로 수용함에 따라 앞으로의 논의 동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G20은 회의가 끝나고 발표한 성명에서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의 하나로 탄소가격제를 언급했다. 미국의 정권 교체로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탄소가격제에 대한 G20의 입장 변화가 가능했다.
탄소가격제는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 유럽연합이 도입하기로 한 탄소국경세와 같은 규제 수단을 뜻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에서 배출된 탄소에 가격을 부여하는 탄소가격제는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억제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밝혔다.
G20의 탄소가격제 논의 동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소식통들에 따르면 G20의 탄소가격제 언급은 여러 수단 중 특히 탄소세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탄소 발생 단계에서 과세가 이루어져 탄소 발생을 억제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선언적 의미에 그치고 있어 언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합의에 도달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탄소세, 기업에 세금 절감을 위해 탄소 저감 독려하는 효과
2016년 발효된 파리기후협약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1.5℃로 제한하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18년 발표한 ‘지구 온난화 1.5℃ 특별보고서’는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이 수준으로 제한하려면 2050년에는 탄소 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파리협약 당사국은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제출하고 2020년부터 5년마다 목표를 상향해야 한다.
탄소 중립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배출된 온실가스는 산림을 통해 흡수하거나 친환경 기술인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를 사용해 제거해 달성해야 한다. CCUS는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는 근원지에서 포집하고 필요한 곳에서 사용하거나 지하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탄소세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적용대상이 광범위하고 정책의 투명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 기업들이 탄소 저감 기술 개발에 나서도록 독려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탄소세 부과는 조세저항을 불러오고 탄소세 부과에 따른 에너지 비용 상승이 가계지출 증가로 이어져 소득재분배가 악화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석유화학이나 철강 등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탄소가격제의 다른 수단인 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 배출 사업장을 대상으로 배출권을 할당해 할당된 배출량의 잉여분이나 부족분을 매매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배출권 거래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어 기업의 배출량 감축 목표의 초과달성을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배출권거래제를 적용하기 어려운 사업장이 많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국회 예정처는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하여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 등 시장기반적 규제수단에 관한 관심이 증대되는 추세”라며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를 시장실패의 일종으로 보고, 시장기반적 규제수단인 탄소세 또는 배출권거래제를 도입, 시행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탄소가격제의 또 다른 수단인 탄소국경세는 자국보다 탄소 배출 규제가 약한 나라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로 유럽연합이 도입하기로 했다. 미국에서도 탄소국경세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탄소국경세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관세 장벽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유럽연합이 14일 발표하는 기후변화 대응 입법 패키지 ‘핏포55(Fit for 55)는 탄소국경세와 함께 유럽연합 역내를 운항하는 항공기가 사용하는 유류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 2035년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중단 등의 조치가 담길 예정이다.
25개국 탄소세 도입
국회 예정처에 따르면 현재 탄소세를 도입해 과세하는 나라는 25개국이다. 최고 세율은 스웨덴의 CO2톤당 119 달러, 최저 세율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CO2톤당 1달러 미만이다.
북유럽 국가는 탄소세와 EU의 배출권거래제를 함께 시행하고 있으나, 이중 규제에 따른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직접세 감세와 산업용 자재 생산 기업의 탄소세 감면 등의 보완책을 마련했다.
특히 1990년 세계 최초로 탄소세를 도입한 핀란드는 1997년과 2011년 에너지 세제개혁을 통해 소득세와 기업의 사회보장비를 감면해 온실가스 저감과 기업 경쟁력 유지 사이에서 균형을 도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1년 탄소세를 도입한 스웨덴도 법인세와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득세를 감면했고 1992년 탄소세를 도입한 덴마크는 급격한 세 부담 증가를 완화하기 위해 에너지세를 인하하고 소득세와 법인세 등을 감면해 세수 중립성을 유지했다.
프랑스는 2014년 4월 탄소세를 도입했고 현재 CO2톤당 30.5 유로인 탄소세율을 2030년까지 CO2 톤당 100유로로 인상할 계획이었으나, 2018년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노란조끼 시위로 인상을 유예했다. 네덜란드는 올해부터 산업부문에 탄소세를 부과하기로 했으나, 세율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호주는 2012년 탄소세를 도입했으나, 광산과 에너지, 유통기업의 세부담과 에너지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 시행 2년 만에 폐지했다.
한국에서 탄소세 관련 법안은 2013년 19대 국회에서 심상정 의원과 박원석 전 의원이 발의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는 정의당의 장혜영 의원이 유연탄과 무연탄, 중유, LNG 등 화석연료에 대해 탄소세를 부과하는 탄소세 법안을 발의했다. 먼저 CO2톤당 50달러 수준의 탄소세를 부과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올려 2030년까지 100 달러까지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혜영 의원에 앞서 기본 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환산한 이산화탄소상당량톤에 대해 탄소세를 부과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세수를 기본 소득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조세연구원과 산업연구원, 환경연구원, 교통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관련 국책연구기관에 탄소세 도입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하지만 도입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도입이 결정돼도 시행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