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태양광 공급 과잉에 전기값 '뚝뚝'…전력망·ESS로 투자금 이동

재생에너지 발전 급증하면서 전기요금 폭락 빈번해져 기대 수익 저하로 재생에너지 투자 부진 우려 ESS와 전력망 투자 전기요금 안정화에 중요한 역할

2024-10-07     김연지 기자
태양광 발전 패널. 사진=연합뉴스

[ESG경제신문=김연지 기자] 유럽 전역에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급증하면서 전기 요금이 하락함에 따라 재생에너지 전력 확보에 집중돼있던 투자 흐름이 전력망과 에너지저장시스템(ESS)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영국 컨설팅 기업 오로라에너지리서치(Aurora Energy Research)는 최근 보고서를 발간하고 스페인을 주요 사례로 들어 이같이 예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스페인은 태양광 과잉 공급으로 올해 전력 가격이 크게 떨어졌으며, 이에 따라 계획된 태양광 프로젝트가 예상 수익성 하락으로 착공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보고서는 이같은 전력 가격 폭락이 소비자에게는 유리할 수 있지만, 일부 태양광 프로젝트의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을 위협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배터리는 낮 동안 태양광에서 과잉 생산된 전력을 흡수하고 밤에는 배출하여 화석연료의 백업 필요성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유럽, 에너지 가격의 폭락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한 에너지 가격 폭락은 스페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에너지규제기관협력청(ACER)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의 시간대별 전력 경매 가격이 메가와트시당 0 유로 이하로 떨어지는 시간이 전년대비 12배 급증했다.  

유럽 최대 전력시장인 독일은 지난해 전력 도매 가격이 메가와트시당 0 유로 이하로 떨어진 시간이 약 300시간에 이른다. 데이터 분석 기업 엔앱시스(EnAppSys)에 따르면, 이는 2024년에 두 배로 증가할 수 있다. 

블룸버그NEF(BNEF) 역시 지난 7월 올 여름 독일의 태양광 패널 설치가 확대되며 태양광 발전량은 전년 대비 34% 증가한 신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같은 기간 전력 수요는 1%만 증가할 예정이라 가격 폭락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분석한 바 있다. 

에너지 소프트웨어 기업 모두에너지(Modo Energy)는 영국의 시간대별 전력 경매 가격이 메가와트시당 0 파운드 이하로 떨어지는 시간은 2027년까지 점차 증가해 1000시간을 돌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 밖에서도 재생에너지 보급률이 급격히 증가하는 지역들은 이같은 전력 가격 폭락을 경험하고 있다. BNEF에 따르면 지난해 호주에서는 국가전력시장 전반에 걸쳐 전력 도매 가격이 메가와트시당 0 호주달러 이하로 떨어진 시간이 전체 14%에 달했다. 전체 전력 소비의 절반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역시 지난 4월까지 전력 가격이 0 달러 이하로 하락한 시간이 592시간으로, 이미 지난해 기록을 넘어섰다.

이렇게 낮게 형성되는 전력 가격은 태양광 프로젝트에 대한 예상 수익성을 하락시켜 향후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점차 증가하는 태양광 발전량과 풍력 발전량이 역설적으로 더 많은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을 어렵게 만드는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다.  

ESS로 향하는 투자 흐름

보고서에서 오로라에너지리서치는 이같은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많은 국가들이 ESS 투자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면적과 인구 규모에서 스페인과 비슷하고, 태양광 설치 용량이 유사한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지금까지 11.2기가와트의 저장장치를 추가했다. 이는 과잉 공급으로 인한 가격 급락을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스페인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예고하기에는 충분하다. 

올해 말까지 35기가와트 이상의 태양광 발전 설치 용량을 갖추게 될 스페인 역시 지난 4월 전력 가격이 11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스페인 정부는 2030년까지 12.5기가와트의 배터리와 태양광 저장장치를 추가할 계획이다.

보고서는 캘리포니아의 ESS가 전력 가격 폭락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과잉 공급으로 인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로라는 이러한 현상이 스페인에서도 재현될 수 있으며,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저장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지난 9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3배 늘린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2500만km의 전력망 확충과 현대화가 필요하고, 1500GW 규모의 에너지 저장장치를 설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30년 재생에너지 3배 확충 목표를 달성하려면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뿐 아니라 에너지 저장장치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는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재생에너지 초과 발전량을 저장해 전력 수급의 유연성을 높이면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여 천연가스 수입에 따른 비용을 연간 90억유로(약 13조 2700억원)까지 절감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