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되면 美 배제하고 기후행동 협력 추진...중국 주도 가능성
블룸버그, 기후 외교관들 물밑에서 미국 파리협정 탈퇴 대비
[ESG경제신문=이신형기자] 여러 나라 정부 관계자들과 전직 외교관, 환경운동가 등이 이달 열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에 대비해 미국이 빠진 상태에서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뉴스가 1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특히 미국의 파리협약 탈퇴가 중국이 기후 문제를 주도하는 나라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NRDC 액션 펀드의 제이크 슈미트 선임자문은 “이런 논의는 트럼프 1기의 경험에 따른 것”이라며 “기후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다른 나라들이 화석연료 산업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행정부에 의해 다시는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자원연구소의 국제 기후 이니셔티브(World Resources Institute’s International Climate Initiative)의 데이빗 와스코우 이사는 미국의 파리협약 탈퇴는 “실질적으로 다른 나라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중국이 더 중심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젠 바쿠에서 열리는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를 한 달 가량 앞두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집권을 우려하는 이해관계자들은 미국을 거치지 않는 새로운 기후 외교 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미국 메릴랜드주와 캘리포니아주의 관료들은 중국 관료들과 만나 지속적인 기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일부 주의 대표단이 지난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주정부 관료들은 2017년 트럼프가 주요국 정상들이 참석해 에너지와 기후문제를 논의하는 포럼 개최를 중단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기후행동을 위한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 당시 주요국들은 미국이 참석하지 않는 별도의 연례회의를 시작했고 이 회의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일부 기후 외교관들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 대선이 치러진 후 6일 만에 열리는 COP29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실시하기도 했다. 지난 주에 위기 시 소통에 관한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활동가들도 있다.
과거 트럼프의 파리협약 탈퇴 선언 후 이들이 경험한 충격을 똑같이 겪지 않으려는 시도다.
트럼프는 지난 2017년 파리협약 탈퇴 절차에 착수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선거에서 승리한지 하루 뒤인 2020년 11월4일 미국은 공식적으로 협약에서 탈퇴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1월 취임한 지 하루 만에 유엔에 파리협약 복귀를 알렸다.
미국 보수진영은 파리협약 탈퇴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마이론 에벨 미국토지위원회(American Lands Council) 회장은 파리협약이 “미국 경제 전반에 엄청난 부담을 준다”고 말했다.
파리협약에서 탈퇴하면 미국은 2025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된다. 또한 미국은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 출연도 거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COP29의 핵심 의제 중 하나인 기후변화 대응 재원 마련에 대한 합의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보수단체 파리협약뿐 아니라 기후변화협약 탈퇴까지 주장
트럼프 2기의 정책 청사진이 담긴 ‘프로젝트 2025(Project 2025) 보고서를 발간한 헤리티지재단을 비롯한 보수단체들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파리협약뿐 아니라 유엔 기후변화협약(UN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에서도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엔기후변화협약까지 탈퇴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캠프는 이런 주장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유엔기후변화협약 탈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국무부에 법률자문을 해줬던 해롤드 고 예일대 로스쿨 교수는 미국 대통령이 파리협약 탈퇴보다 더 급진적인 조치인 유엔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하면 바로 다음 날부터 소송이 제기되고 판결까지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해도 기후변화 협약당사국총회에 변화를 초래하겠지만, 당사국총회가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외교관들은 전망했다. 미국은 여전히 당사국이 아닌 옵저버 자격으로 총회에 참석할 수 있다.
미국은 유엔 생물다양성협약에 서명하지 않았으나,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해 왔다.
윌리엄 앤 플로라 휴렛 파운데이션(William and Flora Hewlett Foundation)의 환경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고 있는 베테랑 기후 외교관인 조나단 퍼싱은 미국이 파리협약이나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해도 기후행동의 속도와 규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미국을 따라 협약에서 탈퇴하는 나라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나라를 상대로 미국을 따르라는 캠페인을 벌였으나, 미국을 제외한 세계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