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수의 에코인사이드] 스페인 기습 폭우가 주는 교훈

스페인 기습 폭우로 200명 이상 목숨 잃어 제주도 기상관측 사상 11월 최대 강우 기록 기후변화·개발로 국내 도시들 홍수에 취약 빗물 잘 스며들게 하는 저영향개발 확대를 도시 ‘정맥’ 하수관이 건강해야 시민도 건강

2024-11-03     강찬수 기자
지난 1일 (현지 시각) 스페인 발렌시아의 알파파르에서 시민 경비대원이 폭우로 철도 선로에 올라앉은 차량 아래에서 희생자를 수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발렌시아 등 스페인 남동부 지역에는 3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일부 지역에는 8시간 동안 거의 500㎜가 퍼부었다.

이번 기습 폭우와 관련해 스페인 국립기상청(AEMET)은 지중해 특유의 기상 현상인 DANA (Depresión Aislada en Niveles Altos) 탓이라고 설명한다. 제트기류에서 떨어져 나온 높은 고도(9000m 상공)의 정체 저기압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정체된 차가운 공기 덩어리가 지중해 위에서 따뜻하고 습한 기단과 마주칠 때 강력한 비구름을 형성하게 되는 게 DANA다. 매우 짧은 시간에 엄청난 비를 쏟기 때문에 스페인에서 가장 위험한 기상 현상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다. 이번에는 스페인 남동부 상공에 차가운 공기 덩어리가 정체했다.

DANA는 원래부터 있었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지중해 공기가 예전보다 더 따뜻해지고, 더 습해져서 이번에 더 강력한 비를 뿌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기상학자들은 말한다. 더욱이 과거에는 5~10월에 나타나던 DANA가 이제는 11월에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대참사가 기후 요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당국의 미흡한 대처가 도마에 올랐다.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당일 오전 9시41분 기상청은 발렌시아 지방 폭우 경보를 가장 높은 ‘적색 단계’로 상향했다. 하지만 기상청 대변인은 정오 무렵에야 영상 메시지를 통해 적색경보 상황을 주민들에게 알렸다.

기습 폭우가 발생한 스페인 남동부 지역의 위성 사진.  농경지가 잠기고 인근 바다까지 흙탕물이 번졌다.  [자료=미 항공우주국(NASA)]

기상청이 상황이 호전될 것으로 예상했다가 오후 5시에 뒤늦게 안전대책회의를 소집했고, 오후 8시가 넘어서야 주민들에게 긴급 재난 안내 문자를 발송했다. 많은 시민은 ‘적색 단계’가 발령되고도 10시간 이상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됐다. 이 사이 폭우로 강과 하천은 범람했고, 퇴근길 정체된 도로의 차에 갇혀있던 시민들이 다수 희생됐다. 이번 스페인의 참사는 엄청난 물 폭탄을 퍼부은 천재에다 당국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인재가 겹치면서 발생한 셈이다.

한반도에서도 ‘극한 호우’ 피해 늘어

한반도에도 폭우가 쏟아졌다. 11월 첫날 제주도에는 엄청난 비가 퍼부었다. 제주 지점에는 1일 하루 238.4㎜를 기록, 11월 기록으로는 101년 만에 가장 많은 강수량이 관측됐다. 제주 성산 지점의 일강수량도 242.1㎜로 측정됐다. 제21호 태풍 ‘콩레이’가 몰고온 수증기 탓에 200년 만에 한 번 내릴 정도의 폭우가 쏟아졌다. ‘콩레이’는 드물게 11월에 한반도로 접근할 것으로 우려됐던 태풍이다.

강하고 많은 비가 내린 1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한 도로가 침수돼 소방 당국이 배수 작업을 하고 있다. 11.1 [제주도 소방안전본부 제공. 연합뉴스]

이번에는 다행히 큰 피해는 없지만, 우리에게도 폭우 피해를 입은 기억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7월 15일 벌어진 오송 지하차도 참사다. 미호강에서 350여m 떨어진 궁평2 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시내버스 등 자동차 17대가 침수되고 14명의 시민이 숨졌다.

2022년 8월 8일 서울 등 수도권에 쏟아진 폭우도 기억에 생생하다. 서울 동작구에는 380㎜의 일강수량을 기록했고, 저녁 한때는 시간당 140㎜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금천구 등에도 300㎜가 넘게 퍼부어 강남역 일대 하수가 역류하고, 양재역 일대 도로가 물에 잠기는 피해가 발생했다.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가족 3명이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폭우가 쏟아질 때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을 표시한 ‘내수 침수 위험 지도’가 제작되지 않아 신속한 대피를 유도하는 등 피해를 예방하지는 못했다.

기상청은 8일 당일 오전 10시에 기상청은 집중호우 발생을 예상했지만, ‘주의하라’는 통상적인 수준의 예보를 내는 데 그쳤다. 주무 부처인 환경부의 장관은 그날 저녁 한강홍수통제소에서 퇴근한 후 3시간 동안 홍수 피해를 줄이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기후변화로 폭우 피해에 대한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지금처럼 기후변화가 계속된다면 미래에는 한반도의 호우일수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는 연구 결과도 많다. 더 강력한 태풍이 더 자주 한반도를 강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당장 지난 9월 경남 창원에는 이틀 동안 530㎜의 비가 내리기도 했다. 기상청은 지난 5월부터 ‘극한 호우’에 대한 긴급 재난문자를 발송하고 있다. '1시간에 50㎜'와 '3시간에 90㎜'라는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를 극한 호우라고 한다.

작은 댐은 오히려 홍수 피해 키울 수도

환경부에서는 지난 7월 홍수와 가뭄을 예방하기 위해 ‘기후 대응댐’이라는 이름의 작은 댐 14개를 전국 곳곳에 짓겠다고 발표했다. 환경부의 발표는 곧바로 지역 주민의 거센 반발에 시달렸다. 국내외 사례를 보면, 폭우가 쏟아질 때는 작은 댐이 오히려 홍수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실제로 지난해 9월 리비아에서는 2개 댐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도시를 덮쳐 수만 명이 숨졌다. 지난 8월에도 수단에서 댐이 무너졌고, 9월에는 나이지리아에서 댐이 무너져 30여 명이 숨지고, 40만 명이 대피하는 일이 있었다.

총저수량 1530만㎥인 충북 괴산댐의 경우 2023년 7월 15일 폭우로 많은 물이 유입되면서 댐이 넘치는 월류가 발생했고, 하류에 위치한 주민 1743명이 긴급 대피해야 했다.

환경부가 발표한 기후대응댐 가운데 8곳의 저수량은 이 괴산댐과 비슷하거나 훨씬 작은 규모였다. 아예 완전히 비워두지 않는다면 폭우 때 홍수 예방에 도움을 주기 어렵다.

환경부가 7월에 발표한 기후대응댐 14곳 후보지. [자료: 환경부]

큰 댐이 있더라도 수위 조절에 실패한다면 홍수 피해를 키울 수도 있다. 지난 2020년 8월에는 섬진강댐에서 물을 방류하는 바람에 홍수 피해가 커졌다는 주민 주장 때문에 논란을 벌어지기도 했다. 홍수기에도 수위를 낮추지 않고 높게 유지하다가 폭우가 쏟아져 많은 물을 방류할 수밖에 없어 피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환경부는 지난달 환경부는 주민 반발 등을 이유로 14곳 중 4곳의 댐 건설 추진을 유보한다고 발표했는데, 유보한 4곳의 저수량이 전체 14곳 저수량의 68%를 차지해 당초 기후대응 댐 건설 계획 자체가 무색해졌다.

11월 낙엽과 폭우가 만나면 도시는 위험

도시는 과거보다 홍수에 훨씬 더 취약해졌다. 집중호우는 잦아졌지만 도시 하천은 과부하가 걸렸다. 도시 개발로 콘크리트 포장이 늘면서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 그대로 하천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감당하기 힘들게 됐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토의 8.6%가 불투수면이고, 서울지역의 경우는 52.9%가 불투수면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하천부지 총면적은 2012년 2842㎢에서 2021년 2866㎢로 거의 변화가 없다. 반면, 전국의 도로와 대지를 더한 면적은 같은 기간 5804㎢에서 6713㎢로 15.7% 늘었다. 도로와 대지가 늘어나면 그만큼 불수면도 늘어난다. 환경부는 2041~2070년에는 강수량이나 하천으로 들어오는 빗물의 양이 과거(1976~2005년)보다 9%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상황에서 폭우가 내린다면 도시의 침수 위험이 커지게 된다. 빗물이 하천으로 빠지지 못하거나, 하천 제방이 낮아 하천의 물이 도시로 범람할 위험이 증가하게 된다.

콘크리트 포장 탓에 하천으로 내보내야 할 빗물은 늘어났지만, 하수관 용량이나 배수시설은 확충하지 않아 침수 피해가 일어난다.

하천을 가로지르는 교량을 충분한 높이로 설치하지 않는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교량을 새로 설치할 때 제방 위 기존 도로에 차량이 계속 통행할 수 있도록 하려고 교량 아래로 들어가는 제방을 깎고 낮추기도 하는데, 이는 하천 범람 위험을 키우기도 한다.

도시 구조가 기후변화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시간당 140㎜의 폭우는 기존의 도시 설계로는 감당하기에 너무 큰 강수량이다. 여기에다 2~3시간 안에 발생하는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집중호우에 신속하게 대처할 역량도 부족하다.

기후변화로 11월에도 1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질 위험은 상존한다. 실제로 2022년 11월 13일 서울 등 수도권 곳곳에서는 도로와 인도가 침수되는 일이 벌어졌다. 낙엽이 도로변 배수로, 즉 빗물받이를 막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낙엽과 폭우가 만날 일이 없었는데, 기후변화 탓에 두 가지가 만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촉진구역’에 물순환 종합계획 수립 추진

지난달 25일 ‘물순환촉진법(물순환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법)’이 시행됐다. 법은 “기후변화 및 도시화로 인한 가뭄·홍수 등 재해와 물 부족, 수질 악화 및 수생태계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물 관리 시책을 통합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건전한 물순환 체계를 구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법에서는 특히 환경부 장관이 ‘물순환 촉진구역’을 지정, 물순환 촉진 종합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불투수면 비율이 높아 물순환이 왜곡된 지역 ▶용수공급 시설이 부족해 물이용에 취약한 곳 ▶취수시설의 용량이 부족해 물재해에 취약한 곳 ▶수질오염 등으로 물환경이 취약한 곳 등을 4가지 항목을 각 5개 등급으로 평가, ‘가장 취약’에 해당하는 1등급이 1개 이상인 지역이나 평균 등급이 1등급 혹은 2등급이 나오는 지역을 촉진구역으로 지정하도록 했다.

물순환 촉진 종합계획을 꼼꼼하게 수립할 경우 촉진구역으로 지정된 곳에서 홍수 피해를 막는 데는 ‘중장기적으로’ 도움이 되겠지만, 당장 닥쳐올 홍수 피해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촉진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지역도 피해를 볼 수 있다. 정부 차원의, 전국 차원의 종합적인 홍수 대책을 마련해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인공지능·디지털트윈 기법 홍수 대책 마련을

홍수 피해 방지 대책은 정확한 기상예보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국형 수치예보 모델의 성능 향상과 더불어 돌발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기상 레이더 확충도 필요하다. 많은 인구가 몰려있는 수도권 지역에서는 상세하고 신속한 예보를 위해 소형 기상 레이더의 설치가 필요하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소규모 유역별 강수량 예측 기법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주요 하천별로 수위 관측 지점을 확대해서 데이터를 더 많이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천 수위 예측 기술을 향상할 수 있다. 댐 수위를 조절하거나 배수펌프를 가동하는 데 있어 디지털트윈 기법을 활용할 경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방류를 언제할 것인지, 배수펌프를 언제 어떻게 가동하는 것이 최상일 것인지 가상공간에서 미리 적용해 본 다음에 실제로 적용하는 것이다.

디지털 홍수 지도 작성도 필요하다. 하천의 범람에 대한 홍수지도 작성뿐만 아니라 하천이 범람하지 않았더라도 집중 호우가 발생했을 때 도시 내부의 침수 가능성에 대한 디지털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강수량과 하천 수위, 인구분포, 도로와 주택 형태 등을 결합한 실질적인 침수 지역 예보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이는 장애인 등 취약 계층 대피 계획으로 이어져야 한다.

아울러 도시 지역에 산업시설이나 쓰레기 매립지 등이 침수됐을 때 하수를 통해 유입될 유해 화학 물질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태풍이나 폭우로 산업시설이 침수됐을 경우 어떤 유해 물질이 유출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디지털 도시 침수 지도에 반영해야 한다.

도시에서 빗물이 땅속으로 더 많이 스며들게 하는 방법들. a, 우수 침투 연못, 프랑스 빌뢰르반. b, 우수 유출수 관개 가로수, 캐나다 몬트리올. c, 다공성 포장, 프랑스 발랑스. d, 습지 및 우수 정원, 싱가포르. e, 우수 탱크, 호주 멜버른. f, 거리 우수 정원, 캐나다 몬트리올. g, 거리 우수 정원, 호주 멜버른. h, 주차장 침투 습지, 프랑스 빌뢰르. [자료: nature reviews earth & environment, 2024]

도시 빗물이 땅속으로 잘 스며들도록 녹지를 늘리고, 가로수 주변에는 흙이 드러나게 하고, 주차장 등에는 투수성 포장을 늘리는 등 저영향개발(LID)을 추진할 필요도 있다.

하수관 역류 막아야 시민 건강

이런 것들 외에 당장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하수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노후 하수관을 교체할 때 단순히 교체에 그칠 게 아니라 하수도 용량을 확대해야 한다. 더 많은 빗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수관의 직경을 더 큰 것으로 교체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수처리장에서 받아놓는 초기 우수의 저장량도 늘려야 한다. 초기 우수에는 도시 곳곳에 쌓여 있던 오염물질과 병원균 등이 들어있을 수 있다. 이것이 하수관 역류와 겹치면 시민 건강을 크게 해칠 수 있다.

도로변 빗물받이가 담배꽁초나 낙엽으로 막히지 않도록 청소하고 관리할 필요도 있다. 아예 쓰레기나 낙엽이 들어가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빗물받이를 설치한다면 간단하고 신속한 작업으로 도시 침수를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하수관이 역류할 때 압력으로 맨홀 뚜껑이 달아나지 않도록 하거나, 사람이 빠지지 않도록 맨홀 구조를 개선하는 작업도 확대해야 한다.

투수 크라우팅 빗물받이. 투수성이 뛰어난 소재로 만들어져 폭우가 쏟아져도 빗물은 잘 통과시키지만, 담배꽁초나 낙엽으로 막힐 위험이 없다.

이제 ‘도시 수문학(urban hydrology)’ 차원에서 하수도의 기능과 역할을 조명해야 한다. 인체에 비유하면 하수도는 도시의 정맥(靜脈)이고, 하수처리장은 도시의 신장(腎臟)에 해당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하수도 모니터링은 중요해졌다. 도시 곳곳에서 하수 시료를 채취해 분석하면 전염병의 확산 상황을 파악, 방역에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른바 ‘하수 역학(疫學)’이다.

도시의 폭우를 해결하는 하수도, 도시의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걸러내는 하수도가 건강해야 도시도, 도시인도 건강하고 안전할 수 있다. 기후변화 시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 하수도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강찬수 칼럼니스트 겸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칼럼니스트 겸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기자 envirep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