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주 기후공시 소송 승소...“실질적인 미국 기후공시 제도”

WSJ, 캘리포니아 기후공시 시행되면 실질적인 美 기후공시 기준 ‘우뚝’ 포춘 1000대 기업 75%에 적용...기업 단체 추가소송에 법적분쟁 지속 SEC‧캘리포니아 기후공시 무산돼도 상당수 美기업 EU 공시제 적용 대상

2024-11-07     이신형 기자
그래프를 가리키며 기후변화에 따른 산불 피해 증가를 설명하는 가빈 뉴솜 캘리포니아주지사. AP=연합

[ESG경제신문=이신형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5일 미국상공회의소(U.S. Chamber of Commerce)를 포함한 기업 단체들이 제기한 기후공시 관련 소송에서 승소했다. 기업단체들이 항소를 시사해 법적 분쟁은 더 이어질 전망이다.

같은 날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추진해 온 연방정부 차원의 상장기업 기후공시 의무화 제도 도입은 사실상 힘들어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만약 캘리포니아주의 기후공시 도입까지 무산된다고 해도 미국 기업의 공시 의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상당수의 미국 기업이 유럽연합(EU)의 요구에 따라 지속가능성 공시에 나서야 한다. 점점 거세지는 투자자들의 지속가능성 공시 요구에 따라 자발적으로 공시에 나서는 기업도 상당수에 달할 전망이다.

EU CSRD는 EU에 자회사를 둔 미국이나 한국 등의 해외 모기업에도 지속가능성공시(ESG공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을 대표하는 빅테크 중심 100여개 기업은 이미 RE100(재생에너지 전력 100% 사용)을 이미 약속한 상태다. RE100 달성은 공시 의무화를 뛰어넘는 파격적 ESG 경영을 의미한다.

삼정KPMG에 따르면 비EU 모기업의 공시 요건은 ▲연결 혹은 별도기준으로 지난 2개년 회계연도 연속 EU내에서 매출이 1억 5000만 유로(약 2000억원)를 초과한 기업 중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건 중 최소 한 가지에 해당하는 기업이다. 두 가지 요건은 ▲한 개의 자회사가 일반공시 요건을 만족하거나 ▲한 개 지점의 전년도 순매출액이 5000만 유로(약 700억원)를 초과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캘리포니아주 기후공시 한 고비 넘겨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3월 캘리포니아에서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 중 연간 매출액이 10억달러(약1조3500억원)를 초과하는 기업의 기후공시를 의무화하는 탄소배출량 공개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기업단체들이 이 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 헌법 제1조를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로스엔젤레스 지방법원의 오티스 라이트 판사는 수정 헌법 위반 여부를 결정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하다며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기업 단체들은 판결의 내용을 살펴보고 다음 단계의 조치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펌 데이비스 폴크(Davis Polk)의 환경변호사 데이빗 질버버그는 이번 판결은 기업들이 캘리포니아주의 요구에 따라 기후공시에 나설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탄소배출량 공개법에 따라 캘리포니아에서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 중 연간 매출액 10억달러(약1조3500억원) 초과 기업은 상장사뿐 아니라 비상장사도 2026년부터 스코프 1, 2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개해야 하고 2027년부터 스코프 3 배출량도 공개해야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기업 감시단체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은 포춘 1000대 기업 중 75%가 캘리포이나주 기후공시 의무화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캘리포니아의 기후공시 의무화 제도가 계획대로 시행되면 “실질적인 미국 기업의 기후공시기준(de facto climate disclosure rules of U.S. companies)”라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SEC의 기후공시제도의 효력이 정지된 상태인데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시행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법은 GHG 프로코콜에 따라 측정한 탄소배출량을 연례보고서(사업보고서에 해당)를 통해 공개하도록 하고 탄소 감축 수단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공개 내용에 대한 제3자 인증도 거쳐야 한다. 탄소배출량을 공개하지 않은 기업에 최대 50만달러의 벌금이 부과되고 불성실하게 공개한 기업에는 최대 5만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정보 공개 위치를 연례보고서로 정한 것은 공개한 정보에 대해 무거운 법적 책임이 따르는 법정공시의 지위를 갖는다는 뜻이다.

다만 스코프3 공시에 대해서는 공시 데이터 수집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2030년까지 면책조항이 적용된다.

SEC 기후공시 생존 힘겨울듯

ESG 전문매체 트렐리스는 6일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 전역에서 SEC 기준에 따른 기후공시 의무화가 도입될 가능성은 “제로(zero)”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매체는 캘리포니아주의 기후공시와 EU의 지속가능성 공시지침(CSRD)이 건재해 이 두 곳의 기후공시 의무화 대상이 되는 미국 기업들도 지속가능성 공시에 나서야 한다고 보도했다.

SEC는 진통 끝에 지난 3월 기후공시기준을 확정하고 2026년부터 대기업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기후공시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제5 연방순회항소법원이 미국의 천연가스 시추기업 리버티 에너지(Liberty Energy)와 노마드 프로판트(Nomad Proppant)가 제기한 SEC 기후공시 정보 공개 규정(이하 기후공시) 시행을 일시적으로 중지해 달라는 효력 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SEC는 기후공시 도입을 보류하고 소송에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SEC가 기후공시기준을 확정, 발표한 후 SEC를 상대로 보수 성향의 25개주와 에너지기업, 환경단체 등이 제5, 6, 8, 11, 2 순회항소법원과 DC 항소법원에 총 9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특히 보수성향의 25개주와 에너지 기업은 기후공시기준을 제정해 기업에 공시를 의무화하는 것은 SEC의 권한 밖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증권감독기관인 SEC가 비재무정보인 기후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게 적법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주정부가 공시 의무화에 나섰기 때문에 공시 요구 기관의 적법성 논란이 빚어질 소지가 없다.

SEC는 기후정보는 기업경영과 투자자의 투자 판단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주장하며 보수진역의 공세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앤이뉴스(E&ENEWS)는 법원이 SEC의 손을 들어줘도 SEC의 기후공시가 시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제도 시행을 막거나 지속적인 시행이 어렵도록 하는 다양한 행정적인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