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SB 기준, 시나리오 분석으로 기후 회복력 평가 요구...50대 기업 대부분 시행
50대 기업 시나리오 분석으로 물리적 위험 알리는데 치중 전환 위험 알린 기업 상대적으로 적어...대응 역량도 제시해야
[ESG경제신문=이신형기자]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제시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G공시기준)이나 이를 기반으로 한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의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은 기후공시에서 시나리오 분석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은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기후 회복력에 대한 기업의 자체적인 평가 결과와 기후변화가 기업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에 대한 대응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국내 기업들은 ISSB 공시 초안이 나왔을 때 공시 내용의 정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으나, 이제는 대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손혁 계명대학교 교수는 지난달 29일 한국회계기준원과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공동 주최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이행지원 및 역량강화 세미나’에서 전홍민 성신여대 교수와 공동으로 수행한 ‘2023~2024년 시가총액 50위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분석’ 연구 결과에 대해 발제했다.
분석 결과 국내 50대기업 중 대다수 기업이 지속가능성공시에 대비해 기후 시나리오 분석을 실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물리적 위험을 알리는 기업이 많았고 전환 위험을 알리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50대 기업 중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한 기업은 47개였다. 이중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급성 물리적 위험을 알린 기업은 44개로 88%를 차지했고 만성 물리적 위험을 알린 기업은 45개로 90%를 차지했다.
전환 위험에 대해서는 내용별로 편차가 컸다.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전환 위험 중 정책과 규제 위험을 알린 기업은 45개로 90%를 차지했으나, 법률 위험에 대해 알린 기업은 50%로 낮은 수준을 보였다.
시나리오 분석을 중요성 평가에 활용한 기업은 45개로 90%를 차지했다. 중요성 평가는 지속가능성 이슈 중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정보를 파악하고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을 뜻한다.
KSSB 기준 시나리오 분석 통해 기후 회복력 평가 요구
시나리오 분석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것은 복잡한 기후 리스크를 과거 데이터나 추세 분석에 기반을 둔 기존 리스크 평가 기법으로 다루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박혜진 연구위원에 따르면 시나리오 분석은 “미래에 전개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보고, 각 상황이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인 영향을 가늠해보는 일련의 사고 프로세스”다.
시나리오 분석은 특정한 수치나 확률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조건 속에서 특정 추세가 이어진다고 가정할 때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고 적절한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시나리오 분석은 정성적인 분석을 보여주는 서술이 될 수 있고 데이터와 모델링을 활용한 정량적 분석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명확하고 합리적인 가정에 근거해야 하고 내적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
기후변화관련 재무정보공개협의체(TCFD)에 따르면 이런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미래에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비하는 의사결정자들의 전략적 사고를 강화할 수 있다. 또한 조직의 전략과 재무, 사업 계획을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점검하고 조정할 수도 있다.
KSSB 기준은 기업에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기후공시일 현재의 기후 회복력에 대한 기업의 자체적인 평가를 제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후 관련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식별한 기후변화가 기업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에 대한 기업의 대응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
기업은 또한 기후변화에 대응해 단기와 중기, 장기에 걸쳐 전략과 사업모형을 조정하거나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기업의 역량을 공개해야 한다.
여기에는 ▲기후 관련 시나리오 분석에서 식별된 영향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의 기존 재무자원의 가용성과 유연성 ▲기존 자산의 재배치나 용도 변경, 개선 또는 해체할 수 있는 기업의 능력 ▲기후 회복력을 기업의 현재 투자와 계획된 투자가 기후변화 적응이나 기회, 기후변화 영향 완화에 미칠 영향이 포함돼야 한다.
기업은 또한 기후회복력에 대한 기업의 자체 평가 시 기업이 고려한 불확실성에 대해서도 공시해야 한다.
시나리오 분석 방법 및 시점, 주요 가정도 공시해야
기업은 시나리오 분석 방법 중 기업이 사용한 투입변수에 대한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여기에는 ▲분석에 사용한 기후 관련 시나리오 및 해당 시나리오의 원천 ▲다양한 기후 관련 시나리오가 분석에 포함됐는지의 여부 ▲분석에 사용한 기후 관련 시나리오가 기후 관련 전환 위험 또는 물리적 위험과 연관이 있는지 ▲기업이 선택한 기후 관련 시나리오가 기후 관련 변화와 전개 상황, 또는 불확실성에 대한 기업의 회복력 평가와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한 이유 ▲분석에 사용한 기간 범위 ▲분석에 사용한 사업장의 위치나 사업 단위 등 사업의 범위 등이 포함된다.
이와 함께 기업은 시나리오 분석에 사용된 주요 가정을 공시해야 한다. 여기에는 ▲기업 소재지 관할권의 기후 관련 정책 ▲거시경제 동향 ▲국가 또는 지역 수준의 날씨 패턴과 인구 특성, 토지 이용, 기반시설 및 천연자원의 가용성 등 변수 ▲에너지 사용 및 믹스 ▲기후 관련 시나리오 분석이 수행된 보고기간 등이 포함돼야 한다.
시나리오 분석에 많이 사용되는 3개 시나리오
시나리오 분석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기후행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미래의 온실가스 배출량 시나리오에 기반을 둔다.
시나리오 분석에 사용되는 배출량 시나리오 중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와 국제에너지기구(IEA), 녹색금융협의체(NGFS)의 3개 시나리오가 가장 널리 쓰인다. IPCC의 시나리오는 물리적 리스크에 좀 더 주목하고 IEA는 전환리스크에 좀 더 중점을 두는 특징이 있다. NGFS 시나리오는 금융산업의 물리적 리스크와 전환리스크를 보여준다.
IPCC는 6차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서 공통사회경제경로(SSP)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 시나리오는 ▲2050년 넷제로 달성을 통해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이하로 억제하는 SSP1-2.6 ▲기온 상승 폭이 2도를 넘는 SSP2-4.5 ▲기온 상승이 3도를 넘는 SSP3-7.0 ▲최악의 경우로 기온 상승이 4도를 넘는 SSP5-8.5의 4개 표준 경로로 이루어져 있다.
[표] SSP 표준 경로
SSP1-2.6 시나리오는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한 대대적인 정책적 노력을 가정한 시나리오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이 시나리오하에서 예상되는 위험과 기회는 엄격한 기후정책과 공격적인 탄소 가격 책정, 저탄소 전환을 위한 기술 혁신, 소비자들의 수요 변화 등이다.
반면에 SSP-8.5는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다. 예상되는 위험은 기온이 상승하고 강수 패턴 변화, 기상재해의 강도와 발생 빈도가 높아지는 현상 등이다.
IPCC는 특히 기후변화 노출(exposure)과 피해(hazard), 취약성(vulnerability)이 겹치는 지점을 리스크로 정의했다. 여기서 리스크는 기후변화에 따른 물리적 위험과 전환위험, 기회, 기업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IEA는 올해 나온 2023년 에너지전망 보고서에서 ▲2050년 넷제로 달성을 뜻하는 NZE ▲각국 정부와 기업이 2023년 8월까지 약속한 기후 목표를 바탕으로 한 APS ▲탈탄소 목표의 진전 여부를 평가할 수 있는 현재의 에너지 관련 정책을 기반으로 하는 STEPS의 3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산업화 이전 시대 대비 2100년 기온 상승 폭은 STEPS 시나리오하에서 2.4도, APS 시나리오에서 1.7도, NZE 시나리오에서는 1.4다.
[표] IEA 시나리오
NGFS의 시나리오는 금융기관의 기후 리스크 분석을 위해 개발됐다. 자본연 보고서에 따르면 이 시나리오는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진전 속도 ▲기술 혁신 속도 ▲탄소제거기술 활용도 ▲기후변화 대응의 지역 격차 등의 기준에 따라 3개 유형 6개 시나리오로 구분된다.
[그래픽] NGFS 시나리오
첫 번째 유형은 질서있는 전환(orderly transition) 시나리오로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기온 상승을 1.5도로 억제 ▲2/3의 확률로 기온상승을 2℃ 미만으로 제한하는 시나리오(Below 2℃)가 해당된다.
다음 유형은 무질서한 전환(disorderly transition) 시나리오다.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국가별로 다르게 이행되는 분산된 넷제로 시나리오(Divergent net Zero 1.5℃)와 저탄소 전환 정책이 시행이 늦어지는 지연된 전환 시나리오(Delayed 2℃)가 여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 유형은 온실세계(hot house world) 시나리오로 ▲현재와 소극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유지되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s) 시나리오 ▲현재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흐름이 이어지는 현행정책(Current Policies) 시나리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