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사회 여성임원 확 늘리는 외국...갈 길 먼 한국
英 FCA, 대기업 이사회 여성 비율 40% 이상으로 높일 것 요구 FCA 제시 목표 달성 못한 기업들은 주주들에 이유 설명해야 미국, 중동, 홍콩, 일본 등도 비슷한 움직임 한국은 CEO와 여성 임원 비율 크게 낮은 편
[ESG경제=이진원 기자] 전 세계적으로 거세지고 있는 ESG 경영 열풍 속에서 ESG의 G에 해당하는 '지배구조(Governance)'의 핵심 이슈 중 하나인 기업 이사회의 다양성 확보 움직임에 탄력이 붙고 있다.
영국 금융 규제당국인 금융행위감독청(FCA)은 28일(현지시간) 영국 대기업들에게 이사회의 40% 이상을 여성으로 채우고, 여성과 백인이 아닌 소수자들의 이사 임명을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FCA는 또 기업 회장이나 최고경영자(CEO) 내지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고위직 1명 이상을 여성이 맡게 하고, 올해 안으로 이사진 중 1명 이상은 백인이 아닌 소수자로 채워줄 것을 제안했다.
이 같은 제안들은 의무 사항은 아니고 다양성 활보를 위한 자발적인 이니셔티브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FCA의 규제를 받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FCA의 요청을 거부하기 힘들 전망이다.
영국 상위 350개 상장기업들은 대부분 이사회 내 여성 이사 비중 목표인 33%를 달성한 상태다. 하지만 상위 100개 런던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은 연내 한 명 이상의 소수자를 이사로 임명하기 위해선 추가 임명에 나서야 한다.
공청회 등 거쳐 연말부터 시행 예정
FCA의 제안은 공청회 등을 거쳐 연말부터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며, 1,106개 기업이 영향권에 놓이게 된다. 이들 기업은 FCA가 제안한 목표를 달성하거나 달성하지 못할 경우 연례 보고서에서 주주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이번 제안은 투자자들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거나 인력 다양성을 추구하는 ESG 경영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나스닥은 상장기업 이사진에 여성과 소수자를 두 명 이상 포함하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하겠다고 밝혔고, 홍콩과 일본도 유사한 제안을 내놓고 있다. 중동 금융 허브 중 하나인 아랍에미리트(UAE) 역시 모든 상장기업에 대해 여성 임원을 최소 한 명 이상 두도록 의무화하기로 했다.
기업 이사회 다양성 확보 움직임에 뒤처진 한국 기업들
이처럼 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업 이사회의 다양성 확보 움직임은 아직 한국에선 사실상 '남의 나라 얘기'나 다름이 없다.
예를 들어, 23일 CEO랭킹뉴스에 따르면 국내 민간 기업 상장사의 여성 CEO 비율은 5.8%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마저도 대부분이 창업주 일가로의 경영권 승계였다.
CEO랭킹이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거래소 상장사의 CEO 현황을 분석한 결과, 금융업을 제외한 748개 상장사 가운데 여성 CEO가 운영하는 기업은 46개사로, 전체 상장사로 따지면 여성 CEO 비율은 5.8%에 그쳤다. 이는 공공기관 임원 비율(17%)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46개사 가운데 34개사의 여성 CEO가 오너의 일가로, 전체의 74%를 차지했다.
금융권에서는 상무급 이상 여성 임원과 사외이사진이 손에 꼽을 정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금융사 444곳의 여성 임원은 7.4%(358명)에 그쳤다. 직원의 절반(8만1451명·48.2%)가량이 여성임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올 상반기 국내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상무급에서도 여성은 100명 중 4명(4%)에 불과하다. 은행 두 곳은 여성 임원이 아예 전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