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임금 차별 철폐 목표…내낸 하반기 시행
직무급 도입, 동일노동 객관적 기준 등 과제 산적

정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연내 근로기준법에 명시하고,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국내의 각 사업장에서는 고용 형태, 성별 등과 관계없이 같은 업무를 수행하면 유사한 처우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권과 차별적 대우 해소, 생활임금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지속가능경영의 사회(S) 부문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대부분 선진국은 이 원칙이 제도와 관행으로 정착해 있다.
다만 이런 원칙을 한국 기업의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직무급제 도입이 선행돼야 하고, 동일노동에 대한 객관적 기준 마련과 함께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어서 정부가 계획한 내년 시행은 다소 성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제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같은 사업장에서 동일한 일을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사용자는 동일가치노동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등 조항을 근로기준법에 추가하는 방향으로 연내 법을 고치고 이르면 내년 하반기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비정규직 월급, 정규직의 절반…원칙 도입해 차별 철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현재도 법에 명시돼 있지만, 근로기준법이 아닌 남녀고용평등법에만 포함돼 사실상 '남녀 차별'을 막기 위한 원칙으로만 쓰이고 있다. 그마저도 실제 소송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드물다.
2000년대 들어 비정규직 차별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보수·진보 정부를 가릴 것 없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명문화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실제 시행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작년 8월 기준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379만 6000원이다. 반면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204만 8000원으로 정규직의 절반(53.95%) 수준에 불과하다. 임금 차이는 174만 8000원이다. 이런 임금 차는 5년 전(2019년 143만6천원)보다 훨씬 커졌으며 매년 벌어지는 추세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2023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때는 국회 토론회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음에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건 매우 비상식적"이라며 "오히려 비정규직은 고용 안전성이 확보되지 못해 추가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직무급제 도입, 객관적 기준 마련 등 선결 과제 산적
정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근로기준법에 규정하기로 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선결 과제가 있다.
현재 한국의 임금체계는 근속기간에 따라 차이를 두는 '연공제'가 상당수다. 연공제는 업무의 내용과 무관하게 고용 형태, 근속연수 등에 따라 기본급이 결정되기 때문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적용되기 힘들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건 '직무급제'이다. 직무급제는 업무의 성격과 중요도, 난도 등에 따라 임금을 산정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직무급 도입 없이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다.
국정위도 업무보고에서 "연공급 체계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둘러싼 현장 갈등 확산 예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과 독일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직무급제를 적용했다.
문제는 직무급제 도입을 위해선 동일노동에 대한 객관적 판단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회에 상정된 법안들은 '동일노동 기준을 직무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조건 등으로 하고 사용자가 이를 정하는데 근로자 대표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만 규정한다.
정부는 객관적 기준 마련을 위해 '임금분포제'를 제시했다. 이는 실태조사를 통해 직무, 직위, 근속 등에 따른 임금분포 정보를 공개하는 제도다. 정부는 신뢰성을 뒷받침하고자 임금분포제에 국가통계를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이 산별노조가 아닌 기업별 노조 중심이란 것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시행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산업별로 노조를 구성하면 유사한 업종별로 급여방식을 산정할 수 있는데, 기업별로 노조를 구성하면 같은 업종이더라도 기업별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해결책으로는 '초기업 교섭'이 주목받는다. 기업의 담벼락을 넘는 노조 협력으로 업종별 교섭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나아가 사회적 합의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명문화가 발표되자 일각에선 "어렵게 들어간 정규직에 대한 역차별"이란 불만이 터져 나온다. 경영계는 동일한 노동을 해도 노동자마다 능력 차이가 있어 동일임금 적용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명문화 필요하나 현장 적용엔 한계
노동 전문가들은 명문화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당장 내년부터 현장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적용되기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에 명시한다고 해도 현실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임금분포제 토대 마련이나 직무급 시행, 초기업 교섭 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노동계와 경영계가 바라보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모델부터 다르다"면서 "차별된 임금의 간극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모델부터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