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기업 규제
자유시장경제 원칙와 충돌, 자사주 매입 크게 축소될 것
법 강제 안해도 정책 효과 얻을 대안 얼마든지 있어

더불어민주당이 상장회사의 보유 자사주를 강제 소각하도록 하는 3차 상법 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스피 5000을 향한 여정에서 4000벽에 부닥쳐 피로 증상을 보이는 현 주식시장에 새로운 활력를 불어놓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은 “지배주주의 자사주 악용을 막아 주가를 부양한다”는 명분과 달리, 설계된 그대로 통과될 경우 부작용이 클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구나 자사주 의무 소각은 전 세계적으로 법으로 강제하는 나라가 없고, 기업과 시장의 자율을 존중하는 글로벌 기준에 비추어 매우 이례적인 조치라는 지적을 받는다.
국내 기업들의 자사주 활용 관행에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법으로 강제하지 않더라도, 시장 기능·소수주주 보호·지배구조 개선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현실적인 해법을 얼마든지 도출할 수 있다.
좋은 취지로 법으로 강제했지만, 별 성과없이 부작용만 키운 사례는 차고 넘친다. 대표적인 사례가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목표로 상장 대기업 이사회의 사외이사 비율을 과반수로 규제한 것이다.
사외이사 비중을 법으로 강제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이에 비해 미국, 일본, EU 등 대부분 국가가 시장 자율에 맡긴 증권거래소 가이드라인 형식을 취한다. 한국이 그렇게 강력한 규제를 도입했지만,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여전히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낙후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들은 형식 요건을 맞추며 거수기 사외이사들을 관리하기 위해 과도한 비용만 지출하는 상황이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법적 규제
민주당 이번 상법 개정안 골자는 신규·기존 자사주 모두를 원칙적으로 1년 이내 소각하도록 하고, 예외적으로 보유·처분이 필요하면 매년 주총에서 ‘자사주 보유·처분 계획’ 승인을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위반 시에는 이사회 이사 개인에게 과태료(최대 5000만원)를 부과하도록 했다.
이를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미국·일본·영국·EU 등 주요국 가운데 “자사주를 일정 기한 내 의무 소각하라”는 식의 일반·포괄적 강제 규제를 둔 곳은 없다. 대부분 자사주 보유·소각 여부와 시기를 이사회·주총 자율에 맡기되, 공시·자본유지(채권자 보호)·남용 방지 규칙으로 견제하는 방식을 택한다.
다만 독일은 자사주 보유량이 발행 주식의 10% 초과할 경우 초과분을 3년 내 처분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들 사례를 감안하면 한국의 이번 상법 개정안은 주요국 가운데 가장 강한 축에 속하는 비(非)표준 규제로 볼 수 있다.
주요국의 자사주 소각 관련 제도 비교

더구나 미국·영국 등 주요국은 기업이 적대적 M&A에 직면할 경우 낮은 발행가로 신주를 발행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는 포인즌필과 같은 제도를 두고 있으나 한국에는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국내 상장사들은 사실상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인 자사주 보유를 법으로 차단하는데 대해 큰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상되는 부작용과 유연성 저하
자사주는 배당·M&A·경영성과보상·스톡옵션·지배구조 개편 등 기업의 자본정책에 있어 매우 유용한 수단인데, 일괄 소각 강제는 특히 성장·변동성이 한국 기업들의 전략 옵션을 과도하게 제약할 수 있다.
자사주 강제 소각은 기업의 자사주 매입 의욕 자체를 꺽어 주가 부양 효과를 제한하면서 경영권 방어를 취약하게 만들고, 오히려 외국자본·특정 세력에만 기회를 과도하게 열어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법으로 강제하지 않더라도, 정부와 정치권이 원하는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한다. 핵심 목표를 “자사주의 투명한 사용과 소수주주 보호, 그리고 좀비 자사주 축소”로 재정의하고, 단순한 소각 의무화가 아니라 자사주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대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목적·기간·한도’ 중심의 규제
자사주 취득 시 목적(① 주주환원 ② 임직원 보상 ③ 전략적 M&A 등), 보유 기간, 상한(예: 자본의 10~15%)을 공시·주총 승인하도록 하되, 그 안에서는 이사회 재량권을 인정한다.
독일처럼 일정 비율(10%) 초과분에 대해서만 3년 이내 처분·소각을 의무화하는 식의 ‘과도한 자사주’ 규율을 도입해, 극단적 사례만 제어하는 것도 현실적인 방안이다.
② 소각 유도형 인센티브
일정 비율 이상 자사주를 소각하면 배당소득세·양도세·상속·증여세 등에서 인센티브를 주거나, 기관투자자 책임투자 지침에서 가점을 부여해 시장이 자발적으로 소각을 유도하도록 설계한다.
공적 연기금·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에 “장기적으로 과다 자사주를 보유하는 기업에 대해 단계적 반대 의결권 행사” 등을 명시해, 규제가 아니라 시장 압박을 강화한다.
③ 자사주 활용의 ‘거버넌스 가드레일’
자사주를 특수관계인·우호세력에게 헐값에 넘겨 경영권 방어·승계에 악용하는 행위에 대해선 ‘자본시장법 수준’의 엄격한 규제와 이사 책임(손해배상·형사책임)을 묻는다.
일정 규모 이상 자사주 거래는 사외이사가 과반인 이사회 또는 감사위원회·사외이사 전원회의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의무화한다.
결론적으로 한국 자본시장 현실에 맞는 대안은 "자사주 일괄 소각 의무화”보다는 “자사주 보유·활용에 대한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 그리고 과다 보유에 대한 부분적 강제”의 조합이다.
기업 지배주주의 입장에서 상속·증여세와 지분희석 우려 때문에 주가를 일부러 낮춰온 구조부터 손보지 않으면, 자사주 규제만으로는 한국식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
“기간·비율 불문 일괄 소각 강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한국 자본시장 구조를 모두 감안할 때 과도한 측면이 있다. 자사주 악용은 강하게 막되, 정상적인 주주환원·M&A·지배구조 개선 수단으로서의 활용은 유지하는 ‘용도·한도·투명성 중심 규제’ 방향이 보다 바람직한 정책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김광기 ESG경제신문 대표기자·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