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선을 긋지만, 윤리는 방향을 제시
자본주의 근간인 신뢰는 윤리에서 나와

“당신이 내린 결정이 당신 지역 신문의 1면 헤드라인에 실린다면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가?”
워런 버핏이 2007년 주주서한에서 제시한 이른바 ‘신문 헤드라인 테스트(Newspaper Headline Test)‘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윤리 판단 도구다. 법의 회색지대 너머, ’무엇이 진정 옳은가‘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이 바로 이 테스트의 핵심이다.
법은 흑백의 선을 긋는다. 그러나 법은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을 나열할 뿐, '어떻게 행동해야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오늘날 한국의 기업거버넌스와 금융시장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불공정한 자본거래, 형식적 합법과 실질적 편취 사이의 간극은 바로 이 윤리의 빈자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법적 문제 없다’는 말이 통용되는 구조
한국에서 벌어진 여러 기업 합병과 분할, 상장폐지, 자사주 활용, 일감몰아주기 내부거래를 살펴보면, 법률 자문을 철저히 받아가며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실행된다. 하지만, 그 실질은 일반주주의 희생을 담보로 한 지배주주, 경영진의 사익 추구인 경우가 많다. 이 모든 과정의 이익 귀속자는 정확히 알고 있다.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들이다.
언론은 종종 이 과정을 보도하며 묻는다. “이 결정은 누가 이익을 보았는가?”, “일반주주는 왜 피해를 봐야 했는가?”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버핏의 ‘신문 테스트’다. “이 결정이 신문 1면에 비판적 기자의 손에 실린다면, 떳떳할 수 있는가?”
금융기관에서 무너진 ‘컴플라이언스’
기업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국 금융기관 경영진의 친인척 특혜 대출, 사적 이익을 위한 내부정보 활용, 형식적 심사와 사후 불감증 사례는 '법과 윤리 사이'에 놓인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금융회사 내부통제 시스템, 이른바 ‘컴플라이언스’는 외형적으로는 모든 걸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경영진의 일가친척이 대출을 받아 부실화되었을 때, 내부 보고체계는 침묵했고, 이사회의 감시 기능은 작동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 ‘나의 결정이 신문 1면에 실렸을 때도, 나는 부끄럽지 않은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문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리 없는 합법은 폭력이 될 수 있다. 버핏은 말했다. “법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해서,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법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법 위에 ‘윤리의 눈금’을 얹어야 한다. 그게 바로 ESG 지속가능한 경영이기도 하다.
그 기준은 단순하다. “신문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가”, “이 합병은 공정했는가”, “이 거래는 외부 주주에게 설명할 수 있는가”,“이 결정의 피해자는 누구이며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갔는가.”
실천을 위한 제안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법 조문으로 명문화됐다. 한국의 기업거버넌스를 바로 세우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모든 주주를 중시하는 기업 경영이 이사회와 경영진의 실천을 통해 뿌리를 내려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신문 헤드라인 테스트를 기업 이사회 의사결정 기준에 포함하라.이사회의 안건 승인 전, 해당 결정이 언론에 나갔을 때 기업 명성이 훼손될 가능성을 검토해 봐야 한다.
둘째, 지배주주의 모든 자본거래는 공정성과 정당성 기준을 먼저 검토하라. “합법인가”보다 “공정한가”라는 질문이 우선되어야 한다.
셋째, 금융기관 및 기업 내부통제 시스템에 윤리 점검 체크리스트를 추가하라. 형식적 규정 준수에서 나아가, 행동의 의미와 결과를 성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법보다 강한 도덕적 나침반
자본주의는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한다. 신뢰는 법이 아니라, 윤리적 자각과 자율적 절제를 통해 만들어진다. 워런 버핏이 제안한 ‘신문 테스트’는 단지 윤리적 개념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자본주의의 생존 조건이다.
기업거버넌스가 무너지고, 컴플라이언스가 침묵하며, 투자자의 신뢰가 붕괴된 사회는 언젠가 자본시장의 본질적 기능마저 잃게 된다.
우리 기업들이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이 결정 신문 1면에 실려도 괜찮은가?”
[김봉기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