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쇄신 앞두고 ‘강호동 라인’ 분류 부담…승진이 '독’ 인식 확산
비리혐의 강 회장 수사중…“승진해도 오래 못간다” 내부불안 커
성과 내는 게 오히려 리스크?...장기적으로 우수인재 이탈 우려
‘공포 인사’ 넘어 건강한 경쟁 구조로...승진기피 반전 여부 주목

[ESG경제신문=김대우 기자] NH농협금융그룹이 전례 없는 인적 쇄신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내부에서 ‘승진 기피’라는 이례적 기현상이 포착되고 있다. 승진이 기회가 아니라 향후 인사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불안 심리가 확산된 결과로 해석된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12월 정기 인사부터 전 계열사 대표이사와 임원급을 대대적으로 교체하는 ‘범농협임원 인적 쇄신 방안’을 시행하기로 했다. 경영성과와 내부통제를 핵심 기준으로 삼고, 청렴성과 도덕성을 강화하겠다는 방침 아래 실적 부진·내부통제 실패 임원들은 대폭 교체 대상에 오르게 된다.
이 같은 고강도 쇄신 기조의 직격탄은 농협금융지주와 주요 계열사 CEO·임원진으로 향하고 있다. 이미 농협중앙회는 계열사 상근 임원의 최대 절반 가량을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외부 전문가 영입 확대와 함께 퇴직 임원의 재취업 제한까지 예고한 상태다.
이번 인적 쇄신 규모는 외부 전문가 영입을 감안하더라도 2012년 신경분리(신용사업·경제사업 분리) 이후 최대 수준이 될 전망이다. 그만큼 승진폭이 넓어졌기에 좋아할 법한 일이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이를 반기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최종 인사권자인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금품수수 등 비리 혐의로 거취가 불확실한 만큼 불안감도 함께 커지고 있어서다.
특히 조직 안팎에 ‘승진=표적’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도덕성과 청렴성을 최우선 자질로 내세운 쇄신 속에서, 새로 오른 임원들이 향후 추가 인사에서 재차 교체 대상으로 지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임직원 사이에 급속히 번지고 있다. 강 회장이 유죄를 선고 받을 가능성을 그 만큼 높게 보는 셈이다.
이에 따라 승진 후보군 일부는 “차라리 지금 자리를 지키는 편이 안전하다”는 분위기를 내비치며 승진 추천과 보직 이동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지난 10월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농협중앙회 본관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강 회장은 지난해 1월 전후로 농협중앙회 계열사와 거래 관계에 있는 용역업체 대표로부터 1억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특정기업에 대해 부당대출을 제공한 혐의 등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서 임원으로 선임되면 강호동 라인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며 “강 회장이 직을 상실할 경우, 승진 임원들도 재차 물갈이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농협금융 안팎에서는 이번 승진 기피 현상이 장기적으로 우수 인재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성과를 내더라도 인사·사정 리스크가 커지면, 핵심 인력이 상대적으로 인사 환경이 안정적인 타 금융사로 이동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성과와 책임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예측 가능한 인사 원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승진이 동기 부여가 아니라 리스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쇄신의 방향성과 함께 조직 구성원이 납득할 수 있는 룰을 제시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17년만에 직선제로 선출된 강 회장, 결국 비리혐의로 거취 중대기로

농협중앙회는 당초 정부가 회장을 임명하는 관선제였다가 1988년부터 민선이 도입됐다. 조합장 전체가 참여해 직선제로 회장을 선임해왔지만 민선 1·2·3기 모두 비리 혐의로 임기 중 구속되는 부정 우려가 커지자 2009년 간선제로 전환됐다.
이후 다시 농협법 개정을 통해 지난해부터 다시 직선제로 선거 방식이 바뀌게 됐다. 강 회장은 17년만에 직선제로 선출된 중앙회 수장이다. 하지만 강 회장 역시 주요 임원에 측근 인물들을 대거 임명하고 농협금융 계열사 CEO(최고경영자) 선임 과정에서 당시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마찰을 빚는 등 인사 투명성에 배치되는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전문가들은 인적쇄신 그 자체보다 과정의 투명성과 기준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명분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승진·교체의 이유와 평가기준이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공유돼야 승진 기피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농협금융그룹이 ‘공포 인사’라는 오명을 벗고 건강한 경쟁 구조를 만들 수 있을지, 이례적인 승진 기피 현상을 어떻게 반전시킬지가 연말 인사의 최대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