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모든 것 다 바꾸는" 새로운 '신경영 선언' 기대
이재용 회장 전면에 나서 인재·기술·리더십 융합해야

고 이건희 삼성회장의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1993년 신경영 선언은 당시 위기에 직면했던 삼성을 글로벌 반도체 최강자로 도약시켰다. 하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 삼성은 다시 한 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병철 회장의 창업 정신과 이건희 회장의 글로벌 경영이 만들어낸 성공 공식은 하드웨어 중심의 혁신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지금 삼성은 빠르게 변화하는 AI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삼성의 위기는 이건희 회장이 경고했던 '냄비 속 개구리'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AI가 산업 전반을 재편하는 시점에서 삼성은 기술 혁신의 주도권을 잃어 가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엔비디아, TSMC 등의 경쟁사에 밀리고 있으며,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 이재용 회장 체제의 신중한 리더십은 반도체 메모리 분야의 효율성 추구에 머무른 채 AI 혁명 속에서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실패를 넘어서는 과감한 도전을 중시하는 반면, 삼성은 여전히 위험 회피적 문화가 AI 경쟁에서 발목을 잡고 있다. AI 시대 생존을 위해 삼성은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버리고, AI 퍼스트 전략을 중심으로 혁신해야 한다.
앞으로 삼성이 생존을 넘어 세계 1류로 다시 우뚝서기 위해서는 3가지 핵심 축을 동시에 변화시켜야 한다.
첫째, 슈퍼급 인재 유치다. AI 혁신의 핵심은 인재지만, 삼성은 글로벌 AI 인재 유치 경쟁 에서 뒤처지고 있다. 오히려 수백명 단위로 핵심 인재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구글, 애플, MS 등이 최고의 AI 연구자들에게 자유로운 연구 환경과 파격적인 보상을 제공하는데 비해, 삼성은 수직적 조직문화와 보수적인 인사·보상 시스템으로 인해 아까운 인재들을 놓치고 있다.
삼성은 해외 연구센터를 AI 중심 연구소로 개편하고 AI 석학 연구원들을 유치해야 한다. 박사급 연구원들에게 장기 자율 연구 기간을 보장하여 창의적 연구를 장려하고, 엔지니어 출신 임원 비율을 높이며 기술혁신 실적 중심의 평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사내 벤처 캐피털을 확대하고 성공한 벤처를 삼성의 생태계로 편입시켜 혁신적 아이디어와 인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벤처 단계를 넘어 시장에 안착한 첨단 기업들을 과감하게 M&A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삼성은 아직 미래를 위해 투자할 현금성 자산이 100조원에 달한다.
둘째, AI 반도체 및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AI 시대에서도 핵심 역할을 해야 하지만, 현재 엔비디아·AMD·TSMC 등에 속절없이 밀리고 있다. 엔비디아는 CUDA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하며 AI 반도체 시장을 독점하고 있으며, 구글과 애플도 자체 AI 칩을 개발하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뉴럴 프로세서(NPU) 및 GPU 개발에 집중하여 AI 연산에 최적화된 반도체를 설계해야 한다. 또한 AI 반도체-클라우드 통합 플랫폼 구축을 위해 자체 AI 클라우드 플랫폼을 개발하여 글로벌 서비스 업체들과의 협업을 확대해야 한다. 메모리 반도체의 수익을 AI 반도체 개발에 재투자하는 과감한 결단도 요구된다.
셋째,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거버넌스를 개편해야 한다. 삼성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여전히 복잡하고 관료적이며 구시대적이다. 반면, 테슬라는 CEO 주도의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TSMC의 이사회는 절반 이상을 외국 국적의 글로벌 IT 전문가들로 채우고 있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의 이사회는 국내 전직 공직자와 교수 중심이다. 외국인 사외이사는 한명도 없다.
삼성도 AI 중심의 글로벌 기술 혁신을 선도하는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기 위해선 이사회 개편이 필요적이며, 이재용 회장이 이사회 등기임원으로 강력한 지배력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이를 주도해야 한다.
이 회장은 이사회 의장으로 의사봉을 쥐고 AI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반도체, AI, 소프트웨어 전략을 총괄하는 기술 컨트롤 타워 조직도 신설하여 빠른 신기술 투자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AI 시대에 맞는 삼성의 새로운 '신경영' 선언이 필요하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삼성의 질적 도약을 이끌었듯이, 현재 삼성은 AI 시대 도약을 위한 새로운 비전이 필요 하다.
삼성의 가장 큰 문제는 기존 성공 방식에 안주하는 태도다. 과거 반도체 신화를 이룬 전략은 AI 혁명 시대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삼성의 재도약은 "패러다임 자체의 전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경직된 조직 문화를 혁파하고, AI 시대에 맞는 인재·기술·리더십을 융합할 때 21세기 AX 생태계에서도 얼마든지 생존하고 도약할 수 있다. 지금 이재용 회장의 선택은 삼성의 100년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박정일 전 한양대 컴퓨터SW학부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