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기관들, 이미 국내 기업에 글로벌 기준 준용 공시 요구.
해외에서도 논란...미국 SEC는 미국에 적합한 기준 주장, 유럽도 독자적인 기준 제정

[ESG경제=이신형기자] 국내 기업의 ESG 정보공개를 위해 국내 기준을 제정하는 것 보다 이미 마련된 글로벌 표준을 적용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국내 기업은 이미 글로벌 투자기관들으로부터 금융안정위원회(FSB)가 만든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협의체(TCFD) 권고안과 최근 영향력이 키지고 있는 SASB(Sustainable Accounting Standards Board)와 같은 글로벌 공시기준에 따라 ESG 정보를 공시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어 이중으로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한국법제연구원과 사회적가치연구원이 공동으로 발간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한 ESG 활용방안 및 국내외 ESG 공시동향과 법제화 전망’ 보고서는 “지금의 ESG 논의는 단순히 국내적 움직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중요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추세”라며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는 국내 기업의 ESG 담당자들과 관련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전문가 그룹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이들 사이에서도 정부가 ESG 정보공개 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기준을 중심으로 ESG 지표를 관리하는 기업의 경우 글로벌 기준과 국내 ESG 공시 기준이 상이할 경우 각각에 맞는 데이터를 관리, 구축해야 하는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또 ESG에도 산업별 특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단일 기준보다는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기준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와 함께 ESG 공시 의무화는 구체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국내 실정을 고려해 추진해야 하고, 의무화의 대상을 정하는데도 규모가 작은 기업이 과도한 비용을 치루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유럽연합 독자적 기준 제정...미국 SEC도 독자적 기준 마련 중
미국에서도 ESG 정보공개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재계 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미국 재계는 유연한 기준을 요구하는 한편, TCFD의 권고안에 맞춰 정보공개 기준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이런 권고안을 참고하겠지만 미국 시장에 적합한 규정을 만들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도 지난 3월 10일 역내 은행과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의 금융기관에 ESG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독자적인 지속가능성 공시 규제(SFDR: Sustainable Finance Disclosure Regulation)를 도입했다.
이런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단일화된 ESG 정보공개 기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제회계기준(IFRS: 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재단이 ESG 회계표준을 정하기 위해 국제지속가능성표준위원회(ISSB: International 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s)를 설립하기로 했다.
IFRS 재단은 국제회계기준을 제정하는 기구다. 여러 나라 정부와 금융당국으로부터 기후변화가 영업활동에 미치는 위험에 대한 상장기업의 정보공개 표준을 만들 새로운 기구를 설립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ISSB 설립에 나섰다.
ISSB는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 기후변화당사국협의회(COP26) 개최 이전에 출범할 예정이다.
ISSB 폭넓은 지지 얻고 있으나, 기준 마련에 시간 필요
로이터통신은 전 세계 금융당국이 ISSB가 엄격한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정보공개 표준을 마련하면 이 표준을 사용한 정보공개를 의무화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투자자는 물론 각국 정부와 감독 당국도 투자자를 현혹하는 '그린워싱’을 가려내고 투자자가 기업들의 친환경 영업활동을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일관성 있고 단일화된 형태의 ESG 정보공개 기준을 원하고 있다.
전 세계 금융감독당국의 연합체인 국제증권관리위원회기구(IOSCO)는 현재 투자자에게 제공되는 기후변화 대응 등 ESG 정보에는 상당한 정보 간 격차와 부족함이 발견된다며, ISSB가 마련할 기준을 국제 표준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개별 국가에도 표준으로 사용하는 것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초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도 ISSB가 ESG 정보공개 표준을 제정하는 것에 지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단일화된 기준은 몇 년 후에나 나올 것으로 보여 ESG 정보공개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는 ISSB는 내년 중반에야 기후변화 대응 정보공개 기준 초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유럽연합이 ISSB의 설립과 활동을 지지하면서도 자체적으로 ESG 정보공개 기준인 SFDR을 제정한 것도 ISSB가 정상적인 활동에 나서려면 앞으로 몇 년이 걸릴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