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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中으로 다극화하는 기후 거버넌스…새 기회의 창 열린다

  • 기자명 ESG경제
  • 입력 2025.08.14 16:17
  • 수정 2025.08.1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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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거버넌스 판도 재편중...방관자에 머물지, 주도할지는 대응방식에 달려
녹색금융 협력, 공급망연계 등 적극 참여 전략없이는 주변부로 밀려날 수도
한국의 대응 속도와 방향이 향후 국가 경쟁력과 국제적 위상 좌우할 것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EU 집행위원회 베를레몽 빌딩 앞 유럽기가 휘날리고 있다. (EPA=연합)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EU 집행위원회 베를레몽 빌딩 앞 유럽기가 휘날리고 있다. (EPA=연합)

단극에서 다극으로: 변화하는 세계 기후 거버넌스

세계 기후 거버넌스가 미국 중심의 단극(hegemonic) 구조에서 다극(multipolar) 체제로 바뀌고 있다. 지난 십여 년간 미국은 기복이 있었으나 파리협정을 주도하고, 재생에너지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며, 국제 기후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의 핵심 축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트럼프의 재집권은 이러한 리더십 구조에 근본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파리협정 재탈퇴, 환경보호청(EPA)의 온실가스 유해성 판정 철회, 탄소 규제 완화, 농무부(USDA) 기후기금 삭감 등 일련의 정책 전환을 통해 미국의 기후 리더십이 급속히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후변화는 사기(hoax)'라는 정치적 담론의 확산은 미국 기후정책의 장기적 일관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연방 차원의 재생에너지 투자와 기후 재정 지원 역시 축소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의 기후 리더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표면적으로는 미국 내 기업의 규제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제사회에서의 신뢰 실추와 협상력 약화라는 훨씬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 차원의 일관된 기후 전략 부재는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에서 미국의 영향력과 발언권을 현저히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리더십 공백 속에서 중국과 EU가 협력을 강화하며 글로벌 기후 리더십의 새로운 축을 형성하고 있다. 둘 모두 주요 탄소배출 주체지만, 기후변화 대응에서 강점은 다르다. 중국은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와 산업 규모에서, EU는 정책 혁신과 탄소시장 발전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 왔다.

환경 및 지속가능성 분야의 싱크탱크인 유럽환경정책연구소(Institute for European Environmental Policy, 이하 ‘IEEP’)는 각기 다른 강점을 가진 EU와 중국이 기후 거버넌스의 양대 축으로서 정의로운 녹색전환을 함께 이끌어야 한다고 제안하며, 에너지 전환, 기후 적응, 기후 재정 등에서의 상호 보완적 역량을 강조했다(IEEP, 2025).

EU-중국 협력의 구체화와 제도적 진전

IEEP의 보고서(2025)에 따르면, EU와 중국은 기후금융과 기술 표준 분야 등에서 의미 있는 협력 성과를 거두고 있다. 양측은 G20 지속가능금융 로드맵과 ‘공통분모 녹색분류체계(Common Ground Taxonomy)’를 공동으로 마련해 ▲국가 간 표준의 비교 가능성, 호환성, 일관성을 높이고 ▲국경 간 거래 비용을 절감하며 ▲기후금융 국제 협력을 촉진하는 기반을 구축했다.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BRI)’ 구상에서도 녹색투자원칙(Green Investment Principles, GIP)을 도입해 녹색 인프라와 금융 프로젝트 개발을 뒷받침하고 있다. 일대일로는 지난 2013년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제안한 국제 개발·협력 전략으로, 육상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인프라·교역·투자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한다.

배출권거래제(ETS) 분야에서는 EU의 경험이 중국 ETS 설계에 직접 반영되었다. 양측은 약 1500만 유로 규모의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모니터링·보고·검증 체계 등 중국 ETS의 핵심 메커니즘 구축을 지원했고, 2018년에는 배출권거래 협력 강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여 상호 협력을 정례화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지난달 2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제25차 중국·유럽연합(EU)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왼쪽),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지난달 2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제25차 중국·유럽연합(EU)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왼쪽),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신화연합뉴스

이러한 협력은 2025년 7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EU-중국 정상회의에서 더욱 확장된 합의로 발전했다. 양측은 파리협정 이행과 탈탄소 협력을 약속하고, COP30 이전에 전 부문·전 온실가스를 포함한 2035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제출을 선언했다. 이와 함께 UNFCCC와 파리협정의 중심적 역할 유지, 글로벌 재생에너지 보급 가속화, 에너지 전환·적응·메탄 감축·탄소시장·녹색기술 분야 양자 협력 확대 등 7대 행동 과제에 합의했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하에서 미국이 주도해온 기후 거버넌스 체제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이러한 다자간 협력 모델은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를 보다 분산되고 포용적인 다극 체제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 역할을 한다.

이러한 거버넌스 구조의 변화는 한국을 비롯한 중견국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창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단극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던 제3국의 정책적 발언권과 참여 공간이, 다극 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점차 넓어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후 거버넌스의 다극화가, 국제사회의 다양한 행위자들이 각자의 비교 우위와 전문성을 토대로 기후변화 대응에 관여할 수 있는 보다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장을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해볼 만하다.

역사적 선택의 기로

앞서 언급한, EU-중국 정상회의에서 양측은 지정학적 갈등(CBAM 시행 등)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공통적이지만 차별화된 책임과 각자의 역량(CBDR-RC)' 원칙을 재확인했다. 나아가 정의로운 전환과 개도국 지원 확대를 포함한 장기 협력 비전을 제시하며, 기후위기라는 공통 과제를 중심으로 한 협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번 합의는 단순한 양자 협력의 차원을 넘어선다. 기존의 서구 주도 기후 레짐(regime)에서 벗어나 새로운 다극적 기후 거버넌스의 출현을 예고하는 신호로도 읽힌다. 1960년대 아세안(ASEAN)이 냉전 속에서 단일 강국 주도의 틀을 벗어나 합의와 협의를 중시하는 다자 모델을 택하여 다극적 지역 질서를 구축한 것처럼, 기후 분야에서도 글로벌 차원의 다극적 협력 체제 형성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기후변화는 국경을 넘어서는 의제다. 기후 거버넌스의 판도가 재편되는 현 시점에서 한국의 선택은 향후 기후·산업 전략을 좌우할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녹색금융 협력, 공급망 연계 등 적극적 참여 전략 없이는 변화하는 질서에서 주변부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방관자에 머물지, 새로운 규범과 제도를 주도할지는 대응 방식에 달려 있다. 새로운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대응의 속도와 방향이 향후 국가 경쟁력과 국제적 위상을 좌우할 것이다. 

[녹색전환연구소 정영주 연구원]

정영주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정영주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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