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실적은 ‘역대급’…내부통제 미비로 지배구조 점수 줄하락
삼성·한화·SK만 A등급…대형사 포함 대다수 B 이하로 떨어져
단기 성장전략 우선...내부통제와 소비자보호가 속도 못따라가
한투증권, ESG 성적 '최악'…지배구조 부문 D등급 증권사 '꼴찌'

[ESG경제신문=김대우 기자] 사상 최대 실적을 찍은 국내 주요 대형 증권사들의 ESG 평가가점수가 거버넌스에 발목 잡혀 줄줄이 하락하며 대부분이 B등급 이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A등급을 받은 곳이 삼성증권 등 3곳에 불과했다.
증권업은 고위험 자산을 다루는 업권 특성상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가 핵심 경영 요소로 작용하는데 내부통제 미비로 금융사고와 무분별한 상품 판매가 금융당국에 적발돼 제재를 받으면서 지배구조(G) 항목에서 점수가 크게 깍인 탓이다.
향후 국제 ESG 공시 기준 도입과 투자자들의 지속가능경영 요구가 강화되면, 국내 증권사들의 ESG 체계 전반에 걸친 근본적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ESG기준원(KCGS) 발표한 2025년도 기업별 ESG등급에서 올해 초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8개 증권사 모두 거버넌스 등급이 하락했다. 3곳은 통합 평가등급도 떨어졌다. 통합 ESG등급이 하락한 증권사는 NH투자증권(A→B+), 교보증권(B+→B), 미래에셋증권(B+→B)등이다.
이번 평가에서 한국투자증권과 대신증권도 B등급으로 한계단 떨어졌다. 대형 증권사 가운데 삼성증권과 한화투자증권, SK증권 만이 종합 A등급을 유지했다. 자산 기준 상위 증권사 대부분이 B등급 이하라는 얘기다. 중소형 증권사로 분류되는부국증권, 유안타증권, 코리아에셋투자증권, DB증권 등은 C등급에 머물렀다.
거버넌스 등급이 하락한 곳은 NH투자증권(A→B+), 교보증권(A→B+), 유진증권(B+→B), 유안타증권(B→C), 미래에셋증권(B→C), KB증권(A→B+), 하나증권(A→B+), 한국투자증권(B→D) 등 8곳이다. 이들 8개사는 모두 금융위로부터 중징계에 해당하는 '기관경고' 조치를 받았다. 이 제재가 ESG 지배구조 항목에 직접 반영되며 등급하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랩어카운트·특정금전신탁(랩·신탁) 상품에서 '채권 돌려막기'를 통해 고객 손익을 다른 고객에 전가한 혐의가 인정됐다. 기관이나 법인 자금 유치를 위해 채권형 랩·신탁 상품에서 고금리를 약속하며 사실상 원금을 보장한 사실이 적발돼 제재를 받았다.
한투증권, 반복되는 사고에도 개선 없어...김남구 지배구조 리스크 심화

지배구조 평가에서 대부분 한 단계씩 내려 앉았지만 한투증권은 무려 4단계 하락해 D등급으로 업계 '꼴찌'를 기록했다. 외형적 실적은 업계 최상위권이지만, 회계 오류·불건전 영업행위·고객자금 유용 등 내부통제 시스템이 연달아 무너져 사고가 이어지지만 개선이 없다. 오너인 김남구 회장으로 집중된 지배구조 리스크가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실적만 보면 얘기가 다르다. 한투증권의 성장세는 '역대급'이다.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 8353억원, 순이익 6509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전년 같은 기간보다 크게 늘었고, 누적으로는 영업이익 1조9832억원, 순이익 1조6761억원을 기록했다.
NH투자증권은 3분기 영업이익 3913억원, 순이익 2831억원을 거두며 분기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 영업이익은 두 배 이상, 누적 순이익은 7481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수준을 넘어섰다. 대신증권도 3분기 영업이익은 736억44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00% 넘게 늘었고 순이익도 400억6700만원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미래에셋증권은 해외법인과 투자자산 수익 덕에 올해 들어 분기별 1000억원 안팎의 순이익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실적은 역대급인데, 회사 운영 방식은 여전히 과거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브로커리지, IB, 해외투자 등에서는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펴면서도, 내부통제와 소비자 보호 체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관·연기금 ESG 기준 강화 추세...“글로벌 시장 신뢰 확보 필수 과제”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ESG는 단순한 평가 기준을 넘어, 기업 신뢰도와 투자 적격성을 판단하는 핵심 지표로 기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기관투자자와 공적 연기금을 중심으로 ESG 기준을 강화하는 추세다. 증권사들이 ESG 평가 하락을 단순한 일회성으로 넘기기보다는 내부통제 시스템과 경영 투명성 확보에 더욱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ESG 펀드나 공공·정책 자금 관련 사업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등급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해외 기관투자가들도 지배구조 평가를 꼼꼼히 챙기는 분위기다. 이익은 많이 내지만 통제는 허술한 회사라는 인식이 굳어질 경우 장기적으로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상위 등급을 지킨 곳은 일찍부터 ESG 체계를 별도로 구축한 사례가 많다. 삼성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은 A등급을 유지했고, SK증권은 통합 A등급을 받으며 한 단계 올라섰다.
이들 회사는 이사회 산하에 ESG 관련 위원회를 두거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외부 이해관계자에게 정보를 꾸준히 공개해왔다. 온실가스 감축, 직원 처우 개선, 소비자 보호 정책 등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에 담는 작업을 반복해온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ESG는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판단하는 기준이자, 글로벌 자본시장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 과제”라며 “외부 감사나 공시 강화뿐 아니라 실제 조직문화와 지배구조 운영까지 정비해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