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먹는 크릴새우 섭취량, 기존 알려진 것의 3배
고래 배설물이 지구의 생산성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
배설물 먹고 자란 플랑크톤 죽으면 탄소와 함께 바닷속으로

[ESG경제=김민정 기자] 크릴새우는 남극 먹이 사슬의 중요한 부분으로 펭귄을 포함해 다양한 포식자들에게 단백질을 제공한다. 때문에 크릴새우 개체수 감소는 남극의 먹이 사슬에 파급 효과를 유발하여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980년 이후 남극해 전역에서 이뤄졌던 남극 크릴새우 조업이 점진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크릴새우의 개체수도 줄어들었다. 남극해양생물자원 보존위원회(CCAMLR)에 따르면 크릴새우 어획량은 1980년대 평균 5만5000 미터톤에서 2010~2015년에는 11만5000 미터톤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CCAMLR에 따르면 이미 크릴새우 개체군 감소로 인해 1970년대 중반부터 2007년까지 남극 반도와 스코샤 해 지역의 아델리펭귄과 턱끈펭귄의 번식지가 50% 감소했다. 크릴새우는 이들 펭귄 종의 먹이 중 98%를 차지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그간 남극해의 크릴새우 어장 관리를 위한 어획량 제한 등의 보존 조치가 이뤄졌다. 크릴새우 포식자들의 번식지 주변 어획량 한도는 75%를 넘기지 않아야 하며, 어획 선박에는 옵저버 1인과 과학 옵저버가 동승해 관찰의무를 가지도록 했다.
해양 생태계 다양성, 고래에서 시작
그런데 최근 남극해의 크릴새우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수염고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제러미 골드보젠 교수 연구진은 지난 4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이 같은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연구에 따르면 대왕고래, 참고래, 혹등고래 등 몸 길이가 10~30m에 달하는 대형 수염고래의 먹이 섭취량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3배 이상이다.
연구진은 이들 수염고래 7종 321마리를 2010~2019년까지 대서양과 태평양, 남극해 등에서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캘리포니아 연안의 대왕고래와 혹등고래는 식사량이 알려져 있는 것보다 2~3배 더 많았고, 남극해의 수염고래들의 크릴 섭취량은 알려져 있는 것보다 두 배나 많았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과거 고래의 개체 수가 많았을 20세기 초에는 크릴새우의 개체 역시 현재의 5배에 달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1910년대부터 고래 포획이 늘어나면서 크릴 개체 수도 80% 이상 급감했다는 것이다. 고래가 먹이사슬을 통해 영양분을 순환시켜 해양 생태계를 번성시킨다는 사실 역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고래 배설물 통해 플랑크톤 번성
남극해는 그간 혹독한 자연환경 때문에 생물 다양성 레벨이 매우 낮을 것으로 추정되어 왔지만, 새로운 연구들로 미생물군 중에서 해양 및 토양의 생물 다양성이 매우 높은 생태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다양한 해양 생물의 먹이사슬 가장 아래에 있는 것은 식물성 플랑크톤인데, 이 플랑크톤을 번성시키는 것이 바로 고래의 배설물인 것이라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져 있다. 미국 버몬트대와 하버드대 공동 연구진이 2010년 발표한 연구에서는 고래가 영양물질을 바다 깊은 곳에서 표층으로 뿜어 올리는 역할을 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대형 동물이 지구의 생산성을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고래는 수심 100m 아래 깊은 바다에서 먹이를 잡아먹고, 높은 수압으로 인해 배설 등의 활동 이외에는 하지 않는다. 고래는 해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쉬면서 동시에 배설을 하는데, 이 고래의 배설물이 식물성 플랑크톤의 영양분이 되고 얕은 바다의 생태계를 풍부하게 만들게 된다.
다시 식물성 플랑크톤이 풍성해지면 동물성 플랑크톤이 이를 먹고 바닷속으로 내려가면서 새우나 어류 등의 먹이 사슬로 이어진다. 해수면에서 심해로 영양분이 이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심 깊은 곳에 사는 어류를 고래가 다시 내려가 섭취한다.
연구에서는 고래 수가 급감하기 전 매년 34만t의 인이 심해에서 해수면으로 이동했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현대에는 7만5000t으로 77%가 감소했다. 인은 지구에서 점점 고갈되고 있는 자원으로 연안에는 육지 하수 등을 통해 인이 공급되지만 대양에서는 인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고래 배설물, 기후 변화 예방 역할도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고래가 다시 살아나면 해양 생태계의 다양성이 회복되면서 어업 생산성도 올라갈 수 있다고 기대했다. 1900년대 초 수준으로 고래와 크릴이 회복되면 남극해의 생산성이 11%는 올라간다는 것이다.
대형 해양 포유동물의 배설물은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에도 역할을 담당한다. 배설물로 식물성 플랑크톤이 번성하는데, 플랑크톤의 몸을 이루는 탄소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에서 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랑크톤이 죽으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플랑크톤의 몸에 갇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이렇게 지구 온난화, 기후 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도 상당량이 바다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