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와 정부, 관련 단체들 ESG정보 공시 신뢰성 높인다는 명분 제시.
증권거래소의 공시시스템으로 자율규제 하도록 해도 충분

[ESG경제=김광기 편집인] 기업 ESG경영 정보의 공시와 인증을 법으로 강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ESG 공시 관련 법 제정을 통해 ESG 표준인증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인증 자격시험제를 도입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표준화된 인증제도 등을 통해 허위·과장 공시를 차단하고, 기업이 느끼는 혼란도 줄어주자는 게 법 제정의 명분으로 제시된다.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해서는 안될 일이다. 뭔가 민간과 시장이 성과를 내려 하면 밥숫가락 얹고자 하는 국회 및 정부의 개입 전통과 관련 이권단체들의 장삿속이 어우러진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법률 조항으로 ESG 공시 룰을 정하는 것은 ‘지원’이 아닌 ‘통제’로 흐를 공산이 크다. 기업은 규제를 지키기 위한 법무적 비용이 늘고 법 위반 시비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결국 ESG경영과 평가는 법이라는 형식이 지배하는 타율적 환경에 처할 우려가 크다.
이는 순수와 정직, 자발과 자율을 생명으로 하는 ESG 취지에 반한다. 규제의 칼자루를 쥐게될 국회와 정부, 관련 단체들은 결과적으로 시장 개입의 수단를 갖게 되고, 관련 수수료 수입이라는 전리품을 짭짤하게 챙기게 될 것이다.
“국회가 앞장서 ESG 평가와 인증 입법화 하겠다”
윤재옥 국회 정무위원장은 조선비즈 주최로 지난 16일 열린 ‘2021 THE ESG포럼’에서 축사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윤 위원장은 “2025년부터 개시될 ESG공시 의무화에 앞서 시급히 해결할 중요한 문제는 투자자와 기업이 신뢰할 수 있는 ESG 평가와 인증”이라며 “국내의 ESG 평가와 인증 체계가 글로벌 무대에서도 신뢰받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관련 입법과 정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ESG 공시 의무화는 오는 2025년 자산 2조원 이상의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부터 시작해, 2030년에는 모든 상장기업에 적용하겠다고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윤 위원장은 “ESG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선제적으로 해결해야할 부분이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600곳 이상의 업체가 ESG 평가 및 인증을 하고 있지만, 제각기 기준이 달라 기업과 투자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전력의 경우 지난해 두 곳에서 각각 C-와 A의 ESG 등급을 받았다”면서 “테슬라도 평가 기관에 따라 최하 등급, 최고 등급을 받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뒤이어 주제발표에 나선 권세원 이화여대 교수는 “공시되는 ESG 관련 정보들이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회계법인 등 제3의 감사기관이 인증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인증을 법으로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지금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내는 국내 100여개 기업 중 90% 정도가 자율적으로 외부 인증을 받고 있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인증 자격증은 당연히 금융위원회 등 정부가 발부하게 될 것이다. 현행 신용평가회사들 처럼 말이다.
권 교수가 뒤이어 꺼낸 얘기가 걸작이다. “글로벌 대기업들을 보면 약 절반 밖에 ESG 정보에 대한 인증을 받지 못하는데, 한국은 90%가 받는다니 국내 기업들이 ‘워싱(위장)’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그는 말했다.
해외 사례 보다 한국 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인증을 받고 있는데, 이게 눈속임 같으니 아예 100% 의무화하자는 주장이다. 희안한 논리다.
권 교수는 “(회계법인 등) 검증된 기관이 ESG정보를 인증해야 정보의 질이 올라갈 것”이라며 “인증 자격시험도 만들어 ESG정보를 인증하는 사람들의 적격성 여부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내놨다.
규제 만능주의 칼날 ESG까지 겨누나
ESG 정보공시와 평가에 대해 누군가 나서 교통정리를 해준다면 고마울 일이다. 그러나 모범운전사들이 모여 자율적으로 해도 충분하다. 교통경찰이 출동해 딱지를 떼고 위반자를 잡아들일 일은 아니다.
ESG경영은 어디까지나 기업들이 ‘바른 경영’ ‘친환경 경영’ ‘사회책임 경영’을 하겠다는 자발적 행동이다. 정부와 국회는 잘한다고 칭찬하고 도와주면 그만이다. 명분은 지원을 얘기하겠지만, 법으로 규제하면 결국 ‘감 놔라 배놔라’ 하게 마련이다.
ESG 공시의 표준화와 의무화가 국제적 추세인 것은 맞다.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기업들에겐 ESG 관련 업무 혼선 및 비용의 축소를 위해 필요하다는 공감대에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해당 기업의 주식이 상장된 증권거래소나 ESG 관련 자율규제기관들이 주도해 회계 및 공시시스템을 갖추는 범주 안에서다. 증권거래소 등은 가이드라인을 촘촘하게 명확하게 제시해 기업들이 쉽고 편하게 저비용으로 공시하도록 역할을 하면 된다.
물론 허위·과장 공시가 생길 순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장의 자율규제로 경고하고 벌칙을 가해도 충분하다. ESG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찍히면 해당 기업의 ESG가 가식적이었다는 나쁜 평판과 함께 주가 하락을 불러올 것이다. 기업에게 이것 만큼 무서운 벌칙은 없다.
일찌기 중국의 장자는 이런 가르침을 남겼다. "가장 휼륭한 통치는 무위(無爲)의 통치다. 선한 통치자 보다 좋은 게 존재감 없는 통치자다"라고 했다. 이 시대 한국의 국회와 정부가 되새겨봐야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