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의 ESG 평가등급이 엑손모빌보다 높아 논란
투자업계 “ESG 정보공개의 표준화ㆍ객관화 시급"

[ESG경제=이진원 기자] 세계 3대 가상화폐거래소 FTX의 파산 신청 여파가 ESG 업계로 번지고 있다. 파산한 FTX의 ESG 등급이 우량 글로벌기업 엑손모빌보다도 높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ESG 평가의 신뢰성과 객관성에 의문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석유 등 화석연료를 다루는 엑손모빌이 환경을 중시하는 ESG에 반하는 기업활동을 하긴 하지만 FTX처럼 파산 위험이 크지 않은 우량기업인 만큼 ESG 등급이 FTX보다 낮은 건 심하지 않느냐는 논란이다.
FTX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에 파산법 11조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파산 신청서에 따르면 FTX와 130여 개 계열사의 부채는 올해 파산 신청 기업 중 최대 규모로, 우리 돈으로 최대 66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험군 코인거래소 등급, 우량 대기업보다 높아
FTX의 ESG 등급이 엑손모빌보다 높다는 사실이 담긴 이미지(아래)는 트위터 등 SNS를 통해 급속히 퍼졌다.

캡처한 이미지를 보면, ESG 데이터 기업인 미국의 트루밸류랩스(Truvlaue Labs)의 평가 결과 FTX의 리더십과 거버넌스 점수는 50점으로 엑손모빌의 38점보다도 12점이나 높았다.
이에 대해 캐나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쇼피파이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토비 뤼트케(Tobi Lütke)는 27만 명 가까운 팔로워를 둔 자신의 트위터에서 “ESG의 이념은 훌륭하지만 ESG을 수행하기는 어려워졌다”고 비판했다. 이어 “ESG 시스템을 잘 아는 사람들이 디자인을 ‘리부팅’ 해달라”고 촉구했다. ESG 평가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표준화된 용어와 평가 방법 부족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ESG 경영에 대한 투자자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전 세계 기업과 투자업계에 ESG경영 붐이 불고 있다. 기업들은 투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해 ‘친환경’ ‘지속가능’ '투명' 경영을 한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알리느라 분주하다. 이에 맞춰 각국 규제당국은 ESG 투자 관련 위험을 파악하고 통제하기 위해 기업들에게 ESG 활동을 공개하도록 구체적인 규제안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ESG 활동을 평가할 신뢰할만한 국제적 잣대가 부족하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ESG 활동 평가에 있어 가장 해결이 시급한 문제로 표준화된 용어와 평가 방법의 부족하다는 점이 꼽힌다. 에너지·광산·인프라·기후변화 전문로펌인 토리스LLP의 타이슨 다이크(Tyson Dyck) 파트너는 최근 '레지나 리더-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ESG 평가에는 도전과제가 많다”면서 “일부 ESG 관련 평가 기준들은 정량화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부 기준은 어떤 기업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다른 기업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면서 “ 제3자로부터 얻는 데이터를 비롯해 적절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평가기관마다 여러 도전에 직면한다”고 덧붙였다.
WSJ도 ESG 평가의 문제점 지적
ESG 평가의 표준화와 객관성 부재를 둘러싼 문제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도 심층적으로 다룬 바 있다. 이 신문은 지난 3일 ‘ESG 평가 결과는 왜 그렇게 천차만별이며, 투자자들은 그런 결과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란 제목의 기사에서 “ESG 투자가 성장세지만 투자자들은 어떤 ESG 평가 결과를 믿어야 할지 혼란에 빠져있다”고 진단했다. 투자자들은 어떤 기업이 제대로 ESG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기 힘들어 트루밸류랩스 같은 외부 평가기관에 투자가치 판단을 의존해야 하지만, ESG 평가 결과가 기관마다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ESG 평가 결과가 이렇듯 제각각이긴 해도 ESG 활동 평가 자체가 무의미하진 않다는 지적도 많다. 평가를 안 하는 것보다는 부정확한 평가라도 있는게 낫다는 이야기다. 다만 ESG 평가 신뢰성에 한계가 드러난 만큼 좀더 정교하고 보편적인 평가방법이 개발될 때까지 평가 결과를 맹신하지 말고 신중한 투자를 해줄 것을 전문가들은 당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