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에 특권과 불공정 판치면 ESG 공염불
경제약자 보호와 관련 규칙 준수가 ESG 출발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의 인기 비결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불거진 법질서의 붕괴 현상에 대한 대중의 공감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드라마 속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소위 ‘부모 찬스’ 아래서 법질서와 도덕을 무시한 행동을 버젖이 하고도 떵떵거리며 살아간다. 결국 드라마 속 주인공의 복수로 응징을 받지만, 법질서가 바로선 사회라면 애당초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입시부정이나 학교폭력 사태는 그들 부모만의 책임이 아니다. 법질서가 무시된 일그러진 사회를 만든 기성 세대 모두의 책임이다. 법질서와 이에 근거한 사회적 자본은 한 국가의 선진화와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다. 가진자들의 갑질과 특권, 부정부패, 이권 카르텔 등을 법질서를 통해 통제하지 못하는 나라 치고 선진국을 유지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공정 경쟁과 협력, 법 준수가 성장잠재력 제고의 전제
법질서 바탕이 튼튼해야만 사람들 의식구조 속에 서로 돕는 협력과 공정한 경쟁질서가 자리 잡아 사회적 수용능력 확충을 기대할 수 있다. 법을 경시하는 경향이 사회 곳곳으로 스며들어 가면 성장잠재력이 스멀스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성장잠재력이 사실상 1%대로 약화되어가는 까닭은 법질서를 무시하는 풍조가 커다란 원인이라고 판단된다.
법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도리로 법질서가 붕괴되면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만다. 만인의 만인을 위한 투쟁이 벌어져 힘세고 가면을 쓴 인간들이 판치는 세상이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했듯이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어져 경쟁력이 무너진다.
법을 솔선수범하며 지켜야 할 지도층 인사들일수록 오히려 거짓말에 익숙한 모습이 언뜻언뜻 보인다. 덮어놓고 자신만 옳다고 외치는 광경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법의 정신’은 어디로 행방불명되었는지 안쓰럽다.
조선시대 뿌리깊은 사농공상 시대를 지나 20세기 후반 대한민국 건립과 경제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그 주역인 기업가와 경영자가 우리 사회의 상층부의 일원이 되었다. 이제 사회적 지위로 말하면 고위 관료나 법조인, 의사, 교사에 못지 않다.
이제 기업이 약자와 기업 주변 이해관계자들을 돌보고 이들과 이루는 기업생태계에서 법 준수를 제일의 덕목으로 삼을 때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해 한 세미나에서 "내부 준법시스템의 활용을 통한 기업의 자율적 ESG 경영확대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타락한 사회가 인간들을 병들게 하였는가? 오염된 인간들이 사회를 어지럽게 만들었는가? 출세지상주의가 법질서를 흩트렸는지 아니면 법질서가 파괴되어 출세지상주의 사회로 변하게 하였는가? 사회 혼란이 법질서를 무너지게 하는가 아니면 법이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거미줄처럼 뚫리면서 사회질서를 혼란에 빠지게 하였는가?
법질서가 무너지면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내걸고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공동체의식은 실종되고 어둠 속에서 남몰래 음해하는 작태가 난무하기 마련이다. 끼리끼리 편을 갈라 남모르는 특별이익을 나눠 가지려는 사회에서는 진실을 말하다가 오히려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겁나는 세상이 된다.
진실을 밝히기를 두려워하는 분위기에서 어쩔 수 없이 유언비어가 떠돌게 되고 악이 선을 희롱하는 세상으로 전락한다. 그런 환경에서는 죽을힘을 다해 권력과 명예와 부를 쌓아 올려도 금자탑이 아니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바벨탑으로 변해갈 수도 있다. 선진국에서 소위 ‘호루라기 부는 사람(whistle blower)’을 보호하고 내부고발을 장려하는 까닭의 하나이다.
법은 경제계의 강자보다 약자의 기댈 언덕 되어야
법이 규범이 되고 정의의 본보기가 되는 광경보다는 반대로 강자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면죄부를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은 모습도 엿보이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법은 강자의 보호막이 아니라 억울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어야 한다. 법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면 “정의가 힘이 아니다”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선량한 시민들로 하여금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는 패배의식에 젖게 만든다.
사람들로 하여금 법의 정신을 충실히 이행하도록 하여 법의 횡포를 막고 억울한 사람들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똑같은 사안에 시시때때로 판결이 정반대로 달라지는 광경은 법도 모르고 내막도 모르는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법질서가 망가지면 사람들이 옳은 말을 하지 못하게 되어 어둠의 자식들이 끼리끼리 귓속말을 하며 히죽거리기 마련이다. 서로 속이고 속는 환경에서 능률이 오르고 사회적 적응능력이 높아져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겠는가? 바른 시선, 바른 생각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 성장잠재력이 확충된다. 그래야 국가경제든, 기업이든 지속가능한 성장을 얘기할 수 있다. 법질서가 흐트러진 사회에서 ESG는 공염불이다.
[신세철 ESG경제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