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ESG평가원, ‘2023 정기주총 주주행동주의 분석’ 보고서
주주제안 전년비 1.5배 넘게 급증했으나 통과된 거 드물어
“단기 주주이익 추구로는 한계, ESG 행동주의로 진화해야”

[홍수인 기자=ESG경제] 지난달 국내 상장사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행동주의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으나 장기비전 없이 단기 주주이익에 치중한 탓에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ESG경제>의 자매회사인 <한국ESG평가원>이 19일 내놓은 ‘2023 정기주주총회 주주행동주의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사모펀드 등이 주주행동주의 일환으로 3월 주총 상장사에 주주제안을 제출한 경우가 지난해 28개사에서 올해 44개사(코스피종목 22개, 코스닥종목 22개)로 57% 급증했다.
주주제안의 주된 내용은 배당금 확대, 자기주식 취득 및 소각, 액면 분할, 사외이사 나 감사의 추천 등이었으나 표 대결까지 가면서도 통과된 경우가 드물었다. KT&G의 분기 배당 신설을 위한 정관 변경, 남양유업의 외부추천 감사 선임, 일신방직의 배당금 확대, 액면 분할 등을 이사회 안으로 채택한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십중팔구(89%) 부결됐다.
보고서를 만든 허창협 한국ESG평가원 전문위원은 “올 주총에서 나타난 우리나라 주주행동주의는 직접적, 단기적 주주이익을 추구하는 데 집중한데 비해 주주행동주의의 해외 추세는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주식 가치 상승에 몰두하는 ‘ESG 행동주의’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주주행동주의도 초보적인 단계에서 탈피해 중장기적 주주가치 상승에 기여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통상 주주행동주의란 주주가 기업의 이해관계자와 경영시스템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기업가치를 올리려는 투자 전략의 일종이다. 기관투자자, 헤지펀드, 개인투자자 등 시도 주체는 다양하다.
한국 증시의 주주행동주의는 아직 외화내빈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에 따르면 지난 3월 정기주총 결과, 총 주주제안 79건 가운데 11%인 9건만 채택되었다. 주주제안의 주요 내용은 배당금 확대, 자기주식 취득 및 소각, 액면분할 등 대부분 주주의 단기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일부 주주제안은 장기적으로 기업가치의 상승이나 주주환원 정책에 효과가 있다는 판단에서 채택되기도 하였다. KT&G의 분기배당 신설 정관 변경, 남양유업의 외부추천 감사 선임 등이 일례다. 일신방직의 배당금 확대, 액면분할, 자기주식 소각 및 취득 제안을 적정하다고 보고 이사회 안으로 채택해 통과시킨 경우도 있었다.
주주행동주의 세력이 정기주총에서 제안한 대상 기업수는 2021년 10개사, 지난해 28개사, 올해 44개사로 지속적인 늘고 있다. 젊은 세대의 개인투자자가 급증하면서 적극적인 주주 활동이 투자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전자투표 도입 등으로 주주 참여가 용이해진 면도 크게 작용했다.
주주행동주의의 확산으로 주주 눈치를 보는 경영진이 늘어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합리적 주주행동은 장기적으로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분명하다.
이와 관련 보고서는 “주주행동주의가 더욱 발전하려면 종전의 단기적인 주주이익 확보나 대내외 이해관계에 따른 지배구조 관여에서 벗어나 좀더 큰 틀에서 기업가치 상승을 위한 제안,감시,관리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환경(E), 사회(S), 지배구조 (G) 관련 여러 이슈를 들여다보고 주주가치 증대를 추구하는 ‘ESG 행동주의’로의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해외에선 ESG 요소 강조하는 주주행동 증가세
주주행동주의는 자본시장이 발달한 서구 선진국에서 20세기 초반 발원했다. 하지만 무리한 배당 요구 뿐만 아니라 경영 간섭, 기업의 인수,합병,분할,매각 등을 통한 단기적 이익 추구 등 폐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주행동주의가 지속가능한 분야의 투자를 어렵게 하는 등 장기적 기업가치 제고에 악영향을 준다는 주장이 대두되면서, 기업의 환경,사회,가버넌스 이슈를 개선하여 점진적인 주주가치의 개선을 추구하는 ESG 행동주의 캠페인이 늘고 있다.
S&P글로벌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일반 행동주의 펀드가 관여한 기업의 노동, 환경, 인권 등의 ESG 성과는 2년 뒤에는 18%, 5년 뒤에는 2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ESG 행동주의 캠페인과 관련한 주주관여는 오히려 주가 상승 등 기업가치 제고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딤슨과 카라카스(Dimson,Karakas) 등의 “액티브 오너십(Active Ownership)”(2015, Review of Financial Studies) 연구 결과를 보면, ESG행동주의 캠페인 시작 한 달 전부터 1년 뒤까지의 누적수익률이 +7.3%로 나타났다. 이를 다시 환경(E),사회(S) 지배구조(G)로 나눠 분석해 보면 1년 후까지의 누적수익률이 E와 S는 +7.2%, G는 +7.1%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에 대한 주주행동주의도 점점 ESG로 향하고 있다. 가령 행동주의 펀드가 2021년 엑슨모빌에 탄소중립 대응 투자 다변화 캠페인을 벌인 것을 비롯해, 지난해 맥도널드와 크로거에 동물 복지 이슈를, 글렌코어에는 석탄사업 분할 캠페인을, 선커에너지(Suncor Energy)에는 중대재해율 감축 캠페인을 벌였다.
다만 Insightia(2022년) 자료를 KB증권에서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ESG 행동주의의 목표가 다양하고 장기적인 주주가치 상승이라는 점은 기존의 주주행동주의와 다르나, 행동 수단은 운영전략 변화, 이사회 구성원 추가 등 전통적인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표1 참조)
다양한 주주행동주의 유형
연기금, 보험사, 펀드 등 기관투자자는 일반적으로 장기투자의 특성을 지녀, 기업의 장기적 가치 증대를 위한 행동을 주로 한다. 이들의 행동 방식은 스튜어드십 코드의 적극 실행, 지배구조 개선 등 기업가치 증대를 위한 안건을 찬성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인다.
헤지펀드는 기대수익이 큰 투자 전략을 구사해 기업 자산을 재분배하거나 지배구조, 경영 방향을 급격히 바꿈으로써 수익을 얻으려 한다. 합병, 분사를 모색하기도 하고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등 자본배분 문제에 집중하는 성향이 강하다. 헤지펀드는 이사회 구성원을 자신이 지목한 인사로 교체하려는 위임장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개인투자자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소액주주를 모집하여 주총 안건을 손수 제안하는 주주제안의 형태로 행동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