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음반이 배출하는 플라스틱, 최근 6년간 14배로 늘어

[ESG경제=김연지 기자] 케이팝(K-Pop) 음반이 배출하는 플라스틱이 최근 6년간 14배나 늘어 국내 플라스틱 폐기물 증가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폐기물부담금 부과 대상인 국내 기획사가 앨범 제작에 사용한 플라스틱은 작년 한해 801.5톤에 달했다.
2017년 55.8톤에 비하면 6년 사이 14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로, 앨범 판매량을 고려하면 실제 사용된 플라스틱은 환경부 집계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국내 최대 가요 기획사인 하이브가 올해 7월 발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작년 하이브가 제품을 만들고 포장하는 데 쓴 플라스틱만 894.6톤에 달했다.
플라스틱 배출량이 늘어난 것은 케이팝 음반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써클차트(구 가온차트) 기준 국내 음반 판매량은 지난 2019년 2,509만 장에서 2020년 4,171만 장, 2021년 5,709만 장, 지난해 7,712만 장으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 벌써 5487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올 한해 국내 음반 판매량은 1억 장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러한 판매량 증가는 케이팝의 인기를 방증하기도 하지만, 그 배경에는 ‘앨범깡’이라고 불리는 팬덤 문화가 존재한다. 앨범깡은 한 명의 팬이 수십, 수백장의 앨범을 구매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앨범깡의 이면에는 대부분 앨범의 중복소비를 유도하는 기획사의 마케팅 전략이 깔려 있다.
같은 내용물을 표지와 속지를 달리하여 여러 버전으로 발매하거나, 앨범마다 랜덤 포토카드를 첨부하는 방식을 사용해 구매를 유도하는 것. 또한 앨범 1개당 팬사인회 응모권 1회를 부여하여 팬사인회에 갈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앨범을 사야만 하는 식으로 팬들을 유혹한다.
음반 판매량이 곧 인기의 척도로 여겨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케이팝 시장에서 음반 판매량은 아티스트의 인기는 물론, 팬덤의 규모와 충성도를 가늠하는 지표다. 앨범 발매 이후 일주일 간 판매량을 일컫는 ‘초동 판매량’은 팬덤 사이에서 더욱 중요한 지표로 통한다.
아이돌이 앨범을 내는 주간에는 ‘초동 몇백만장’, ‘신기록 갱신’ 등의 뉴스가 뜨고, 실제로 아이돌의 앨범 발매를 전후로 팬덤의 커뮤니티에는 초동 음반 판매량에 대한 실시간 정보, 공동 구매 정보와 독려, 앨범깡 후기들이 쏟아진다.
'죽은 지구에 케이팝 덕질은 없다' ...글로벌 팬들 기후위기 대응 강조
케이팝의 이러한 관행과 관련, 2021년 글로벌 케이팝 팬들은 기후위기에 대항하기 위한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지구를 위한 케이팝, Kpop4Planet)'을 조직했다. 이들은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 프로젝트를 통해 케이팝 기획사에 ▲앨범 구매 시 친환경 선택지 제공 ▲앨범 및 굿즈의 플라스틱 패키징 최소화 ▲디지털 플랫폼 앨범 발매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캠페인에 대해 “앨범 구매시 원하는 구성품만 골라 받거나 앨범은 원하는 수량만큼 수령할 수 있는 그린 옵션, 디지털 플랫폼 앨범, 탄소배출 없는 콘서트 등등 엔터사들이 변화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다. 케이팝이 노래하며 변화한다면 앞으로 미래세대를 살아갈 1020 세대들이 케이팝을 통해 지속가능한 문화를 배우고, 행동하며, 세상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2021년 11월, 1만 명이 넘는 케이팝 팬들의 연대 의지를 담은 성명서는 SM, JYP, YG, HYBE 등 4대 기획사로 전달됐다. 지난해 4월에는 국내 케이팝 팬들로부터 사용하지 않는 불필요한 음반 8000여 장을 모았다. 이후 음반을 생산자인 기획사 측에 돌려보내며 이에 대한 해결과 책임을 촉구한 바 있다.
친환경 플랫폼 앨범, 케이팝 음반의 뉴노멀을 열다
이들의 요구에 응답하듯 최근 ▲친환경 소재 및 재활용 가능 소재로 앨범 제작 ▲실물 음반이 없는 디지털 앨범 발매 사례가 늘고 있다.
2021년 11월에 발매된 래퍼 송민호의 <TO INFINITY>의 경우, 앨범 내 용지는 국제산림관리협의회(Forest Stewardship Council, FSC)의 인증을 받은 용지를 사용했다. 쉽게 자연분해되는 콩기름 잉크와 저염소 표백펄프로 만든 저탄소 용지도 사용했다. 또한 블랙핑크, 청하, 트레저, NCT DREAM 등 유명 아티스트가 친환경 소재로 굿즈와 음반 제작에 나서면서 친환경 소재 사용이 케이팝 음반 제작의 뉴노멀로 자리잡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친환경 음반 제작업체 <미니레코드>도 생겼다. <미니레코드>는 친환경 인증을 받은 FSC 종이를 이용하여 앨범 패키지를 제작하고 있다. 플라스틱 CD를 대체하기 위해 QR코드와 시리얼 번호가 인쇄된 종이를 활용한다. 코드는 전용 앱으로 연결되어 아티스트의 음악, 이미지, 동영상 등의 콘텐츠를 스마트폰에서 즐길 수 있게 된다.
카드형 스마트 음반 제작 업체 <네모즈샵>도 주목해볼만 하다. 이들이 제작하는 네모앨범은 <미니레코드>의 플랫폼 앨범, 스마트 앨범과 같은 매커니즘의 음반 형태다. 카드 형태의 음반 안에는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노래, 사진, 영상, 노래방 기능 등 다양한 콘텐츠가 저장돼 있다. 네모 앨범은 다국어 가사 서비스도 제공하면서 종이와 CD, 각종 플라스틱 용지로 구성된 기존 음반을 뛰어넘는 편리함을 무기로 한다.
<미니레코드>의 플랫폼 앨범과 <네모즈샵>의 네모앨범은 차세대 케이팝을 이끌 새로운 음반형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미니레코드>는 하이브와 업무협약을 맺고 다양한 아티스트가 활동하는 위버스 플랫폼을 기점으로 앨범을 발행할 예정이다. 이미 방탄소년단 제이홉, 더보이즈, 샤이니 키, 강다니엘 등 다양한 케이팝 스타들이 플랫폼 앨범을 발행한 바 있다. <네모즈샵> 역시 2022년 4월에 첫 발매를 시작한 이후 작년 한 해 30여종 넘는 앨범이 70만장 이상 판매된 바 있다.
국내 차트, 대안 앨범 포용...디지털 앨범까지 차트 집계에 포함
국내외 음악 시장에서 '빌보드 200'과 '빌보드 핫100' 차트의 권위는 상당히 크다. 업계에선 빌보드 차트 순위를 기준으로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의 앨범 성적을 가늠한다. 그러나 빌보드 차트는 실물 앨범 판매량, 방송 횟수,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횟수 등을 기준으로 순위를 집계한다. 실물 CD가 없는 플랫폼 앨범을 발매할 경우 집계 대상에서 제외되고,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2022년 1월부터 국내 대중음악차트 써클차트(구 가온차트)는 실물 CD가 없는 각종 플랫폼, 디지털 앨범까지 차트 집계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써클차트 관계자는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디지털 앨범, 플랫폼 앨범도 일종의 대안앨범으로 인정하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다양한 앨범의 형태를 포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써클차트는 지난 2022년 7월 친환경 차트(클린차트) 운영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진 앨범만 집계하는 차트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차트 신설은 보류되고 있다. 이에 대해 써클차트는 기준의 모호함을 들었다.
써클차트 관계자는 “차트는 범용화되는 지표이기 때문에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서부터 친환경 소재이고 어디서부터 환경을 고려한 소재인지 명확하지 않다. 공시된 기준이 부재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의적으로 기준을 정한 차트를 도입했다가 반론이 생기면 이에 기술적인 반박을 할 수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