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도입은 어려워

[ESG경제=이신형기자] 정부가 탄소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21대 국회에서 두 번째 탄소세 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됐다. 국회에서도 탄소세 도입을 검토할 시기가 됐다는 인식은 있으나, 아직 논의가 무르익지 않아 연내 도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정부는 탄소세 도입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했으나, 용역 작업이 올 연말에 마무리될 예정이어서 올해 세법개정안에 탄소세 법안이 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의당의 장혜영 의원은 1일 유연탄과 무연탄, 중유, LNG 등 화석연료에 대해 탄소세를 부과하는 탄소세 법안을 발의했다. 먼저 CO2톤당 50달러 수준의 탄소세를 부과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올려 2030년까지 100 달러까지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세율로 탄소세가 도입되면 내년에 추가 세수가 25조원이 확보되고 2030년에는 세수가 50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장 의원 측은 전망했다. 이렇게 확보한 추가 세수는 탄소 중립 실현을 지원하고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탄소세를 부과하면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세 부담을 지게 되는 탄소세의 역진성 해소를 위한 방안이다.
왜 탄소세인가?
2016년 발효된 파리기후협약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1.5℃로 제한하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18년 발표한 ‘지구 온난화 1.5℃ 특별보고서’는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이 수준으로 제한하려면 2050년에는 탄소 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파리협약 당사국은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제출하고 2020년부터 5년마다 목표를 상향해야 한다.
탄소 중립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배출된 온실가스는 산림을 통해 흡수하거나 친환경 기술인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를 사용해 제거해 달성해야 한다. CCUS는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는 근원지에서 포집하고 필요한 곳에서 사용하거나 지하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배출된 탄소에 가격을 부여하는 탄소가격제는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억제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밝혔다.
탄소가격제 중 가장 대표적인 제도가 탄소세와 탄소배출권거래제와 같은 시장에 기반을 둔 규제수단이다.
탄소세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적용대상이 광범위하고 정책의 투명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 기업들이 탄소 저감 기술 개발에 나서도록 독려하는데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탄소세 부과는 조세저항을 불러오고 탄소세 부과에 따른 에너지 비용 상승이 가계지출 증가로 이어져 소득재분배가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가 있다. 석유화학이나 철강 등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 배출 사업장을 대상으로 배출권을 할당해 할당된 배출량의 잉여분이나 부족분을 매매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배출권 거래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어 기업의 배출량 감축 목표의 초과달성을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배출권거래제를 적용하기 어려운 사업장이 많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예정처는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하여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 등 시장기반적 규제수단에 관한 관심이 증대되는 추세”라며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를 시장실패의 일종으로 보고, 시장기반적 규제수단인 탄소세 또는 배출권거래제를 도입, 시행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과 미국을 중심으로 자국보다 탄소 배출 규제가 약한 나라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세도 논의되고 있다고 예정처는 밝혔다.
25개국 탄소세 도입
현재 탄소세를 도입해 과세하는 나라는 25개국이다.
예정처에 따르면 최고 세율은 스웨덴의 CO2톤당 119 달러, 최저 세율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CO2톤당 1달러 미만이다.
북유럽 국가는 탄소세와 EU의 배출권거래제를 함께 시행하고 있으나, 이중 규제에 따른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직접세 감세와 산업용 자재 생산 기업의 탄소세 감면 등의 보완책을 마련했다.
특히 1990년 세계 최초로 탄소세를 도입한 핀란드는 1997년과 2011년 에너지 세제개혁을 통해 소득세와 기업의 사회보장비를 감면해 온실가스 저감과 기업 경쟁력 유지 사이에서 균형을 도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1년 탄소세를 도입한 스웨덴도 법인세와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득세를 감면했고 1992년 탄소세를 도입한 덴마크는 급격한 세 부담 증가를 완화하기 위해 에너지세를 인하하고 소득세와 법인세 등을 감면해 세수 중립성을 유지했다.
프랑스는 2014년 4월 탄소세를 도입했고 현재 CO2톤당 30.5 유로인 탄소세율을 2030년까지 CO2 톤당 100유로로 인상할 계획이었으나, 2018년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노란조끼 시위로 인상을 유예했다. 네덜란드는 올해부터 산업부문에 탄소세를 부과하기로 했으나, 세율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호주는 2012년 탄소세를 도입했으나, 광산과 에너지, 유통기업의 세부담과 에너지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 시행 2년 만에 폐지했다.

심층적인 논의 필요
한국에서 탄소세 관련 법안은 2013년 19대 국회에서 심상정 의원과 박원석 전 의원이 발의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는 장혜영 의원에 앞서 기본 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환산한 이산화탄소상당량톤에 대해 탄소세를 부과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세수를 기본 소득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2월 탄소 중립 이행방안 마련을 위한 입법 공청회를 개최했고 이때 탄소세를 통해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OECD는 ‘2017년 대한민국 OECD 환경성과평가보고서’에서 한국의 현행 에너지세제가 에너지 생산과 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비용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예정처는 “경유가 휘발유보다, 중유는 천연가스보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반면 현행법은 경우에 휘발유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중유에 도시가스용 천연가스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함에 따라 현행 에너지세제의 온실가스 저감 기여 기능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어,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해 과세하는 ‘탄소세’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아직 논의가 충분치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탄소세 도입을 논의해 볼 만하다는 문제의식 정도는 여야가 공유하고 있다”면서도 “조세 부담과 역진성 문제 등 해결 과제가 많은데 아직 논의가 무르익지 않아 올해 도입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4월 조세연구원과 산업연구원, 환경연구원, 교통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관련 국책연구기관에 탄소세 도입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기획재정부 세제실 환경에너지세제과의 한 관계자는 “의원입법으로 법안이 발의가 됐으니 국회에서 논의가 되긴 하겠지만, 연내 도입은 어려워 보인다”며 “정부가 발주한 연구용역이 올해 12월 31일 마무리될 예정이어서 올해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탄소세법안이 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