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히트펌프 지난해 가스난로 보다 21% 많이 팔려
미국 세금 혜택...삼성전자와 LG전자도 시장 공략 박차

[ESG경제=이진원 기자] 미국에서 히트펌프 인기가 천연가스나 난방유를 사용하는 난로를 밀어낼 만큼 뜨거워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와 주 정부가 세제 혜택과 리베이트를 통해 히트펌프 보급을 장려하는 가운데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히트펌프가 친환경적이면서 에너지 효율도 높은 기술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그러자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은 히트펌프 기술을 적용한 세탁기와 건조기 등 생활가전으로 북미와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지난주 공조·난방·냉동 연구소(Air-Conditioning, Heating, and Refrigeration Institute)가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인들은 히트펌프를 가스난로보다 21% 더 많이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소가 관련 데이터를 집계한 지난 20년간 동안 미국인들이 히트펌프를 기존 난로보다 이처럼 더 많이 구입한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미국은 히트펌프 최대 시장이다.
공급 차질과 인플레이션 및 고금리 여파로 지난해 전반적으로 소비지출이 위축되면서 히트펌프와 가스난로 모두 전년 대비 판매량이 감소했다. 그러나 히트펌프는 2022년 처음으로 가스난로보다 12% 더 많이 팔린 이후 지난해 이 격차를 더욱 벌렸다.
전기화 옹호 단체인 리와이어링 아메리카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인 알렉스 아멘드는 “히트펌프 인기가 가스난로보다 높아지고 있는 것은 정말 반가운 소식”이라며 “미국은 단언컨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히트펌프의 원리는
히트펌프는 차가운 공간에서 따뜻한 공간으로 열을 전달해 차가운 공간을 냉각하고 따뜻한 공간을 따뜻하게 하는 장치다.
추운 날씨에는 차가운 실외의 열을 실내로 이동시켜 집을 따뜻하게 하고, 따뜻한 날씨에는 집안의 열을 따뜻한 실외로 이동시키도록 설계될 수 있다. 열을 발생시키지 않고 열을 전달해서 다른 냉난방 방식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친환경적이다.
화석연료 난로와 동일한 양의 열을 3분의 1이나 4분의 1의 에너지로 생산할 수 있고, 집에서 사용 시 가스와 난방유에서 나오는 유독한 연기로 인한 건강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 이 기술은 현재 냉장고나 에어컨이나 보일러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히트펌프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높아지면서 미국 전역에서 새로운 시장이 열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히트펌프 기술은 온화한 기후로 인해 오랫동안 히트펌프를 현명한 선택지로 간주해온 남동부 지역에서 특히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기술이 개선되면서 메인주나 콜로라도주처럼 겨울철 날씨가 혹독한 주에서도 히트펌프가 인기를 끌고 있다. 메인주에서는 히트펌프가 큰 인기를 끌면서 7월에 원래의 보급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더 야심찬 목표를 새로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美 정부, 적극적인 보급 지원...소비자 관심도 ‘쑥쑥’
히트펌프 보급에는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가 히트펌프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면서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게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지난해 1월부터 미국에서 히트펌프 구매와 설치 시 비용의 30%, 최대 2000달러(약 267만 원)까지 연방 세금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세금 공제 혜택 외에도 조만간 주에서 IRA 리베이트 형태로 히트펌프 구매 시 1750~8000달러를 지원해줄 예정이다. 이는 2031년 9월까지 시행되는 45억 달러(약 6조 원) 규모의 연방 정부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주 리베이트는 올해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지난 9월 25개 주 주지사들은 2030년까지 누적으로 2000만 대의 히트펌프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9개 주에서 2040년까지 가정용 난방 판매량의 90%를 히트펌프가 차지하도록 하는 목표를 세웠다.
히트펌프 기술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올라가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최근 소비자 트렌드 보고서인 ‘디스틸드(Distilled)’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히트펌프라는 용어에 대한 구글 검색이 두 배로 증가했다.
이런 가운데 기후 옹호론자들은 주택 소유주들이 고장 난 에어컨을 히트펌프로 교체하도록 권장하거나 심지어 의무화하도록 정책 입안자들에게 점점 더 많은 압력을 가하고 있다.
미국이 현재 히트펌프 최대 시장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히트펌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시장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Fact.MR에 따르면 히트펌프 시장은 2017~2021년 사이 연평균 3.9% 성장했지만, 2022~2032년 사이에는 이보다 빠른 연평균 9.0% 성장이 예상됐다. 이럴 경우 2032년이 되면 시장은 1687억 6000만 달러(약 226조 원) 규모로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용 히트펌프 시장도 꾸준한 성장세가 예상되고 있다.
또 다른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테크네비오(Technavio)는 산업용 히트펌프 시장이 2022년부터 2027년까지 6억 6066만 달러(약 88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예측 기간 연평균 5.66%, 전년 대비 5.04%씩 각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테크네비오는 “에너지 효율 개선에 대한 산업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히트펌프 시장이 이처럼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시장 공략 박차
히트펌프 시장이 이처럼 커질 것으로 전망되자 국내 기업들도 히트펌프 기술력을 적용한 제품으로 미국과 유럽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비스포크 AI 건조기에 고효율·대용량의 디지털 인버터 히트펌프를 적용해 뛰어난 건조 성능을 구현했다. 현재 이 제품은 차별화된 건조 성능과 인공지능(AI) 기반 기능 유럽과 미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효자 상품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냉·난방공조전시회 ‘ISH 2023’에 처음으로 참가해 EHS Mono R290와 EHS Mono HT Quiet 등 고효율 냉난방 시스템인 히트펌프 ‘EHS(Eco Heating System)’ 신제품을 선보이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공조 솔루션으로 유럽 공조 시장 공략에 시동을 걸었다.
LG전자는 대용량 드럼 세탁기와 인버터 히트펌프 방식 건조기를 융합한 일체형 세탁건조기 ‘워시콤보(Washcombo)’를 1월 미국에서 출시했다. 이 제품은 출시 첫 주부터 기존 프리미엄 드럼세탁기보다 70% 높은 초기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LG전자는 또 지난해 말 혹한에서도 고성능을 내는 냉난방공조 제품을 연구·개발하기 위해 미국 알래스카에 ‘LG 알래스카 히트펌프연구소(LG Advanced Cold Climate Heat Pump Laboratory)’를 신설했다.
히트펌프 냉난방 제품은 알래스카처럼 기온이 낮은 지역에서는 냉매를 압축시키는 압력이 줄고 그에 따라 순환하는 냉매량이 적어져 난방 성능을 높이기 쉽지 않다.
LG전자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최고 수준의 난방 성능을 내는 히트펌프를 만들기 위해 혹한 환경에서 제품을 개발 및 검증할 수 있는 알래스카에 연구실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알래스카 히트펌프연구소를 시작으로 냉난방 솔루션 관련 글로벌 R&D 조직을 지속 확대해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하며 사업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