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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이사 이해상충과 엄정한 지배구조 평가

  • 기자명 이태호 기자
  • 입력 2021.01.20 18:27
  • 수정 2021.08.1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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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사외이사가 거래 관계에 있는 법무법인·세무법인의 고문을 맡아.
이해상충하는 의사결정 내릴 개연성 충분하지만 문제제기 없어.

[ESG경제=이태호 전문기자] 한국ESG평가원의 2021년 상반기 ESG평가 작업에 참여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회사의 사외이사 전원이 특정 법무법인의 고문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이 회사와 법무법인은 빈번하게 거래(수임)를 형성하는 관계다. 자신이 사외이사로 있는 회사의 법률 서비스를 자신이 고문으로 있는 법무법인이 수임하는 연결고리에 있다면, 이는 분명 심각한 이해상충이다.

이와 비슷하게 어떤 상장사의 사외이사가 특정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 세무법인 등의 고문을 맡고 있는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해당 기업의 지배구조 평가에 심각한 감점 요인이 아닐 수 없었다.

기업들은 이사회의 절반을 사외이사로 채웠으니 선진적 지배구조를 갖췄다고 얘기할지 몰라도, 안으로는 불공정한 전근대적 지배구조를 통해 수많은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주주는 위탁자 경영진은 수탁자

자본주의 아래서 회사는 원칙적으로 주주의 소유이기 때문에 주주들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이사들을 선임하여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사회는 경영진을 선임하여 회사를 운영한다. 그래서 주주는 권한을 맡기는 위탁자가 되고 경영자는 이를 받는 수탁자가 된다. 이것은 주식회사 소유와 경영 분리의 기본이다.

경영진은 기본적으로 주주를 위하여 일하면서 주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는 필연적으로 대리인이 사욕을 챙기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대리인 문제의 요인은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대리인인 경영진은 기업 정보를 틀어쥔 우월적 지위를 바탕으로 주주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엔론이나 월드컴 사례를 보면 이러한 대리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알 수 있다.

대리인 문제는 인센티브와 모니터링으로 해결

이런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인센티브 계약을 통해 경영진의 목표가 주주의 이익과 일치하도록 하는 인센티브가 있다. 스톡옵션이 대표적이다. 또 다른 방법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줄이기 위해 모니터링(감시·감독)을 하는 것이다.

기업지배구조는 간단히 말하면 경영진의 활동을 모니터링하여 통제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업의 지배구조에는 내부지배구조가 있고 외부지배구조가 있다.

내부지배구조가 바로 이사회이다. 이사회는 경영진의 경영 행위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중요한 기관인데, 사내이사와 외부에서 충원되는 사외이사로 구성된다.

막중한 사외이사의 역할과 이해상충

사외이사 제도는 사내이사들이 제대로 된 경영진 견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이다. 회사의 조직에 속하지 않는 사외이사가 경영진의 대리인 문제를 통제토록 하는 장치다. 사외이사의 역할은 글로벌하게 복잡해진 경영 환경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외이사 제도는 아직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다. 이사의 상법 상 기능은 경영진에 대한 감독, 최고경영자 선임 해임 평가,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 경영진에 대한 조언, 경영진의 수탁 책임 결과보고에 대한 확인 등이다.

그러나 실제 운영을 보면 이런 기능은 온데간데 없고, 대부분 회사의 이사회 안건들이 천편일률적으로 통과되고 있다. 물론 안건을 사전에 조율하기 때문에 그렇다고도 하지만, 회사의 중대한 안건으로 주주들 간에 이견이 큰 안건들까지 반대 없이 통과되는 사례가 허다하다. 사외이사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럼 왜 사외이사들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할까? 첫째, 사외이사들의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직 관료나 법원·검찰·정치권 등에서 영입된 사외이사들은 주된 역할이 로비스트에 가깝다. 경영에 관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 못한 경우가 많다.

이번에 한국ESG평가원이 평가한 80개 대기업의 사외이사를 봐도, 319명 중 77명이 전직 관료나 사법부, 정치인 출신으로 약 25%에 해당한다. 이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고 교수나 다른 직종으로 변신한 전직은 포함하지 않은 숫자다.

더 심각한 것이 이들 중 상당수가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세무법인의 고문을 겸하면서 사외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회계법인의 경우 이해상충 이슈가 불거진 이후 무작위로 추첨하여 선정하도록 제도가 바뀌었지만, 법무법과 세무법인에 대해선 이러한 견제 장치가 없다.

따라서 사외이사들은 자신이 고문으로 있는 법무법인이나 세무법인이 자신이 사외이사인 회사의 일을 수주하는데 얼마든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명백히 이해상충이다. 심지어 어떤 상장회사는 사외이사 전원이 한 법무법인의 고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너와 회장 입맛 따른 사외이사 선정

둘째로는 추천 프로세스 상의 문제다. 일단 사외이사 후보들은 기업의 오너(주인 없는 금융지주회사 등은 현직 회장)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외이사 후보의 추천은 독립성, 전문성, 활동성 등의 자질이 아니라 기업의 오너와의 친분이나 관계가 여전히 크게 작동한다.

사외이사와 오너 간의 관계는 지연, 학연 등에 맞춰 추적해 보면 연결고리가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또 사외이사가 이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금융그룹을 보면 사외이사끼리 연관성이 많은 경우를 본다. 그러니까 한 사외이사가 임기를 채우면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는 방식이다.

한국지배구조원이 최근 발표한 사외이사 보수현황을 보면 2020년 745개 상장사 사외이사 보수 평균은 4125만원인데,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은 평균 5000만원 이상 지급하는 회사가 25%에 달한다.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 사외이사의 평균 연봉은 5800만원을 상회했다.

두달에 한번 정도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대가로 이만한 금액이 지급된다는 것은 단순한 보수라기 보기 어렵다. 이러한 자리가 능력이나 경험 등 전문성에 대한 댓가라면 오히려 부족한 면이 있지만, 로비 능력이나 오너와의 친밀도 덕분에 지급되는 것이라면 공정하지 못하다.

외부 지배구조와 엄정한 ESG 평가

경영진의 독단적인 경영과 사적이익 추구를 감시할 내부 구조인 이사회가 있는 반면 기업의 외부 지배구조에는 외부 감사인과 정부 그리고 기관투자가, 언론, 시민단체 등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이러한 외부 지배구조 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수주나 광고 등 당근을 미끼로 외부 지배구조를 무력화시키는 일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ESG 경영은 이사회에 대한 올바른 평가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을 위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적정성과 객관성·전문성을 엄정히 평가해야 한다. 경영진을 제대로 감시하고 평가하기 위해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됐듯이, 사외이사들의 독립성, 전문성, 활동성도 마땅히 엄정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ESG평가기관들이 정밀한 평가모델을 통해 기업의 이사회 활동과 사외이사들의 역할을 제대로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이태호 ESG경제연구소장 겸 전문기자
                           이태호 ESG경제연구소장 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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