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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전환 채권, 탄소 고배출 산업에 금융 통로 연다

  • 기자명 김제원 기자
  • 입력 2025.11.07 09:58
  • 수정 2025.11.08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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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MA, 철강·시멘트·석유 등 산업 전환 프로젝트에 공식 금융경로 마련
2050년까지 30조 달러 투자 필요…"검증된 탈탄소 계획이 성장 동력"

독일 뒤스부르크에 있는 티센크루프사의 제철소에서 작업자가 조철 샘플을 들어올리고 있다. 티센크루프는  석탄을 사용해 철강 제품을 생산했으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수소환원제철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EPA=연합
독일 뒤스부르크에 있는 티센크루프사의 제철소에서 작업자가 조철 샘플을 들어올리고 있다. 티센크루프는  석탄을 사용해 철강 제품을 생산했으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수소환원제철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EPA=연합

[ESG경제신문=김제원 기자] 국제자본시장협회(ICMA)가 '기후 전환 채권(Climate Transition Bond, CTB)' 라벨을 공식 도입하며 전 지구적 기후금융의 구조적 전환을 예고했다. 녹색·사회·지속가능 라벨 채권(SLB)에 이어 다섯 번째 공식 라벨로 인정받은 CTB는 기존 ESG 채권이 소외시켜온 고배출 산업의 탈탄소화 금융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기존 금융 체계의 구조적 불균형

그동안 ESG 채권 생태계는 뚜렷한 한계를 노출해왔다. 재생에너지, 친환경 교통, 에너지 효율 등 이미 저탄소 기술로의 전환이 진행되는 산업군에 자금이 집중된 반면, 철강, 시멘트, 화학, 석유, 가스 등 감축의 난이도가 높은 산업은 탈탄소 금융에서 구조적으로 소외되어 온 것이다.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의 40%를 차지하는 이들 고배출 산업의 전환 없이는 파리협정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과학적 합의가 존재함에도, 기후금융의 편향된 구조가 오히려 전환의 가장 중요한 영역을 외면해온 셈이다.

ICMA가 2050년까지 8대 고배출 산업의 탈탄소화를 위해 추가적으로 30조 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추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CTB 가이드라인의 엄격한 기준

ICMA가 수립한 CTB 가이드라인은 단순한 선언적 규정이 아니다. 채권 발행에 따른 자금은 탄소 포집·저장·이용(CCUS), 고배출 설비의 조기 폐기 및 전환, 연료 전환(석탄에서 천연가스로의 전환 등), 메탄 감축, 전환 관련 연구개발(R&D) 등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활동에만 사용 가능하도록 명시했다.

발행 기관의 책임도 대폭 강화되었다. 채권을 발행하려는 기업은 구체적인 전환 전략의 존재 여부, 탈탄소 경로의 과학적 신뢰성 및 야심성, 산업별 감축 벤치마크와의 정렬 여부 등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입증해야 한다. 단순한 의도 선언이나 방향성 제시가 아닌, 측정 가능한 감축 목표와 구체적인 이행 계획의 제시가 필수화된 것이다.

강화된 검증과 보고 체계

CTB 체계의 또 다른 특징은 사후관리 기준의 대폭 강화다. 자금 배치 이후 프로젝트의 실제 감축 성과, 기초 배출량(baseline) 산정의 적정성, 전환 경로의 이행 진전도 등에 대한 주기적 보고 및 외부 검증이 의무화된다. 이는 기존 ESG 채권의 보고 기준보다 훨씬 엄격한 정량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네거티브 스크리닝(negative screening)' 요소의 도입이다. 예를 들어 고배출 산업이 저탄소 대안이 분명히 존재하는 활동에 자금을 사용하거나, 장기간 탄소를 고정시키는 자산에 투자하는 경우는 CTB 자금 사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린워싱(greenwashing)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설계인 셈이다.

전환 금융 시장의 구조적 전환

이제 고배출 산업도 과학 기반의 전환 전략, 독립적 평가, 강화된 공시 기준을 충족하면 글로벌 채권 시장에서 신뢰할 수 있는 금융 지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투자자들은 '진정성 있는 전환 프로젝트'와 '그린워싱' 위험이 높은 프로젝트를 보다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산업계의 반응도 주목할 만하다. CTB 도입으로 철강사, 시멘트 제조사, 석유·가스 기업들도 저탄소 전환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체계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은 이제 검증된 탈탄소 전략 수립을 급선무로 삼게 될 전망이다.

글로벌 기후금융의 새로운 기준점

CTB 도입은 단순한 채권 라벨 추가가 아니다. 고배출 산업의 탈탄소화가 불가피한 과제라는 인식 속에서, 글로벌 금융 시장이 이 난제에 어떻게 구조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지를 보여주는 패러다임 전환이다.

향후 CTB는 전환 금융 시장 확대의 핵심 기준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증된 탈탄소 전략을 수립한 고배출 기업들이 자본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되고, 투자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기후 해결책'에 자금을 배치할 수 있는 명확한 프레임워크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글로벌 탄소중립 목표 달성의 필요조건이자, 기후금융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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