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계와 공화당 집권 주 반발 구체화..."새로 법 만들어 규제하라"
연기금 등 주요 기관투자가들은 찬성..."더욱 강화된 내용 원해"

[ESG경제=이신형기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기후 공시 기준 제정에 대한 미국 기업과 공화당이 집권한 주 정부의 반발이 구체화되고 있다.
SEC가 이미 기후 공시 초안까지 내놓은 가운데 미국의 중간 선거가 치러지는 11월경 SEC가 추진하는 포괄적인 기후 공시 기준 제정의 성패가 가려질 전망이라고 블룸버그뉴스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SEC는 지난 3월 기후 위기가 기업 경영에 미치는 리스크를 연차보고서나 다른 방식의 보고서를 통해 공시하도록 하는 기후 공시 초안을 발표했다. 기후 공시 기준 제정 작업이 차질없이 진행된다면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올 연말 확정될 예정이다.
SEC가 기후 공시 기준 초안은 환경단체와 민주당, 대형 연기금 등의 환영을 받았으나, 기업을 대표하는 로비 그룹이나 공화당은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공화당은 "SEC가 기후 공시 기준을 제정할 법적인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SEC는 지난 4개월간 기후 공시 초안에 관한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했다. 3월 공개된 초안이 이 과정을 통해 일부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우익 단체와 공화당의 정치적 압력이 아무리 거세도 SEC가 기후 공시 기준을 철회할 가능성은 없다.
기후 공시 초안은 모든 상장 기업에 온실가스 스코프1(직접배출)과 스코프2(전기 사용 등으로통한 간접배출) 배출량을 공시하도록 하고, 매출 7500만 달러 초과 기업에 대해서는 스코프3(공급망 전체) 배출량 공개까지 요구하고 있다. 기후 공시 내용에 대한 외부 감사도 의무화된다.
스코프1과 2 공시의 경우 대기업은 내년부터, 중견기업은 2024년, 중소기업은 2025년부터 전년도 배출량을 공시하게 될 전망이다.
스코프3 공시는 대기업은 2024년, 중견기업은 2024년부터 전년도 배출량을 공시하게 될 전망이다. 다만 스코프3 공시의 경우 공시 내용에 대한 법적 책임이 면제되고 외부 감사 의무도 2~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공화당 집권 주 SEC 압박...투자자는 옹호
지난달 알래스카와 웨스트버지니아 등 공화당이 집권한 24개주의 검찰총장이 SEC에 서한을 보내 기후 공시 기준은 “환경 규제에 대한 잘못된 모험”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의회가 투자자와 금융시장 보호를 위해 SEC를 설립했다며 기후 공시 기준 제정은 SEC의 권한 밖"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15일 공화당 소속 변호사들도 SEC에 서한을 보내 “이런 주요 정책적인 문제 결정은 의회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SEC의 법적 권한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SEC가 수정헌법을 위반했고 기후 공시 기준이 합리적 의사를 반영하지 않아 까다로운 법원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이런 보수 진영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의 주요 연기금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은 SEC가 더 엄격한 공기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모든 상장기업에 스코프3 공시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롭 뒤보프 ESG 선임 애널리스트는 “선출된 권력, 특히 에너지 생산 비중이 높은 주의 정치인들은 예산과 규제를 활용해 (SEC에) 대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들 정치 권력이 총기류 제조업체나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는 은행과 자산운용사와의 협력 관계를 끊을 것이라고 위협하면서 ESG 투자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규제 도입에 제동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반적인 ESG 투자 흐름에 반하는 이런 행동은 명분이 없고 궁극적으로 연기금이 기후변화나 불평등과 같은 장기적인 리스크를 파악하는 것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SEC의 기후 공시 초안은 투자자가 기후변화와 탈탄소 전환에 따른 금융 리스크를 표준화하고 측정하는 것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상장 기업들은 외부 감사를 거친 온실가스 배출량 정보와 함께 기후 리스크를 어떻게 식별하고 관리하는지 공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EC는 기후 공시 기준에 대한 법적인 도전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또 대기오염방지법이 부여한 규제 당국의 권한을 축소한 연방 대법원의 최근 판결 때문에 SEC의 기후 공시 기준 제정 작업이 좌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뒤보프 애널리스트는 “자산운용업계에서는 기후 리스크가 금융 리스크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으나,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 개입하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