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초자산, 생활임금, 집중투표제 등 새로운 규정 대거 추가,
ESG채권 발행 대폭 증가에 따른 기업 혼란 줄어들 듯
[ESG경제=조윤성 선임에디터] 기업의 ESG경영에 기준이 되는 한국형 'ESG 모범규준'에 대폭 손질돼 새로 선보인다. 재계는 그동안 ESG경영의 모범답안이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아 아쉬움을 표시해 왔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상장회사의 ESG(환경·사회·거버넌스) 경영을 유도하기 위해 2010년 제정된 ‘ESG 모범규준’이 11년 만에 대폭 손질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기후 변화에 따른 자산 재평가와 녹색채권 활성화는 물론 생활임금, 인권영향평가, 집중투표제 등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념을 대거 도입해 모범규준에 포함시키는 개정안을 마련 중이다.
이번에 개정되는 ‘ESG 모범규준’에는 경제 및 환경,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 대거 포함됐다. ESG 모범규준은 상장회사들이 ESG 경영을 하려면 어떤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나열한 기준안이다.
기업지배구조원의 새 규준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ESG 경영과 투자가 대세로 자리 잡은 현실 등을 새로운 ESG 모범규준에 적용한 것이다.
특히 기후 변화로 석탄화력 발전소 등 기존 자산이 예상치 못한 평가절하를 당하는 '좌초자산' 개념이 환경분야(E)에 도입된다. 사회책임 분야(S)에는 근로자에게 최저임금보다 높은 적정임금을 지급하는 '생활임금'을 명시키로 했다. 지배구조(G)에서는 소수 주주의 이사 선임 권한을 강화하는 '집중투표제' 채택을 권고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은 이미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든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ESG 공시를 의무화하기로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다. 기업들은 아직 시간적 여유는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할지를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현재 일부 상장사만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ESG 관련 정보의 공시를 2025년에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 2030년까지는 모든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로 확대할 계획이다.
앞으로 국내 상장회사들은 기후변화에 직면해 자산가치가 급격히 낮아지는 설비 등을 ‘좌초자산’으로 미리 분류해야 한다. 금융회사들은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인 기업과 분야에 대한 투자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
이미 기업들은 ESG에 적극 대처하며 준비를 해 왔다. 다만 대부분이 사회적책임과 지배구조 개선 보다는 환경문제 쏠림이 상대적으로 높다.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된 ESG 채권의 총 금액은 58조9000억원이었다. 이는 전년 동기(25조7000억원) 대비 약 2.3배 늘어난 규모다. 자금의 사용처가 환경·책임·투명경영으로 국한된 ESG 채권은 한국산업은행이 국내에서 지난 2018년 처음으로 발행했으며, 이후 시장 규모는 급격히 증가했다.
올해는 연초부터 일반 대기업을 시작으로 ESG채권 발행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환경문제 개선이 시급한 업종들이 대부분이다. 최근까지 현대오일뱅크와 현대제철, LG화학, SK하이닉스 등이 자금 조달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업계에서는 오는 상반기까지 ESG 채권 시장에 데뷔하는 기업만 최소 30곳이 넘을 것이라 보고 있다. 이들 기업은 사회적책임이나 지배구조 개선은 등한시하고 있어 향후 ESG등급에서 낙제점을 받을 수도 있다.
기관투자가와 유관기관들은 덩달아 바빠졌다. 기관투자자인 연기금과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은 회사채 수요예측 참여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ESG를 고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연금은 지난해 기금운용 원칙에 '지속가능성'이란 요소를 추가하며, 올해부터 신규 종목 편입 시 ESG 평가 결과를 반영하겠다 밝히기도 했다.

회사채 시장의 패러다임이 ESG로 급변하면서 유관 기관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ESG 인증 사업'이란 시장이 새롭게 탄생했기 때문이다.
기업이 ESG 채권을 발행하려면 외부 기관으로부터 사전·사후 검증을 받아야 한다. 현재 국내 3대 신용평가사(한기평·한신평·나신평) 뿐 아니라 4대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까지 관련 실무에 뛰어들었다. 신평사가 사실상 독점해 온 채권 평가 시장에 회계법인까지 가세한 셈이다.
오대영 한국ESG평가원장은 “체계화된 ESG모범규준이 없어 기업들이 우왕좌왕하는 형국이었다”며 “늦었지만 이제라도 현실에 맞게 손질된 규범으로 기업들이 ESG경영을 보다 안정적으로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기업지배구조원은 2002년 설립된 비영리단체다. 상장사를 대상으로 매년 ESG 평가와 주주총회 의안 분석 등을 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ESG 모범규준을 참고해 기업지배구조·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등 ESG 공시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