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중대성’과 '단일' ‘금융 중대성’ 놓고 이견 여전
SEC와 ISSB는 기업가치만 염두에 둔 '단일 중대성' 선호
국내 이중 중대성 논의 초기 단계

[ESG경제=이신형기자] 유럽 금융기관들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중 중대성'이란 지속가능성 이슈가 기업의 성장과 성과, 위험 등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단일 중대성)뿐 아니라 기업이 인간의 삶과 환경,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가 진짜 ’중대성‘이 있는 정보라는 뜻이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ESG 공시 초안이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기후공시 초안은 ‘이중 중대성' 개념을 차용하지 않고 있다. MSCI를 비롯한 주요 ESG 평가기관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블룸버그뉴스의 11일 보도에 따르면 피델리티인터내셔널을 포함한 유럽의 규제당국과 시장참가자들 사이에서 ’이중 중대성‘ 개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자산 규모가 6650억달러(약 948조7000억원)에 달하는 유럽 최대의 자산운용사 피델리티는 올해 초 ’이중 중대성‘을 수용한 이후 현재 거의 모든 자산에 이를 적용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분석이 놓치기 쉬운 금융 리스크를 찾아 보완하려는 전략이다.
피델리티의 젠 후이 탄 글로벌 스튜어드십과 지속가능투자 책임자는 블룸버그 기자에게 “재무적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비재무적 요소의 영향력이 커졌고 앞으로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ESG 요소가 중대성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EU 규제당국 ’이중 중대성‘ 수용
유럽연합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ESG 공시기준인 유럽지속가능성공시기준(ESRS) 초안은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 개념을 차용하고 있다.
지속가능성 이슈에 기업의 성장과 성과, 위험 등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인간의 삶과 환경,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가 ’중대성‘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나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ESG 공시 기준을 제정하고 있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워원회(ISSB)는 투자자의 관점에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ESG 정보, 즉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ESG 정보를 중대성이 있는 정보로 판단한다.
투자자 중심의 중대성에 대한 이런 접근은 ‘단일 중대성(single materiality)’ 또는 ‘금융 중대성(financial maeriality’으로 불린다.
DWS 등도 수용...피델리티가 가장 적극적
블룸버그에 따르면 독일 자산운용사 DWS는 주식형과 채권형, 혼합형 펀드의 투자 판단을 위한 방법으로 ‘이중 중대성’ 개념을 활용한다.
DWS의 수잔나 페나루비아 ESG책임자는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에게 ‘단일 중대성’뿐 아니라 ‘이중 중대성’을 보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 로베코(Robeco)도 1780억 유로(약 246조4000억원) 규모의 운용자산 중 5분의 1에 해당하는 자산에 ‘이중 중대성’ 개념을 적용해 투자하고 있다.
JP모건체이스는 지난달 고객에게 리스크 관리 수단의 하나로 ‘이중 중대성’ 분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중 중대성’ 수용에 가장 적극적인 기관은 피델리티다. 피델리티는 127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중대성 지도(materiality map)”를 사용해 기업에 1~3의 등급을 부여한다. 3점을 받은 기업은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기업이 환경과 사회 등에 미치는 영향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탄 책임자는 “이런 평가를 통해 우리는 ‘금융 중대성’만 고려할 때 보다 장기적인 기업의 리스크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며 “이런 면에서 ‘이중 중대성’ 개념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중 중대성’ VS ‘금융 중대성
이처럼 유럽 자사운용사가 ’이중 중대성‘을 수용하고 있으나. 금융계는 ’중대성‘의 정의를 놓고 양분돼 있다. 주로 미국계 금융기관들이 이중 중대성 수용을 꺼리는 입장이다.
펀드평가 및 금융정보 제공업체 모닝스타의 지난달 27일자 보고서에 따르면 ISSB의 ESG 초안에 대한 의견 조사에서 ’중대성‘의 정의를 놓고 20개 주요 자산운용사의 의견이 갈렸다고 밝혔다.
ISSB의 기업가치에 중점을 둔 ’중대성‘에 동의하는 그룹과 ’이중 중대성‘에 동의하는 그룹, 국가별로 유연하게 ’중대성‘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3개 그룹으로 나뉘었다.
캐피탈그룹과 디멘셔날, 뱅가드를 포함한 일부 자산운용사는 ISSB의 ’중대성‘ 정의에 동의했다. 주로 미국계 자산운용사였다.
미국의 5대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인베스코, 노던트러스트, 스테이트스트리트, 티로우프라이스는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반면에 유럽계 자산운용사 DWS, 알리안츠, 아문디, 슈로더, 에버딘(Aberdeen)와 미국계 자산운용사 PGIM은 ’이중 중대성‘을 옹호했다.
’이중 중대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투자자의 요구와 이해관계자의 요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ESG 평가기관들도 중대성에 관해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MSCI는 ‘단일 중대성’을 S&P글로벌은 ‘이중 중대성’을 중시하고 있다.
국내 이중 중대성 논의 초기 단계
국내에서도 최근 '이중 중대성' 개념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13일 열린 대한상의의 '업종별 ESG 워킹그룹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금융배출량 (Financed Emission) ▲ 이중중대성평가 (Double Materiality Test) ▲ 기후리스크 대응 및 ESG 금융 관리 · 감독에 관한 세부 가이드라인 ▲ ESG 경영 우수 금융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 업계 현안에 관해 논의하고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
하지만 대한상의는 '이중 중대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 내용이나 제도 개선 건의 사항은 공개하지 않았다.
금융기관 중에서는 신한금융지주가 올해 처음 2021년 '이중 중대성' 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친환경과 상생, 신뢰의 3개 분야, 56개의 이슈를 평가했다.
기업 중에서는 한화시스템이 2022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이중 중대성' 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