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화당 등, 블랙록 "위장 환경주의" 몰아붙여
투자업계,10년만 처음 ESG 펀드서 자금 순유출

[ESG경제=이진원 기자] 올해 글로벌 ESG 투자업계는 이래저래 시련의 한 해를 보냈다. 정치적·경제적 차원에서 부정적인 뉴스가 쏟아져 나오면서 ESG 투자자들은 실망과 좌절을 맛봐야 했다.
미국에선 공화당을 중심으로 반(反)ESG 운동이 거셌다. 위장 환경주의를 뜻하는 그린워싱 논란이 계속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금융시장 혼란이 지속되자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ESG 펀드로부터 자금을 순유출했다. ESG 펀드의 투자 성과는 비(非)ESG 펀드의 투자 성과를 하회하면서 ESG 투자자들을 실망시켰다. ESG 투자 열기가 식다 보니 ESG 채권 발행액도 급감했다.
일각에서 “ESG 투자는 죽었다”는 암울한 진단까지 나왔다. 연말이 되어도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없자 내년에도 ESG 투자는 힘든 한 해가 될 수 있다고 비관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자산운용사 캔디아(Candia)의 ESG 클라이언트 포트폴리오 운용 부문 총괄인 마리 니엠차이크는 ▶글로벌 금융시장 혼란의 지속 ▶미국 내 반ESG 정치적 움직임 여전 ▶위험자산 수요를 위축시킨 인플레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에 따른 에너지시장 불안정 등을 거론하며 “ESG 투자에 대한 의문이 수그러들이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공화당에 시달린 선구적 ESG 투자자 블랙록
미 공화당 의원들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로 ESG 투자의 전도사로 통하는 블랙록 등에 비난을 퍼부었다. 특히 석유와 가스 분야에 적대감을 보이는 ESG 투자에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에너지위기가 발발하자 공화당 진영은 블랙록의 이런 태도를 너무 정치적이라고 평가했다.
플로리다주는 최근 “블랙록 같은 자산운용사가 사회를 바꾸려는 건 비민주적”이라며 블랙록에 투자한 20억 달러를 빼겠다고 밝혔다. 곧이어 텍사스·루이지애나·미주리·웨스트버지니아 등 이른바 ‘공화당 주’를 중심으로 블랙록 등 자산운용사들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연기금을 회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내년에 미국 내 최소 15개 주에서 반ESG 법안이 예정된 가운데 공화당 의원들은 의회에서 반ESG 운동을 지속할 것으로 포천지는 전망했다.

그린워싱 논란에 시달린 ESG 투자업계
다른 한편에서 블랙록과 뱅가드 등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비판에 시달렸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블루벨 캐피털 파트너스(Bluebell Capital Partners)는 12월 초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가 ESG 경영을 앞세우면서도 표리부동한 행동을 하고 있다며 사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블랙록이 글렌코어(Glencore)와 석탄 생산업체 엑사로 리소시스(Exxaro Resources) 등의 주요 주주로 남아있고, 석유·가스기업에 수백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뱅가드는 최근 세계 최대 기후 금융단체인 ‘넷제로 자산운용사 이니셔티브(Net Zero Asset Managers Initiative)’를 탈퇴해서 논란에 시달렸다.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투자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ESG 투자에서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리클레임 파이낸스(Reclaim Finance)가 내놓은 연구 결과를 보면, 자산운용 규모 상위 30개 자산운용사들은 여전히 석탄·석유·가스 기업에 총 5500억 달러를 투자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들, ESG 펀드서 10년 만에 돈을 빼
레피니티브 리퍼(Refinitiv Lipper) 데이터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11월 말까지 ESG 주식과 혼합형 자산펀드에서 132억 달러(약 17조 원)의 투자금을 순유출했다. 2011년 이후 처음 일어난 순유출이다.
<글로벌 ESG 펀드 자금 흐름>

같은 기간 비ESG 펀드로부터도 4200억 달러의 자금이 순유출됐지만, ESG 펀드가 운용하는 전체 순자산이 29% 감소할 때 비ESG 펀드의 순자산은 21% 감소해 줄어든 비율이 더 높았다.
기술주 투자 비중이 높은 ESG 펀드들은 올해 기술주가 폭락하자 부진한 수익률을 나타냈다. 11월 말 기준 ESG 주식형 펀드는 마이너스 18%의 수익률을 기록, 비ESG 펀드의 수익률인 마이너스 15.8%보다 더 떨어졌다. 12월 27일 현재 나스닥 지수는 올해 들어 33% 정도 하락했다.
ESG 채권 발행액, ETF 투자금 동시 급감
ESG 채권 시장도 얼어붙었다. 10년 전에 틈새 상품에 머물던 ESG 채권은 지난해 발행액 1조5000억 달러를 넘어설만큼 시장이 커졌으나 올 들어 급격히 냉각됐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올해 1~11월 ESG 채권 발행액은 1조2000억 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12월 한 달 집계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전통적으로 12월 채권 시장은 한산했다는 점에서 올해와 지난해 격차가 메워지기 힘들 전망이다. 지난해 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 영향을 줄이는 용도의 자금 마련을 위해 ESG 채권 발행을 대폭 늘렸으나 올해 코로나19 사태가 완화된 점이 채권 발행액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ESG 테마의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액도 급감했다. 지난해 ESG ETF는 앞서 2년 전과 비교해서 5배나 많은 1300억 달러 이상의 투자가 유입됐으나 올해 신규 투자금은 500억 달러도 되지 않았다. 이 액수는 지난해는 물론이고 2020년보다도 줄어든 수준이다.
<ESG 채권 발행, 전년 대비 감소율>

다만 세계적으로 탈탄소화 노력에 속도가 붙으면서 소요자금 마련을 위한 ESG 채권 발행이 늘 수밖에 없어 ESG 채권시장의 장기 전망은 나쁘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