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살인, 폭염·폭우의 공통 근원은 탐욕과 양극화
나라간 고도성장 경쟁의 폭주 기관차 멈춰야 지구 존속
이기심, 자국우선주의 다스릴 ESG 운동 뿌리 내려야

근래 발생한 서울 신림동, 분당 서현역 살인사건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가치가 얼마나 취약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불행하니까 남도 불행해져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벌써 탈출구 없는 공동체를 연상하게 해 준다. 범인은 전과 3범에 소년범 송치횟수가 14회라고 하니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짐작이 간다. 남을 죽여서라도 나의 한을 풀겠다는 그런 마음 가짐을 볼 때 얼마나 반사회적 인간으로 전락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 볼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 이것은 질주하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서 낙오한 사람의 극단적 반항이라고 보인다. 왜 나만 불행해야 하는가?
한편 폭우와 폭염이 반복되는 날씨는 인류의 생존마저도 위협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서 이것은 단순한 예외적 기상이변 문제가 아니라 광범위한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는 점을 많은 전문가들이 진단한다. 시스템적인 위기이지 단순한 국지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 어떤 원인이 있을까? 기후변화에 의한 기상이변의 주인공은 바로 인간의 탐욕이라고 본다. 부에 대한 탐욕이 자산의 취득을 극한적으로 추구하게 만들며 지구의 자원을 탄소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탐욕의 결과가 소수의 자산가와 다수의 빈곤계층을 만들며 억제되지 않은 탄소배출로 인하여 지구온난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데 탐욕 추구는 지구의 정치 시스템이나 국제 협력 등으로 막기가 힘들다. 탐욕 추구는 각 나라별로 고도성장의 추구를 가져오며 고도성장을 추구하지 않는 나라는 정권의 몰락을 가져오기 쉽기에 이 지상의 어느 개별 정권도 고도성장보다 지속가능성장을 추구하기 힘든 구조다.
지금까지 고도성장을 추구하지 않은 정권은 몰락하거나 국가적으로 은자로 전락해 국제사회의 뒤안길을 걸었다. 그러니 누가 정치적으로 고도성장을 막으려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지구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파멸로 달려가고 이를 막을 장치를 찾기 힘들다. 테슬라의 창업자 엘런 머스크가 이야기하는대로 화성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데 되는가. 그러나 거기서도 고도성장을 추구하는 경제정책을 편다면 결과는 똑같지 않을까.
지구 살리기 국제공조 ESG로 이끌어내야
환경은 공공재이다. 그러니 ‘공유지의 비극’이 너무나도 잘 드러난다. 사람들은 내 것이 아니니 오염시켜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망가진 환경이 폭염으로 홍수로 태풍으로 다시 되돌아 올것이라는 것은 생각은 잘 하지 못한다. 그저 고도성장을 추구하여 많은 재화를 만들고 소비하고 소유하면 만족스럽다.
그래서 문제의 근원인 인간의 탐욕을 억제하기 힘들다면 제도적 장치로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대중의 인기에 따라 정권이 좌우되는 포퓰리즘적 다수결 민주주의가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탐욕에 물든 대중이 투표로서 정권을 선택하는 제도가 존재하는 한 대중의 선호를 부정하는 정권이 들어서기는 역부족인 것이다. 따라서 선거에서 경제를 살리겠다, 고도성장을 이룩하겠다는 정권이 득표를 많이 해서 집권을 하는 것이다.
또한 육식문화도 문제이다. 지구는 지금 인간만 해도 만원이다. 지구가 80억 인구를 수용하는 것도 벅찬데 인간의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사육돼 죽어가는 동물들은 인간보다 더 많다. 닭이 600억 마리라고 하니 정말 지구는 만원이다. 닭이 600억 마리인데 소 돼지 양은 도대체 몇 마리일까.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에게 구원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ESG운동이다. 지구온난화를 막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며 올바로 거버넌스를 구축하자는 ESG 운동은 지구의 멸망을 막아줄 대안적 방법이다.
그러나 미국의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 극우진영에서는 이 ESG를 진영논리로 생각하여 규제하려고 한다. 계속해서 고도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또한 보수적인 유권자와 자신이 속한 주의 산업을 위한 행동일 뿐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구가 망가지고 나서도 경제성장이 가능할까. 자신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지역이 온전할까.
ESG는 정파를 떠나 인류의 생존이 걸린 운동이다. 만약 지구온도가 2050년까지 우리가 당초 억제목표로 삼은 2.0c 이상 상승한다면 지구의 파멸이 시작될 것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잘 되겠지” 하면서 인류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하다. ESG 운동이 더욱 넓게 번져 지구와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주길 기대해 본다.
[이태호 ESG경제 칼럼니스트/한경대학교 브라이트 칼리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