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손·셰브론 이달 나란히 메가딜…"오랫동안 석유 필요할 것“
지정학적 리스크 고려…"우크라·중동 분쟁에 미주 지역 투자"

[ESG경제=김강국 기자] 미국의 석유 메이저들의 석유 사랑이 여전히 뜨거운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친환경 재생에너지의 확대와 석유 수요 감소라는 전망과는 ‘정반대 행보’를 보이며 주목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글로벌 석유업계에서는 이달에만 두 건의 메가딜(대규모 인수합병)이 이뤄졌다. 엑손모빌이 성사됐다.
2023년 글로벌 500대 기업(포춘 선정) 가운데 7위인 엑손모빌은 지난 11일 미국 셰일오일 시추업체 파이오니어 내추럴 리소스의 인수 협상이 타결됐다고 발표했다. 엑손모빌에 이어 미국 2대 정유사인 셰브론도 미국 에너지기업 헤스 코퍼레이션을 인수했다고 23일 밝혔다. 엑손모빌과 셰브론의 투입 금액은 나란히 500억 달러(약 67.7조원)를 넘는다.
이들 석유 공룡들은 원유 시추와 정제 활동을 확대하는 반면, 풍력·태양열·전기차 배터리 등과 같은 대체 에너지에는 거의 투자하지 않고 있다. 전기차 보급과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로 석유 수요가 급감할 것이라는 다수 에너지 전문가의 관측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 셈이다.
셰브론의 인수 발표 다음 날인 지난 24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수요가 2030년 정점에 도달하고 이후 내리막을 보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2020년 팔린 자동차 25대 가운데 하나만 전기차였으나, 올해는 5대 중 하나가 될 정도로 보급 속도가 빠르다.
IEA 관계자들은 석유업계의 베팅이 잘못됐고 생각하지만, 석유업계는 ‘석유의 시대’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견해를 굽히지 않고 있다.
엑손모빌에 합병되는 파이오니어의 스콧 셰필드 최고경영자(CEO)는 "개인적으로 (IEA의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누가 제트 연료를 대체할 것인가. 누가 석유화학제품을 대체할 것인가. 그 모든 것을 대체할 대안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석유업체들은 대규모 인수·합병(M&A)이 수요 감소에 따른 유가 하락 시기에 대비하는 조치라고 여기고 있다. 유가 하락 시기에는 값싸게 생산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거대 산유국들과 경쟁하기가 더 어려워지므로, 몸집을 키워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JP모건에 따르면 파이오니어 인수로 엑손모빌의 미국 내 원유 생산량 비중은 약 31%에서 45%로 늘어나게 된다.
전문가들은 엑손모빌과 셰브론이 인수하는 기업들이 모두 미국 또는 주변 국가에 투자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며, 인수합병이 글로벌 분쟁 격화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엑손모빌에 합병되는 파이오니어는 서부 텍사스와 뉴멕시코주의 수익성 높은 퍼미안 분지 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셰브론에 인수되는 헤스는 신흥 산유국으로 떠오르는 남미 가이아나 유전에 사업권을 보유하고 있고, 미 중북부 노스다코타주의 셰일오일 개발권도 갖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우크라이나와 중동 지역에서 분쟁 확대 위협으로 국제적 투자의 위험성이 높아지자 석유 메이저들이 점점 더 서반구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