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연구진, 헤모글로빈 활용한 배터리 개발 성공
아직 시제품 단계나 배터리 기능 20~30일 유지
재충전 힘든 1차 전지라 추가 개선 필요
[ESG경제=이진원 기자] 헤모글로빈을 활용해서 전기화학 반응을 촉진하고 약 20~30일 동안 기능을 유지하는 배터리가 스페인 코르도바 대학 연구진에 의해 세계 최초로 개발됐다.
헤모글로빈은 우리 몸속 적혈구에서 철을 포함하는 붉은색 단백질로 폐에서 신체의 다른 조직으로 산소를, 그리고 그 반대 방향으로 이산화탄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산소와 친화력이 매우 높고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하다.
최근 헤모글로빈은 아연-공기 배터리(zinc-air battery)처럼 산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기화학 장치의 핵심 후보로 주목을 받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아연-공기 배터리는 공기 중의 산소를 음극으로, 금속 아연을 양극으로 사용하고, 그 사이에 알칼리성 전해질을 사용하는 배터리 유형으로 이미 상용화되어 있다.
최근 미국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사이테크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코르도바 대학(University of Córdoba) 물리 화학과 무기 화학 분야 연구진은 스페인 카르타헤나 폴리테크닉 대학 연구진과 헤모글로빈이 배터리에서 에너지를 생성하는 산화 환원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유력 후보임을 입증한 옥스퍼드 대학 등의 연구를 보고 이에 대한 검증과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개념 증명(槪念證明) 프로젝트를 통해 화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전기화학 반응에 헤모글로빈을 사용해서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는 배터리를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심장박동기처럼 인체에 삽입되는 장치에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개념 증명이란 기존 시장에 없었던 신기술을 도입하기 전에 이를 검증하는 것이다.
<배터리 작동 원리>

헤모글로빈 배터리의 메커니즘과 장점
사이테크데일리에 따르면 헤모글로빈은 현재 배터리 시장을 지배하고 있지만 유해 폐기물이라 환경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가장 지속가능한 대안 중 하나로 주목받는 아연 이온 배터리의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헤모글로빈이 공기가 배터리에 들어간 후 배터리의 한 부분(음극이나 양극)에서 산소가 환원되어 물로 변환된 뒤 배터리의 다른 부분(양극이나 음극)으로 전달되는 전자를 방출함으로써 아연 산화가 발생하는 산소환원반응(Oxygen Reduction Reaction·ORR)이라는 전기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단백질이기 때문이다.
코르도바 대학 연구원인 마누엘 카노 루나는 “ORR에서 좋은 촉매가 되려면 촉매는 산소 분자를 빠르게 흡수하고 물 분자를 비교적 쉽게 형성해야 하는 두 가지 특성을 가져야 하는데, 헤모글로빈은 이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연구진은 불과 0.165밀리그램의 헤모글로빈으로 20~30일 동안 생체 적합성 배터리 시제품을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이 개발한 이 배터리 시제품은 이런 강력한 성능 외에도 다른 장점이 확인됐다. 무엇보다 습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제조 시 불활성 대기가 요구되는 다른 배터리와 달리 아연-공기 배터리는 지속가능성이 높고 불리한 대기 조건에서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헤모글로빈을 생체 적합성 촉매로 사용하면 심장 박동기처럼 인체에 통합되는 장치에도 이러한 유형의 배터리를 사용해도 문제가 없었다. 실제로 이 배터리는 혈액과 유사한 pH 7.4에서 작동한다. 또한 헤모글로빈은 거의 모든 포유류에 존재하기 때문에 동물성 단백질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코르도바 대학 연구진이 내놓은 배터리는 어디까지나 시제품이지 완성품은 아니다.
그래서 연구진이 개발한 배터리의 보급률을 높이려면 몇 가지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1차 전지라서 방전한 뒤 재충전이 불가능하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을 산소로 변환한 다음에 배터리를 재충전할 수 있는 다른 생물학적 단백질을 찾는 다음 단계의 연구에 착수했다.
또 다른 단점은 이것이 산소가 있을 때만 작동하기 때문에 우주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문제의 개선 가능성 여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