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대형 펀드들과 연합전선 구축이 관건. 지속가능 투자 촉진 기대

[ESG경제=이신형기자] 거대 정유회사 엑손모빌의 이사진 교체를 이끈 행동주의 펀드 엔진 넘버원(Engine No.1)이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해 또 다른 주주 반란을 예고했다.
CNBC는 최근 기업의 변화를 이끌기 위한 이 새로운 형태의 ETF가 의도대로 기업을 바꿀 수 있을지 진단하는 분석기사를 실었다.
엔진 넘버원은 6월 말부터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한 이 엔진 넘버원 트랜스폼 500 ETF(Engine No. 1 Transform 500 ETF)가 “상장기업의 변화를 독려”하고 “기업의 직원과 지역 사회, 소비자, 환경, 영업, ESG에 대한 투자의 계량적 분석”을 추구하는 상품이라고 밝혔다.
이 상품은 출시가 예고된 직후부터 관심을 끌었다. 최근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는 ETF와 ESG, 행동주의 투자가 모두 결합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 ETF는 투자 기준에 맞춰 상품을 편입하거나 제외하는 기존 ESG ETF와 다르다. 예를 들어 청정에너지 ETF는 풍력이나 지열, 태양광 발전 관련 기업의 주식을 편입하고 화석연료 발전 기업의 주식은 멀리한다.
하지만 엔진 넘버원의 ETF는 S&P500지수와 유사한 모닝스타 US 라지캡 셀렉트 인덱스(Morningstar U.S. Large Cap Select Index)를 추종한다. 신념을 같이하는 기업의 주식을 편입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의 주식은 제외하는 기존의 ETF와 달리 추종하는 지수 편입 종목을 담고 이들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과 다른 ESG 관련 사안에 대해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한다.
ETF와 뮤추얼펀드 리서치사인 CFRA의 토드 로젠블루스 이사는 “그들(엔진 넘버원)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다른 기업의 주식을 사서 장기전을 벌이려 한다”고 말했다.
연합전선 구축이 관건
엔진 넘버원은 규모가 작은 펀드다. 독자적으로는 기업의 변화를 이끌기 어렵다. 엔진 넘버원이 보유한 엑손모빌 지분은 대략 0.02%에 불과했다. 이런 엔진 넘버원이 기후변화 대응에 미온적인 엑손모빌의 이사진 교체를 성사시킨 것은 엑손모빌의 다른 주주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투자 목표를 달성하는데 블랙록과 뱅가드, 스테이트스트리트와 같은 대형 자산운용사와의 공조 여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유럽 자산운용사 로베코(robeco)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패시브펀드가 과거에는 ESG에 호의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작았다고 밝혔다. “ESG 관련 주주제안이나 이런 제안에 동조해 투표권을 행사하는 사례가 적었고 특히 대형 패시브펀드의 ESG 안건에 동조하는 투표가 적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블랙록은 올해 ESG를 투자의 핵심 과제로 선정했다. 엑손모빌 주총에서 블랙록은 엔진 넘버원의 손을 들어줬고 뱅가드와 스테이트스트리트도 마찬가지였다.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이들 3개 자산운용사가 보유한 엑손모빌 지분은 21%에 달했다. 일부 국부펀드도 엔진 넘버원의 편에 섰다.
이들 3개 자산운용사는 현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모닝스타의 존 리켄세일러 부사장은 이들 3개사가 미국 전체 자산운용사가 보유한 주식 자산의 43%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과의 공조가 없으면 엔진 넘버원은 힘을 쓸 수 없다.
엔진 넘버원의 마이클 오리어리 이사는 CNBC 기자에게 이들과의 공조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가능성과 ESG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산운용사의 요구와 주주 권한 행사에 변화가 일고 있다”며 “우리는 적극적인 주주 권한 행사에 초점을 두고 기업의 변화를 이끄는데 기여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위험한 공조?
하지만 이런 공조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특히 투자자가 아닌 거대 자산운용사 대표가 대리투표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모닝스타의 리켄세일러 부사장은 “엔진 넘버원이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스트리트와 연합해 투표한 결과 ”기업의 수장뿐 아니라 연방 정부, 대다수 시민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며 ”소수에게 과도한 힘이 집중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전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교수로 현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업 금융 분야 대리 이사를 맡고 있는 존 코츠 이사는 2018년 발표된 논문에서 ”가까운 장래에 대략 12명의 개인이 미국 상장사 대부분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형 자산운용사가 기업의 배당을 받는 만큼 자산운용사와 기업 경영진과의 유착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런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일부 전문가는 대형 자산운용사의 대리투표 권한을 없애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에게 투표권을 돌려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달리 코츠 이사는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12명을 겨냥한 맞춤형 규제를 제안하고 있다. 그가 현재 SEC의 임원으로 재직 중이기 때문에 그의 이런 제안도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수의 지원 세력 포진
엔진 넘버원의 오리어리 이사는 이런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일축하며 행동주의 투자가 힘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제는 패시브펀드가 아니라 수동적인 주주의 태도“라며 ”전통적으로 인덱스펀드는 지배구조나 스튜어드십에 대한 투자에 나설 유인이 없었으나, 지금은 지속가능한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투자자들이 변화를 촉진하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우려와 기대 속에 출시된 엔진 넘버원의 ETF는 0.05%의 낮은 수수료와 높은 관심을 바탕으로 일단 성공적인 첫걸음을 내디뎠다. 디지털 투자회사 베터먼트 등이 이미 이 ETF의 편입 의사를 밝혔다.
행동주의 투자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견해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이들이 원하는 일을 이루면서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