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위, 기업과 국민이 감당하기 힘든 목표 3개 놓고 "선택하자"
완성 안된 기술과 원전 생태계 붕괴를 전제로 한 신기루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5일 공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은 한마디로 향후 30년 간 실행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신기루' 같은 목표다.
어떤 장기적 목표를 지속가능하게 추진해 성취하기 위해선, 참여 주체들이 '감당' 가능한 액션플랜들을 담고 있어야 한다. 초등학생이 100미터를 10초 안에 뛸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분명 있다.
그래서 실제 뛰어서 도달할 수 있는 목표인지 철저히 점검하고, 달리기에 참여할 선수들의 체력과 의견을 최대한 살펴 합당한 목표를 정해야 한다. 되지도 않을 목표를 정하면 선수들이 아예 포기선언을 하거나 욕먹을 각오를 하고 어영부영하게 마련이다.
이번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딱 그렇다.
일단 한국 경제와 기업이 갖고 있는 체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목표들이 제시됐다. 과도한 비용도 그렇지만, 아무리 돈을 넣어도 기술적으로 아직 풀 수 없는 수단들을 포함시켰다.
재계가 대표적으로 꼽은 것이 수소환원제철과 탄소 포집ㆍ활용ㆍ저장(CCUS) 기술이다. 연구실에선 가능해도 과연 2050년 내 상용화될 수 있을지에 의문을 표시하는 전문가가 많다. 이런 기술은 한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연구개발 초기 단계다.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한 사전 논의를 거치치 않은 점도 큰 문제다. 탄소제로는 이해 당사자들이 충분한 논의를 통해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 놓지 않고는 자발적 참여를 기대하기 힘들다. 법제화도 자발적 참여를 끌어낼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논평에서 “산업부문 감축 목표가 지나치게 높다”고 벌써부터 반발하고 나섰다.
전경련은 “세 시나리오 모두에서 산업부문은 탄소 배출량을 2050년까지 80% 감축해야 한다”며 “제조업 위주 산업구조를 가진 한국에서 무리한 목표를 설정할 경우 일자리 감소와 국제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고 했다.
의견 청취를 소홀히 한 것은 일반 국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시나리오 대로 가려면 전력요금이 2~3배 인상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또 각종 보조금과 인프라 등을 위한 정부 예산 등 비용도 1500조원 이상 필요하다는 예상이 나온다.
결국 국민에게 큰 부담이 따를 것이고, 특히 저소득 취약계층이 더 큰 고통을 안길 게 뻔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도 허심탄회한 공론화 과정과 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 정부는 탄소중립시민회의를 출범해 500명 시민에게 의견을 구한다고 하지만, 단기간에 온라인 수업으로 실효성 있는 의견을 도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원자력을 배제한 탄소중립의 한계
이번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원자력 생태계 붕괴를 전제로 시나리오를 짠 것도 큰 문제다. 탄소를 가장 적게 배출하고 안정적 전력 공급이 가능한 원전을 배제해 발전 비중을 현재 최대 29%에서 7% 아리려 끌어내리다 보니, 재생에너지 비중을 거꾸로 70%까지 끌어올려야하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미국과 일본, 영국, 중국 등 주요국이 탄소중립 실현 수단으로 원전을 다시 활용하려는 것과 대비된다.
어차피 원전 부활 이슈는 내년 대선에서 야당이 중요 공약으로 제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당 안에서도 탈원전에 반대하는 소리가 잠복해 있는 만큼, 여당이 승리하더라도 차기 대통령 취임 이후 어떤 방식으로든 궤도수정이 점쳐지는 상황이다.
탄소중립은 국가간 국제협약이든 국내 정책이든 이해 당사자들의 합의와 자발적 참여ㆍ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일방통행식 강요가 통하기 힘들다고 봐야한다.
2050년 탄소중립의 중간 단계로 세계 각국이 설정 중인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봐도 자발적 선언와 연대를 전제로 한다. 하물며 국내 목표를 설정함에 있어선 더욱 그렇다.
탄소중립이 반드시 가야할 길인 건 맞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으로선 국제 협약을 따라 무조건 참여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소의 뿔을 고치려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교각살우'의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된다. 탄소중립의 길로 가되, 우리 경제가 체력적으로 감당 가능한, 우리가 잘 하는 것을 더욱 잘 활용하는, 지속 가능한 실행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열린 논의, 열린 소통의 장이 시급하다. 밀실 탁상에서 정한 시나리오를 국민과 기업에 사실상 강요하고, 시민 500명이 참여하는 요식적 숙의 과정을 통해 정당화하려 해서는 곤란하다. [ESG경제=김광기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