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낮은 에너지 자립도-높은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에너지 안보 취약
재생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주권 확보와 산업 경쟁력 강화 전략적 수단
中, 에너지 안보 강화와 산업 경쟁력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 동시 추구
전기차, AI, 데이터 인프라 등 연계 통해 中 기술패권 뒷받침 토대 될듯

트럼프 정부는 석유·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산업에 우호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한편, 태양광 패널과 풍력터빈 부품, 전기차 등 재생에너지 산업의 핵심 기술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로 인해 재생에너지의 생산 비용이 상승하고 투자가 위축되면서, 미국 내 에너지 전환의 속도가 늦춰지고 에너지 안보 강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관세 정책은 계통 유지보수 및 전력망 현대화와 같은 필수 인프라 투자를 지연시키고, 전력망의 신뢰성과 회복력을 떨어뜨려 에너지 안보를 오히려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일부 화석연료 산업이 혜택을 볼 수 있겠지만, 이는 산업적 이해관계에 편중된 접근으로, 단기적 산업 이익에 초점을 맞춘 결과로 보여진다.
여기서 에너지 안보의 정의를 한 번 살펴보자. 유엔개발계획(UNDP)은 에너지 안보를 “경제적·정치적·물리적 위험 없이 안정적이고 충분한 에너지를 적정한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하였다.
첫째, 물리적 공급의 안정성은 에너지 자원을 안정적으로 수입하고, 위기 상황에도 공급 차질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둘째, 경제적 접근성은 에너지 가격의 급격한 변동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 효율적인 공급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셋째, 정치적 자율성은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과도한 에너지 의존이 외교적 독립성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의는 에너지 안보가 단순히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만 국한되지 않고, 보다 복합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임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일시적 공급 차질에 대비하는 것이 핵심이었다면, 오늘날의 에너지 안보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장기적 대응력, 가격 안정성, 기후변화 대응 및 탈탄소화와의 정합성, 그리고 국제적 상호의존성이 심화된 상황에서의 지정학적 리스크 대응까지 포괄하는 다층적인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 안보의 개념이 다차원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구조적으로 낮은 에너지 자립도와 높은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를 지니고 있어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더욱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한국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국가 에너지전환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으며,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11차 전기본)을 통해 그 방향성을 구체화하고 있다. 정부는2038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121.9GW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기존 실무안보다 상향 조정된 수치로, 특히 태양광 설비 확대가 주요한 증가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한국의 에너지 안보 수준은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크다. 2023년 세계 에너지 트릴레마 지수 평가에서 한국은 에너지 안보 항목에서 62.2점을 기록하며, ‘에너지 안보(Energy Security)’와 ‘환경적 지속가능성(Environmental Sustainability)’ 측면 모두에서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평가 배경은 한국 에너지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이 같은 취약성을 보완할 수 있는 핵심 전략 중 하나다. 재생에너지는 국내에서의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외 화석연료 자원에 대한 높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궁극적으로는 에너지 공급망의 자립성과 회복력을 강화할 수 있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친환경 에너지 확대를 넘어, 국가 에너지 안보 수준을 근본적으로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의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은 주목할 만한 사례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재생에너지 설비 보유국으로 자리매김하며, 에너지 안보 강화와 산업 경쟁력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2023년 한 해에만 전 세계 다른 모든 국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태양광 패널과 풍력 터빈을 설치했으며, 이 같은 대규모 투자와 보급은 단지 기후변화 대응 차원을 넘어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전략적 판단에 기반한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수입 연료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지닌 중국은, 국제 정세 불안정성과 해상 수송 경로의 리스크에 대응해 에너지 자립을 국가 안보의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중국은 재생에너지를 단순한 전력 공급 수단을 넘어, 국가 주권과 산업 경쟁력의 핵심 기반으로 인식하고 있다.이를 위해 자국 내에서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의 생산과 공급망을 내재화하고, 이를 ‘제조 강국’ 전략과 연계하여 해외 시장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 전략은 향후 전기차, AI, 데이터 인프라 등 고에너지 소비 산업과의 연계를 통해 중국의 기술 패권을 뒷받침하는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중국 정부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망 고도화, 계통 유연성 확대, 장거리 송전망 강화(HVDC 등), 지역 간 전력 불균형 해소 등과 같은 정책을 본격화하며 ‘전력 자립형 국가’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한국 역시 기후 대응이라는 좁은 틀을 넘어, 재생에너지를 에너지 주권 확보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 체계와 정책적 정합성을 갖춘 접근이 필요하다. 동시에 기술적·제도적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한 지속적 역량 강화와 일관된 정책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 오선아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