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폐기물기본지침 잇단 개정...식품, 섬유 등 폐기물 관리기준 강화
섬유생산자책임제도(EPR) 도입...사용후 폐기물까지 생산자책임으로
환경단체 "필요 인프라 구축 부족...상당량 섬유폐기물 여전히 소각돼"
"폐기물 분류조치 '29년 재검토...재활용 가능자원 계속 낭비 위험 커"

유럽연합(EU)은 폐기물 발생을 방지하고, 폐기물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하며, 환경과 인간의 건강을 보호하는 취지로 폐기물기본지침(Waste Framework Directive)을 지난 2008년 제정했다.
이어 2018년, 중국의 폐기물 수입 중단 사태를 계기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순환경제로의 전환과 장기적으로 미래 전략 자원에 대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 본 지침을 개정했다. 여기에는 ▶발생 폐기물의 절대량 감소 ▶폐기물 관리 및 처리과정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최소화 ▶ 자원 재활용 최대화 ▶ 자원 재활용률 제고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작년 3월, 본 지침은 다시 한번 개정되었는데, 개정안은 포장 폐기물, 바이오 폐기물, 식품 폐기물, 섬유 폐기물 등 주요 폐기물 분야의 관리 기준을 강화했다.
포장 폐기물의 재활용 목표는 2025년 65%, 2030년 70%로 상향 조정되었으며, 특정 플라스틱 사용 제한과 지속가능성 기준 및 라벨링 규정이 강화되었다. 식품 폐기물은 2030년까지 30% 감축 목표가 설정되었다.
최근 유럽연합은 식품과 섬유 폐기물을 주요 타겟으로 다시 한번 개정안을 내놨고 지난 2월 잠정적으로 합의됐다.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과 각국의 유럽의회 대표들은 2030년까지 식품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목표를 설정했다.
EU역내서 매년 5900만t 식품 폐기물 발생...1320억 유로의 경제적 손실
개정안은 ▶2021-2023년 평균 음식물 쓰레기 양 대비 가공 및 제조 폐기물을 10% 줄이는 것과 ▶2021-2023년 소매, 레스토랑, 음식 서비스, 가정에서 발생했던 음식물 쓰레기의 평균 발생량 대비 1인당 30% 감축을 목표로 두었다. EU는 역내에서 매년 5900만 톤의 식품 폐기물이 발생함에 따라 1320억 유로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본 개정안을 통해 이 어마어마한 식품 폐기물의 양과 경제적 손실을 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섭취할 수 있으나 판매되지 않은 식품들을 식품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부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2027년까지 식품 폐기물 양의 변화 추이와 본 법안이 1차 생산 식품 폐기물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해 2030년과 2035년의 감축 목표 재수립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알리 익스프레스(Ali Express)와 테무(Temu) 같은 플랫폼이 패션 분야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매일 6000여 개의 신상품을 업로드하는 쉬인(Shein)이 트렌드가 되면서 이러한 ‘울트라 패스트 패션’이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단일 경제권으로는 가장 많은 중고 의류를 수출하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매년 1260만 톤의 섬유 폐기물이 발생하는 지역이다. ‘패스트 패션’의 성장세도 유럽연합이 섬유 분야를 제재하는 주요 원인이다.
프랑스, 세계 최초로 '패스트 패션' 규제...제품당 최대 5유로 환경부담금 부과
이미 프랑스 의회는 작년 3월 패스트 패션 산업이 환경, 사회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여, 지속가능한 생산량으로 돌아간다는 목표 하에 세계 최초로 패스트 패션을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본 법안에 따르면 2025년부터 모든 패션 제품에 한 개당 최대 5유로의 환경부담금이 부과되며 이는 점진적으로 인상되어 2030년에는 최대 10유로가 부과된다.
섬유 폐기물에 대한 규제의 경우, 섬유 제품의 과잉 생산과 초고속 패션 관행을 다루고, 섬유 제품이 잠재적 수명에 도달하기 전에 버려지는 것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폐기물에 대한 관리 체계를 구체화하고 강화할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이를 위해 본 지침은 섬유를 생산하는 제조업체와 패션 브랜드에 생산자책임제도(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이하 EPR)를 도입했다.
본래 생산자들은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시점까지만 제품에 대해 책임져 왔고, 사용 후 발생된 폐기물의 경우 온전히 소비자들의 책임이었다. 그러나 본 지침은 제품 사용 후 발생되는 폐기물과 그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것까지 생산자 책임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 내 섬유 제조업체와 패션 브랜드는 폐기물 수거와 처리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의무를 진다. 비용은 제품의 디자인의 순환성과 지속가능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회원국마다 비용 수준이 조정될 수 있다.
규제의 주 대상은 유럽연합 외부에 기반을 두고 있는 패스트 패션 플랫폼이지만, 유럽연합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업체들도 오프라인 사업체와 동일한 의무를 지게 돼 유럽연합으로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조치는 섬유 제조 업체와 패션브랜드에게 다소 가혹한 ‘채찍’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충분한 유예기간을 설정하고 있다.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침 발효 30개월 이후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내놓았고, 소규모 기업 한정 12개월 추가 유예기간을 주는 등 기업에게 준비할 시간을 제공한다.
환경단체 "섬유 및 식품폐기물 감축목표 포기하는 방향으로 잠정 합의" 반발
이와 같은 개정안에 대해 일부 환경단체들은, 유럽연합 공동 입법자들이 섬유 및 식품 폐기물 감축에 대한 야심찬 목표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잠정 합의하여 아쉽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감축 목표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식품 폐기물 분야의 2030년 감축 목표는 2021~2023년 평균 폐기물 발생량을 기준으로 설정되었지만, 제조·가공 부문의 감축 목표가 단 10%에 그쳐 충분한 감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전체 식품 폐기물의 최대 60%가 발생하는 농업 단계의 손실이 목표에서 제외되어 논란이 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재검토는 2029년으로 연기되었다. 섬유 폐기물 관리 개선을 위한 생산자책임제도가 도입되었으나, 구체적인 수거·재사용·재활용 목표가 빠져 있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할 유인이 부족하며, 상당량의 섬유 폐기물이 여전히 소각될 가능성이 크다. 폐기물 분류 조치 역시 2029년 재검토로 미뤄지면서, 재활용 가능한 자원이 계속 낭비될 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환경단체들은 이번 개정안이 전반적으로 미흡하며, 폐기물 감축 및 순환 경제 확대를 위해 보다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와 네덜란드처럼 효과적인 폐기물 관리 정책을 참고해 EPR을 더욱 강력한 목표와 함께 도입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연합의 이번 개정안은 식품과 섬유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전으로 시작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 감축 목표의 한계, 농업 단계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문제의 미포함, 섬유 폐기물 관리의 구체적 목표 부재 등은 실질적인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물론 기업 부담을 고려한 유예기간 설정과 생산자책임제도의 확대 적용 등 긍정적인 변화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조치들이 실제로 폐기물 감축과 자원 순환에 효과적으로 기여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녹색전환연구소 오선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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