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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전환금융’, EU와 일본을 넘어선 한국의 해법은?

  • 기자명 ESG경제
  • 입력 2025.11.24 14:16
  • 수정 2025.11.2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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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축성과 중심성·배제기준·강한 공시·검증체계가 제도설계 출발점
화석 연료 인프라 수명 연장을 정당화하는 우회로 아닌
고탄소산업 구조적인 축소와 녹색전환 위한 징검다리로 기능해야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전남 해남군 솔라시도의 태양광 발전소. 중앙 부분에 꽃과 나무로 꾸며진 태양의 정원 '썬가든(Sun Garden)이 보인다.   사진=(주)한양 제공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전남 해남군 솔라시도의 태양광 발전소. 중앙 부분에 꽃과 나무로 꾸며진 태양의 정원 '썬가든(Sun Garden)이 보인다.   사진=(주)한양 제공

작년 12월, 금융위원회는 제6차 기후금융TF 회의를 통해 “고탄소 산업의 탄소감축을 지원하는 전환금융 도입”을 공식 과제로 제시했다. 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에서 녹색금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 아래, 산업 현실에 맞는 ‘한국형 전환금융’의 도입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된 자리였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났다. 금융당국은 올해 연말까지 ‘한국형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임을 밝혔다. 한국 정부는 유럽연합(EU)의 택소노미처럼 명확한 분류체계를 마련하는 동시에, 일본식 제3자 검증 모델을 일정 부분 반영해 신뢰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한국형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설계 중이다.

EU와 일본, 전환금융을 제도화한 두 가지 경로

여기서 EU와 일본의 전환금융 모델을 살펴보자. EU는 녹색금융을 중심으로 구축해온 택소노미 체계에 전환금융을 새롭게 포함시켰다. 이를 통해 탄소중립을 향한 과도기적 산업의 자금조달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였다.

EU 집행위원회는 2023년 6월 발표한 ‘지속가능경제 전환을 위한 금융 촉진에 관한 권고’에서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을 과학기반 시나리오에 부합하며 실제 감축 성과를 향해 개선을 이루는 활동으로 규정했다. 동시에 기업이 전환계획을 수립해 단계적으로 환경성과를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영국의 총 풍력발전 용량에 가장 최근 추가된 스코틀랜드 북쪽 셰틀렌드 제도의 '바이킹 윈드팜' 프로젝트. 총 103개의 풍력발전 터빈이 배치됐으며 연간 약 1.8TWh(테라와트시)의 재생에너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사진=Viking Energy 공식 홈페이지
영국의 총 풍력발전 용량에 가장 최근 추가된 스코틀랜드 북쪽 셰틀렌드 제도의 '바이킹 윈드팜' 프로젝트. 총 103개의 풍력발전 터빈이 배치됐으며 연간 약 1.8TWh(테라와트시)의 재생에너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사진=Viking Energy 공식 홈페이지

EU는 택소노미를 전환금융의 핵심 도구로 사용하도록 권고하며 현재는 택소노미 기준에 ‘적합(aligned)’하지 않더라도 과학기반 경로에 따라 점진적으로 기준을 충족해 나가는 활동을 ‘전환 관련 활동(transition-related activities)’으로 인정했다. 여기서 기업은 5년(예외적으로 10년)의 기간 내에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단계적 정합화(stepwise alignment)를 허용했다. 이러한 구조는 탄소 고배출 업종이라고 하더라도 명확한 감축경로와 실현가능한 실행계획을 갖추고 있다면 제도권 금융을 통해 전환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EU가 사실상 전환금융을 본격적으로 제도화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일본 정부는 전환금융을 어떻게 정의했을까? 2021년 금융청, 경제산업성, 환경성이 공동으로 제정한 ‘전환금융 기본지침’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 정부는 고탄소 산업이 과학적 감축경로에 따라 단계적으로 탈탄소화하는 과정을 금융이 지원하는 수단으로 전환금융을 정의했다.

현 정부가 벤치마킹하려 하는 해당 지침의 핵심은 자금이 실제로 산업 전환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제3자 검증(Independent External Review)’ 제도다. 독립된 외부 전문기관(Evaluation Agency)이 기업의 전환전략, 단기·중기·장기 감축목표, 시나리오의 타당성, 기술 로드맵의 현실성 등을 평가하여, 해당 계획이 과학적 근거와 국제자본시장협회(ICMA) 등이 제안한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검증한다.

2023년에 발표된 ‘Follow-up Guidance’(トランジション・ファイナンスにかかる フォローアップガイダンス)는 제3자 검증이 발행 단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금 조달 이후에도 기업이 전환을 위한 이행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후속 관리 체계로 기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검증 결과는 전환채권·전환대출 발행 시 기업의 신뢰도를 확인하는 자료로 활용될 뿐 아니라, 금융기관이 기업과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기업의 전환을 위한 전략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에도 근거 자료가 된다.

경계해야 할 탄소고착의 위험

이처럼 EU와 일본은 각각의 산업 구조와 정책 환경에 기반해 전환금융의 목적과 실행 메커니즘을 비교적 명확히 설정해 왔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EU는 과학기반 기준과 투명한 분류체계를 중심으로 단계적 녹색 전환을 유도하고, 일본은 제3자 검증을 통해 자금이 실제 감축 성과로 이어지는지를 엄격히 점검한다는 점에서 실행 중심의 체계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은 EU와 일본의 장점을 적절히 결합하여 제도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다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한국의 상황에서는 논의의 무게중심을 “전환금융을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라는 절차적 관점보다 “어떤 조건에서 전환금융을 허용할 수 있는가”라는 기준 중심의 관점으로 옮겨야 한다. 즉, 실질적 감축 성과를 기준으로 전환금융의 역할과 적용 범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전환금융의 도입으로 액화천연가스(LNG)·블루수소 등 화석연료 기반 설비들이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재포장되어 일명 주류 금융권에 재진입하는 문제를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K-전환금융의 방향

일본은 분류체계 없이 전환금융을 가이드라인 중심으로 도입한 결과, 석탄·암모니아 혼소, LNG 효율화 등 화석연료 효율화 기술이 ‘전환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제도권 금융에 재진입하는 촉매로 기능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는 전환금융이 실제 감축을 지원하는 수단이 아니라 고배출 기술의 수명 연장을 정당화하는 메커니즘, 즉 ‘탄소고착(carbon lock-in)’을 구조적으로 확대하는 경로로 작동했음을 의미한다. 전환금융이 ‘전환’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광범위한 활동을 무분별하게 포용할 경우, 그린워싱으로 쉽게 변질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U는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엄격한 전환금융 프레임워크를 구축해왔으나 최근 여러 지속가능성 공시 관련 개정안에서 적용 대상·보고 범위·검증 의무가 크게 완화되면서 이러한 구조적 강점이 흔들리고 있다.

다수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목표, 전환계획, 금융배출 등과 같은 필수 정보를 공시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조성되면, 금융기관은 어떠한 기업이 “신뢰할 수 있는 전환경로”를 보유하는지 판단할 근거를 잃게 된다. 이 경우 전환금융은 감축성과에 기반한 선별적 금융이 아니라, 모호한 계획만으로도 ‘전환기업’ 지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약화될 위험이 높다. 

따라서 한국의 전환금융은 단순히 해외 사례를 절충적으로 차용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감축성과 중심성·배제기준·강한 공시·검증 체계라는 최소조건을 제도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전환금융은 화석 연료 인프라의 수명 연장을 정당화하는 우회로가 아닌 어디까지나 고탄소 산업의 구조적인 축소와 녹색으로의 전환을 위한 징검다리로 기능해야 한다.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 오선아 연구원]

오선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오선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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