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 경영 없고, 각 계열사 전문경영인과 이사회 중심 체제로
스웨덴 발렌베리식 그룹 컨트롤타워는 필요하다는 구상
장기적으로 공익재단 방식의 창업자 가족 소유권이전 가능성

[ESG경제=김도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2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 2기 위원들과 진솔한 대화를 가진 이후 삼성그룹의 기업거버넌스 개편 방향이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이 부회장이 과거 언급했던 내용이 구체적으로 정리된 것과 아울러 새로운 내용도 추가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각 계열사들이 전문경영인과 이사회를 중심으로 독립적인 경영을 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준법위 위원들에게 “삼성그룹에 더 이상 4세 경영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고 준법위 위원들은 전했다. 이 부회장은 “그룹을 이끌어보니 한 사람으로서 너무 힘든 삶이란 사실을 깨달았다”며 “자식들에게 이런 삶을 물려줄 생각은 정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준법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힘이 들 때는 혼자 등산을 간다는 얘기를 했다"며 "생각보다 순수하고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약속한 것은 지킬 사람으로 인식됐다"고 전했다.
전문경영인들 전면에 세운다
이 부회장은 준법위에 앞으로 삼성그룹은 각 계열사별로 전문경영인들이 책임 경영을 하게된다는 사실을 분명히했다. 삼성그룹은 이미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고 있는데, 그런 방향이 더욱 확고해질 것이란 얘기다. 아울러 전문경영인은 독립적인 사외이사들을 중심으로 이사회가 견제하면서 지속가능한 경영을 꾀하게 될 전망이다.
다만 이 부회장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더라도 그룹 계열사 간 거래의 투명성과 부당내부거래 시비 등을 없애기 위해 그룹 컨트롤타워는 필요하다는 뜻을 피력했다고 한다.
이는 삼성그룹이 미래 기업거버넌스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스웨덴 발렌베리그룹의 지배구조를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발렌베리는 인베스터AB라는 그룹 투자(지주)회사를 통해 100개가 넘는 기업(벤처 포함)을 소유ㆍ지배하고 있는데, 실제 일상 경영은 철저히 전문경영인 독립체제를 보장하며 인베스터AB는 그룹의 장기 성장전략과 큰 줄기의 투자 의사결정만 내린다.
발렌베리 가문은 인베스터AB의 이사회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휘하며, 그룹의 이익은 인베스터AB의 주식을 갖고 있는 공익재단들로 귀속시켜 매년 배당액의 80~90%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에 시간 많이 걸릴 것”
이 부회장은 거버넌스 개편과 관련해 “앞으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삼성 준법위가 지배구조 개편의 큰 틀과 함께 건설적인 제안을 많이 해줄 것을 주문했다.
기업거버넌스의 개편은 주주들의 동의는 물론 사회적 공감대 아래 법적, 제도적 환경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당장 4세 경영을 안하더라도, 삼성그룹 지배주주인 가족들이 보유 주식을 모두 매각하고 떠날리는 없다. 유럽의 가족소유 기업들처럼 공익재단 등에 주식을 넘겨 가문의 이름을 남기며, 그룹에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위해선 공익재단 방식의 주식 승계 및 상속증여세 감면 등의 조치가 필요한데, 국내에선 관련 법 개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편 준법위 위원들은 이 부회장에게 “좋은 거버넌스를 만들기 위해선 사내외 커뮤니케에션을 잘 해야 한다”며 “열린 자세로 많은 얘기를 들어달라”고 조언했다. 진정성 있는 소통을 통해 우리 사회와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야, 거버넌스 개편이 원만하게 이뤄지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가 개편될 수 있을 것이란 조언인 셈이다.
기업거버넌스 전문가들은 "발렌베리 그룹이 스웨덴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5대째 공익재단을 통해 그룹 소유권을 승계하고 있는 것도, 1930년대 노사정대타협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과 사회공헌을 약속했던 것을 지금도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