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얘기하면 시기상조다. 하지만 인류의 온갖 신기술이 그래왔듯 언젠가,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AI를 활용한 지속가능성보고서 또는 ESG 리포트가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ESG보고서 발간을 대행해주는 컨설팅회사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질 것이다. 미리미리 대비하길 바란다. 금방 온다.

먼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지속가능성보고서, 그리고 ESG 리포트(정보공개 또는 공시)의 차이점부터 짚고 넘어가자.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1월 ESRS(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를 발표하면서 이를 활용한 보고서의 명칭을 『지속가능성 보고서( Sustainability Report)』로 통일했다.

우리나라가 EU 회원국은 아니니 그동안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라고 해왔던 것을 '지속가능성 보고서'라고 굳이 급하게 바꿀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기왕이면 앞서가는 EU의 기준을 따르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중요한 포인트는 지속가능성보고서와 ESG 리포트(정보공개 또는 공시)는 다르다는 것이다. 양쪽을 만드는 기준에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보고서와 ESG리포트 어떻게 다른가

지구촌 기업들이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발간할 때 가장 많이 활용하는 GRI Standards와 앞으로 EU 회원국 기업이 주로 쓸 ESRS는 기업의 경제, 환경, 사회적 "책임성"에 기반을 둔다.

즉,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제, 환경, 사회(사람)의 지속가능성은 일치한다는 전제 아래 기업 경영을 얼마나 책임성있게 하는지에 대해 기업 스스로 파악해서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그 정보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책임성이 얼마나 기업의 재무적 가치나 성과에 플러스(+), 또는 마이너스(-)가 되는지는 보고서의 우선 순위가 아니다.

 ESG 리포트는 그 지향점이 다르다. 투자와 가치 관점을 가진 리포트이다. 재무적 가치의 변화가 보고서의 우선 순위다. 따라서 기업의 재무적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과 사회변화 리스크에 기업이 어떻게 잘 대응하고 있는지가 보고서의 핵심이다.

또한, 지속가능성보고서가 모든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에 비해, ESG 리포트는 투자자나 투자평가사를 대상으로 한 리포트이다.

ESG 리포트의 주된 작성 기준은 SASB(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s Board)이다. SASB는 미국 증권거래소에서 기업의 비재무가치를 평가 측정해 공개하려고 만든 기준이다. 이 SASB는 지난해 ISSB(International 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에 통합되었다. 즉, ESG 리포트는 앞으로 ISSB 기준에 따라 만든다. ISSB를 주관하는 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는 ISSB의 궁극적인 목적이 기업의 『연례사업보고서』에 재무적가치와 비재무적가치를 통합해서 보고하는 것이라고 명시했다.

결국, ISSB는 별도의 ESG리포트 작성을 위한 기준이 아니라 기업의 연례사업보고서에 IFRS 기준에 따른 '재무가치보고'와 ISSB기준에 따른 '비재무가치보고'를 함께 하기 위한 통합 프레임으로 작용한다.

ESRS/GRI와 ISSB의 차이는 책임성과 투자가치라는 점에서 다르기 때문에 보고의 지향점도 당연히 다르다. ESRS/GRI는 기업의 책임성을 중점적으로 따지기 때문에 "기업이 경제, 환경, 사회(사람)"에게 미치는 부정,긍정적 영향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ESRS/GRI 보고서의 중심축을 이루는 개념은 "중대 영향"이다.

이에 비해 ISSB는 환경과 사회의 예측 불가능한 변화와 위기가 기업의 재무적 가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에 중심축을 이루는 개념이 77개 산업별로 구분된 환경과 사회 리스크 지표이다. 이 리스크 지표들에 대해 기업이 어떤 대응 전략과 준비(시나리오 경영)를 하고 있는지를 보고하는 것이 ISSB의 주내용이다.

자! 이렇게 되면 GRI 기준으로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만들어 놓고 ESG 리포트라고 제목을 붙이는 일이 글로벌하게 봤을때 얼마나 '쪽 팔리는' 일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지속가능성보고서와 ESG 리포트는 그 출발점과 지향점 자체가 다르다. 지속가능성보고서를 제작할 것인가, ESG 리포트를 작성할 것인가는 기업의 선택이다. 물론 두 가지 모두 작성할 수 있다. 둘을 단일 보고서로 통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AI가 지속가능성보고서나 ESG리포트를 쓸 수 없는 이유

데이터와 책임성 때문이다. 2018년 GRI가 지속가능성보고서를 작성하는 전세계 실무자와 검증하는 컨설턴트들을 대상으로 서베이를 했다. GRI를 이용해서 지속가능성보고서를 제작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압도적인 응답이 데이터를 모으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 응답이 데이터의 정확도를 검증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기업의 실무자들도 마찬가지다. 지속가능성보고서를 작성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데이터를 모으는 일이다. 특히, 올해부터 GRI Standards가 별도 기준이 아닌 연결 기준(기업의 연례보고서의 연결 재무재표상에 포함된 종속기업을 포함)이 되면서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려온다.

별도 기준으로 작성해도 데이터 모으기가 쉽지 않아서 주요 사업장이나 국내 사업장의 일부 데이터만 보고한 기업이 대다수였다. 연결 기준이 되면 종속기업 뿐만 아니라 해외 사업장의 데이터까지 모아야 한다. 정말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GRI나 ISSB가 요구하는 데이터는 뭔가 자동적으로 센서에 의해 측정되는 데이터들이 아니다. 대부분 사업 실무부서에서 사람의 손을 거쳐 가공해야 하는 데이터다.

때문에 어떤 데이터 인덱스가 주어지면 동일한 해석과 기준으로 데이터 원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 실무자와 미국, 일본, 중국, 베트남 지사에 있는 실무자의 단어에 대한 이해 수준이 다르고 그 데이터를 생성하는 운영 체계가 다르다. 때문에 같은 데이터 값을 얻기가 매우 힘들 뿐만 아니라 도출된 데이터의 값을 검증하고 신뢰하기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지속가능성보고서의 데이터 결함은 ESG를 평가하는 평가사들도 잘 알기 때문에 ESG 평가를 할때 지속가능성보고서나 ESG 보고서는 말 그대로 '참고용'으로만 활용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기업 내부 데이터에 접근하기도 불가능하고 접근한다 해도 데이터의 완전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현 상황에서 오픈 데이터와 오픈 소스만 긁어모아 글을 만드는 챗GPT가 지속가능성보고서나 ESG 리포트를 제작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또한, 지속가능성보고서와 ESG리포트는 기업의 공시자료이기 때문에 "책임성"이 따른다. 어떤 기업이 AI를 이용해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만들고 이를 공개했을때 데이터의 신뢰성이나 책임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허위공시가 된다. 이는 명백한 위법행위다.

그래도 결국, AI가 리포트를 쓰게 된다

ERP로 전세계 기업의 돈을 쓸어 모으는 독일 SAP은 EU ESRS의 디지털화 전략에 따라 지속가능성보고서를 AI로 작성하는 방식을 이미 제시했다. 단일 법인이며 사업 구조가 복잡하지 않고 사업장이 위치한 국가가 단일 국가라면, 그래서 데이터 확보 또한 신뢰도가 높고 이미 SAP ERP를 사용하고 있다면 당장이라도 SAP의 지속가능성보고서 서비스를 구매하여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넘어야 할 산이 높고 험하고 많다. 미 마이크로소프트(MS) 또한 지속가능성보고서, ESG리포트를 위한 솔루션을 개발하는 중이다. 협력업체들과 열심히 테스트 중이다. MS와 SAP이 작정하고 달려든 이상 머지 않은 시기에 지속가능성보고서, ESG보고서는 AI가 작성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ESG 정책협의회에 한 가지 바라는 점

기획재정부가 'ESG 정책협의회' 라는 것을 만들었다. 큰 기대는 없지만,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정부가 현재 기업들에게 요구하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데이터들을 지속가능성 또는 ESG와 관련된 글로벌가이드 라인들에  맞춰주었으면 한다. 그렇게 맞춘 데이터들을 기업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 ESG 데이터 플랫폼』 같은 것까지 만들어 주면 더욱 좋겠다. EU가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속가능성보고서, ESG리포트의 데이터 수준이 엄청나게 나아질 것이다. 2025년으로 예정된 의무공시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시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AI로 지속가능성보고서, ESG 리포트를 만들게 될 날도 조금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유승권 이노소셜랩 ESG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