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보고서는 지속가능 경영의 목표와 성과 담는 그릇
한국 기업 보고서는 아직 사하라 사막을 헤매는 수준

한국에서 ESG가 기업 경영의 큰 화두가 되기 시작한 2020년을 기준으로 볼 때 그 이전과 이후의 ‘지속가능성보고서(Sustainability Report : 이하 SR보고서)' 관련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SR보고서를 발간하지 않았던 많은 기업들이 발간을 시작했다. 특히, SR보고서와 관련된 글로벌 가이드라인에서 연결기준 보고를 요구함에 따라 주요 그룹 지주사들이 보고서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연이어 주요 그룹사에 속한 종속회사(계열사)들도 최초 보고서를 발간했다.
매우 반가운 일이기는 하나 아직 우리나라 기업들의 SR보고서는 가야할 길이 멀다. 올해 발간된 주요 그룹사 및 기업의 SR보고서를 살펴보니 몇 가지 개선 과제가 보인다.
CEO 메시지 : 책임감이 더 필요하다.
2020년 이전의 SR보고서는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대표이사의 메세지가 읽으나 마나한 글이 대부분이었다. 보고서를 제작하는 팀이나 비서실에서 좋은 말만 골라담아 메시지를 쓰고 대표이사는 검토도 하지 않은채 내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여러 회사의 CEO 메세지가 70~80% 이상 같은 내용이었고, 심지어 홍보 대행사에 제작을 맡긴 어떤 회사의 보고서는 여러 회사의 CEO메세지를 짜집기한 경우도 있어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지금의 CEO 메세지는 많이 발전했다. ESG가 중요하다는 것을 CEO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CEO가 직접 CEO메세지를 쓰거나 검토하는 일이 많아졌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매출 10대 기업의 CEO메세지를 읽어봤더니 기업의 특성을 반영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또한,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비롯해 한국ESG기준원의 평가 지침에서도 지속가능경영 실천에 대한 CEO의 강력하고 분명한 의사표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각 기업의 특성과 ESG 전략을 반영한 CEO메세지가 상향 평준화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여전히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깊은 이해과 통찰, 비전과 목표제시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속가능경영은 기본적으로 주주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전환, 단기 성과주의에서 장기 지속가능성 확보 중심으로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CEO 메세지에서 지속가능경영의 목표를 '주주이익 극대화'라고 제시한 기업도 있고, 장기 지속가능성 보다는 단기 성과를 줄줄이 나열한 기업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 기업이 지속가능경영을 왜 해야하는지에 대한 자체적이고 주체적인 비전과 방향을 분명히 제시하지 못하고 'ESG 경영이 글로벌 경영의 화두가 됨에 따라...' 등 외부환경 변화에 잘 대응하고 있다는 정도의 타의적, 소극적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또 한가지 CEO메세지를 포함한 SR보고서 전반의 개선과제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유니레버를 비롯한 지속가능경영에서 선두인 글로벌 기업들을 자문하고 있는 앤드루 윈스턴(Andrew Winston)은 그의 책 '넷 포지티브(Net Positive)'에서 "기업 SR보고서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굳은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굳은 의지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는가 못하는가 하는데서 드러난다"고 꼬집었다.

지속가능경영을 잘하고 있다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CEO 메시지에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을 50% 감축하겠습니다. 2035년까지 Scope 1의 온실가스 배출을 0로 하겠습니다. 2035년까지 인권실사를 공급망 전체에 100% 실행하겠습니다" 등의 구체적이고 책임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주요 기업의 SR보고서엔 구체적인 목표(2050년 Net Zero는 구체적인 목표라고 할 수 없다)도 없고 CEO가 책임지겠다는 내용도 없다.
E(환경) : 여전히 소극적인 기후변화 대응
지금의 SR 보고서와 2020년 이전의 SR보고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언코 환경 영역이다. 그중에서도 '온실가스' 대응은 이전 보고서에는 언급조차 없었던 것이 지금은 SR보고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ESG와 관련된 수백가지 이슈에서 단 하나만 뽑으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온실가스' 를 선택해야 한다. 실제 인류와 기업이 처한 가장 급박하고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EU의 지속가능성보고서 가이드 라인인 ESRS(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의 서문에도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이 ESRS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에 하나라고 나와있다.
우리나라 주요 기업의 SR보고서도 나름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다. 더욱이 SR 보고서와 관련된 모든 글로벌 가이드라인 (GRI, ESRS, ISSB 등)이 TCFD(기후변화 관련 재무공시 협의체) 프레임을 채택함에 따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거버넌스 체계, DB 구축, 목표, 전략 및 실행방안, 자원투입, 성과측정과 평가에 관한 정보공개는 ESG 정보공개의 필수사항이 되었고, 곧 발표될 KSSB(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공시기준 또한 TCFD 프레임이 중심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에 발맞추어 우리나라 주요 기업의 SR보고서에도 TCFD 보고가 등장했다. 이미 작년부터 보고한 기업도 있지만 올해는 거의 모든 주요 기업의 SR 보고서에 TCFD가 보인다. 당연히 그래야만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TCFD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하고, 역시나 능동적이고 전략적인 대응보다는 상식적이고 수동적인 대응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아쉬움의 원인은 무엇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아직도', '여전히' 지속가능경영을 비즈니스 전략 본체와 통합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ESG도 그렇지만 TCFD가 원하는 바는 '당신네 기업의 비즈니스(그중에서도 자본, 자산, 매출, 수익, 비용)가 기후변화와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 그리고 그 영향 중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 주세요"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의 앞선 기업들의 TCFD 보고서를 보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이 그 '기업의 메인 비즈니스와 기후변화의 관계'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국내 기업의 SR보고서는 아직 걸음마, 아니 시작조차 하지 못한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기업의 메인 비즈니스 전략에 지속가능경영이나 ESG 전략이 통합되어 있지 못하고, CFO를 비롯한 기업의 재무부서에도 ESG를 비용으로만 생각하지 자신들이 앞서서 주도해야할 일로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ESG는 플로깅(쓰레기 줍기)과 같은 특별 활동이 절대 아니다. ESG는 비즈니스 그 자체이고 지속가능성을 비즈니스 전략에 완전히 통합시키지 못하면 그 기업의 미래는 없다.
얼마전에 모 기업에서 ESG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사전미팅에서 직원들이 플로깅과 텀블러 쓰기를 열심히 안하고 있는데 이것이 ESG 내재화에 필수적인 내용이라는 독려 강의를 해달하고 했다. 나는 “아! 플로깅과 텀블러 쓰기를 안해도 되니 그 회사 공장과 배송차량에서 배출하는 그 막대한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이나 내놓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S 사회 : 공급망 관리라는 거대한 밀림
E영역에서 '온실가스 넷제로' 라는 에베레스트 산이 있다면, S 사회영역에서는 '공급망 지속가능경영 확산'이라는 아마존 밀림이 존재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넷제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기 위해 이제 막 네팔행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하면, 공급망이라는 아마존은 아직 어떻게 가야할지 감도 못잡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주요 기업의 SR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공급망 관리의 핵심인 '제3세계 인권과 환경 이슈'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보고서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나마 원재료의 분쟁광물 이슈가 있는 기업들은 RBA(Responsible Business Alliance)의 요구사항에 따라 분쟁광물을 걸러내기 위한 원칙과 절차를 제시하고 있긴 하지만 공급망 ESG 확산에서 가장 중요한 지속가능성 실사(Due Diligence)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못하고 있다.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의 공급망 관리는 1차 협력업체에 국한되어 있고, 이마저 '동반상생법' 범위내에서 머무르고 있다. 작년부터 주요 기업들이 1차 협력 계약에 ESG 사전 진단체크를 도입했는데 이것은 공급망 관리를 위한 아주, 매우 기초적인 단계에 불과하다. 이건 브라질 아마존이 아니라 인터넷 아마존에서 쇼핑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가치사슬 전체, 공급망 전반의 인권과 환경 이슈를 다루고 파트너들과 지속가능경영을 함께해야 하는 거대한 과업, 거대한 밀림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역시, ESG 팀이 아니라 기업의 전략, 재무, 구매 본부 등에서 전사적으로 ESG를 자기 일, 매우 중요한 자신의 과업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결론적으로 납품단가에 ESG 실행 비용을 반영해주지 않으면 공급망 지속가능경영 확산은 불가능하다. ESG팀이 아무리 지속가능보고서를 그럴듯하게 써봐야 파트너사는 코웃음만 칠 뿐이다.
거버넌스 : 지속가능성에 불안감을 느끼는가
ESG의 출발점은 '인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 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자원, 쌓여만 가는 폐기물, 급격히 망가지고 있는 자연생태계, 이로 인한 국가, 사회, 지역, 사람 간의 갈등의 증가라는 상황을 볼때 공룡이 멸망했던 것 처럼 인류도 조만간 멸종하지 않을까하는 불안이 ESG의 시작점이다. 이런 불안 때문에 환경과 사회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지속가능경영을 잘하는 기업을 골라 ESG 투자를 하면 이런 불안이 조금이나마 덜해질까 싶어서 시작한 일이 ESG 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ESG에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찾아볼 수 없다. 주요 기업의 SR 보고서에는 “우리 기업이 이렇게 환경경영을 잘하고 있고요, 인권경영도 잘하고 있고요, 이사회도 이렇게 개편해서 지배구조도 잘 만들어놨어요”라고 자랑하는 것이 거의 전부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는 그녀의 저서 '도넛 경제학'에서 "주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단기성과만 자랑하는 기업들이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한 지속가능한 경제는 달성 불가능하다' 라고 일침했다.
ESG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이사회 구조가 많이 개선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50대, 60대 남자들이 이사회를 독차지 하고 있었던 구조에서 40대, 50대 여성 이사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았고 ESG 위원회라는 것이 만들어져 몇년전만 해도 언감생심 꿈에도 꾸지 못하던 환경과 사회 관련 이슈가 이사회의 안건으로 상정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큰 진전이라면 진전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기업들의 이사회나 최고경영진의 ESG 감수성은 사하라 사막 수준이다.
EU 기업들의 SR 보고서를 보면 이사진과 최고 경영진이 환경과 사회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적 노력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노력들도 하고 있음을 공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메인 비즈니스 의사결정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에 대해, 특히 투자 영역과 이사회와 최고경영진 성과 평가에 어떻게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주요 기업의 SR 보고서에는 그런 부분이 없다. 온실가스 감축이 에베레스트 산이고 공급망 지속가능경영확산이 아마존 밀림이라면 이사회와 최고 경영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책임 확대는 사하라 사막, 아니 남극대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펙~!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속가능보고서는 단 몇년만에 큰 성장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각 기업의 CSR, 지속가능경영, ESG 담당자들이 있다. 각 기업의 ESG 실무진에게 박수를 보낸다. “리스펙~!!” 개선과제는 앞으로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가면 된다.
지금, 일부 회계법인 등이 ISSB 발표에 발맞추어 앞으로 ISSB 보고 컨설팅을 받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다. KSSB가 ISSB를 카피할테니 그렇게 되기야 하겠지만, GRI를 가지고 보고서를 만들든 ESRS를 따르든, ISSB 보고서를 만들든 간에 위에 언급한 한계와 과제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보고 기준의 문제가 아니라 보고 콘텐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SR 보고서의 한계는 우리나라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의 한계와 동일하다. 지속가능성보고서는 지속가능경영의 성과를 담는 그릇이다. 좋은 그릇은 좋은 음식을 담을 때 그 빛을 발하는 것이다. 좋은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선 지속가능경영 그 자체를 잘 하는 수 밖에 없다.
이제 우리나라 기업은 지속가능경영을 특별한 활동이 아닌 메인 비즈니스와 통합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그래야 에베레스트 산에도 오르고 아마존 밀림도 헤쳐나가고 사하라 사막과 남극 대륙도 건널 수 있다.
[유승권 이노소셜랩 지속가능경영센터장]

관련기사
- ESG공시 품질 확보위해 ‘인증 자격제도’ 도입 필요성 제기
- ESG 평가, 껍데기를 벗어 던지자
- 돈 없어 ESG 못한다고?...'전략적 ESG'로 얼마든지 가능
- 챗GPT로 지속가능보고서와 ESG리포트를 쓸 수 있을까?
- 지속가능경영? 문제는 MZ세대야!
- 경기침체기와 비상경영 때 ESG 실무자들이 할 일
- 금융위, "ESG 공시기준 국내외 상황 균형있게 살펴 마련"
- 美 SEC, "4분기에 기후공시 기준 확정 목표...업계 의견 충분히 검토"
- 국내 기업 지속가능보고서 '속빈 강정'...ISSB 공시기준에 크게 미달
- 화석연료 플라스틱 '아웃'...식물성 바이오 플라스틱이 뜬다
- 보수의 ESG vs 진보의 ESG
- 美 재무부, '넷제로 금융·투자 원칙' 발표...핵심 내용 살펴보니
- ESG, 지속가능경영도 "싱어게인" 처럼~
- ESG Awards 걸고 장사하는 언론사들
- 지속가능성보고서 작성 시즌...'중대성 이슈'는 어떻게 도출하나

